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로 우리나라 시위 문화가 재조명받고 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로 이뤄진 집회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양상의 문화다. 이에 우리나라 시위 문화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격동의 대한민국
시위 문화의 역사
한국의 시위 문화는 격동의 역사를 거쳐 발전했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기초를 다진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 시기 펼쳐진 대표적 시위다. 1960년 4월 19일, 전국의 시민·학생들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총궐기했다. 그 결과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냈고 4.19혁명은 시민의 힘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최초의 사례가 됐다. 그러나 이승만은 하야 선언 후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없이 미국으로 망명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1979년, 박정희 정권 시기 유신체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부마항쟁으로 발현됐다.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각계각층 시민이 참여했으며 독재 정권에 지속적으로 저항의식을 표현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지역감정을 이용한 분열 정책을 펼쳤다. 호남 지역에 대한 차별과 영남 지역 편중 개발로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해 시민들의 단결을 방해하며 정권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 일어난 부마항쟁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을 고양시켜 군사 독재 종식의 기반을 마련했다.
전두환 정권 시기의 대표적인 시위는 5.18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은 정부에 비상계엄 철폐와 유신세력 척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계엄군을 동원한 무력진압을 감행했으며, 이는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격렬한 시위로 남았다.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위한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또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 제도적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6월 민주항쟁은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의식 고조와 평화적 시위 문화의 시작이 됐다. 전두환 정권은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칭하며 시위의 본질을 왜곡했다. 당시 정보 확산이 제한적이었고 정부의 선전이 강했기에 시민들은 시위의 진실된 목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이용해 언론을 통제하고 왜곡된 정보를 전파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폭력이 동반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연세대학교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은 시위의 격렬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고조됐고 일부 시민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대치했다. 1991년 5월에는 명지대학교 강경대 열사가 시위 중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켜 전국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격 시위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수단과 동시에 정권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시위 문화의
전환점이 된 촛불집회
2016년 10월부터 2017년 초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는 한국 시위 문화의 전환점이다. 촛불집회는 박근혜의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집회는 총 23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12월 3일에 열린 6차 집회에서는 경찰 추산 약 42만 명이 참여해 대한민국 헌정사 최대 시위 규모를 기록했다.
촛불집회는 과거의 격렬했던 시위와 달리 철저히 비폭력적인 성격을 띤다. 이전에 비해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이 참여했으며 절차에 따라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를 요구했다. 평화 시위의 결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2017년 3월 10일, 파면이 결정됐다. 이후 박근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탄핵소추안 가결의 핵심이었던 촛불집회는 시민 참여형 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는 과거 시위와 달리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해 ‘촛불문화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박근혜 정권퇴진 2차 충북범도민 시국대회’에서 한 조형예술가는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박 대통령을 풍자했다. 또한 시민들은 나무 모양 조형물에 촛불을 올려 촛불 트리를 만드는 등 각자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묵 교수(이하 이 교수)는 “촛불집회 이후로 집회 문화가 상당히 평화롭게 바뀌었다”며 “시위에 문화적 요소가 더해지면서 거부감이 줄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장이 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장이 된
현재의 시위 문화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혼란을 초래하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기의 계엄령은 군부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많은 국민에게 민주주의의 후퇴와 억압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대통령 탄핵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의 핵심은 청년층의 시위였다. 청년들은 K-pop 음악에 맞춰 공연장에서 이용하는 응원봉을 흔들고 깃발을 들며 시위를 이어갔다. 이는 과거 촛불집회 당시 여당 의원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에 대한 반박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우리대학 정치외교학전공 조진만 교수(이하 조 교수)는 “문화적 우수성에 기반해 성장한 청년세대에게 시위란 자신들의 정체성과 동질감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다”며 “과거 세대는 대학과 노동현장 중심의 운동가 위주로 시위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다양한 차원에서 활용 가능한 창구들이 많아져 시위 형태나 문화도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참여의 중요성
변화의 주체가 된 청년
대규모 시위는 해외에서도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프랑스는 2018년부터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가 대표적이다. 노란조끼 시위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시작해 소득 불평등, 생활고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확대됐다. 시위는 때때로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으나 주기적인 집회로 △유류세 철폐 △최저임금 인상 △초과 근무 수당 비과세 등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반면 우리나라의 시위는 정권 퇴진이나 특정 정책 등 범국민적 사건만이 주목받는다. 이에 이 교수는 “시민들은 우리나라 시위 문화가 선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한국 사회의 참여 민주주의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며 “시위랑 별개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 욕구를 잘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국의 시위 문화가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위의 본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축제적 요소를 넣어 관심을 끌고 시위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도 좋지만, 시위의 본 목적과 의의를 명확히 전달할 필요도 있다. 조 교수는 건강한 시위 문화를 위해서 “온라인상의 다양한 정보를 비판적 시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민주주의는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현 시위는 대체로 평화적이지만 일부 극단적인 폭력시위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당장 시위 방식에 연연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단 시위의 시발점과 참여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시위 문화는 이념 간의 갈등, 젠더와 세대 간의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평화와 폭력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폭력적인 시위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평화로운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이번 시위의 다양한 측면을 잘 분석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우리는 시위 문화를 넘어 일상적인 정치 참여의 기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다양한 참여를 통해 실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