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근현대문화유산(이하 근현대유산)의 소멸로 인해 등록문화유산(이하 등록유산)의 보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국가유산의 보존·관리제도와 근현대유산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근현대유산이 위기에 처한 원인과 등록문화유산제도(이하 등록유산제도)의 한계를 살펴보며 근현대유산에 대한 역사적 인식 및 문제를 개선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국가유산 체제와
실태를 알아보다
국가유산이란 인위적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소산으로서 계승할 만한 가치가 큰 유산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유산에는 △성곽 △토목시설 △궁궐 △사찰 △고서·고분 △벽화 등을 비롯한 유형문화유산과 판소리·탈춤 등 무형문화유산이 있다. 동·식물과 아울러 보존할 만한 가치를 지닌 천연기념물의 경우 자연유산으로 통합해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유산은 문화유산정책에 의한 지정 과 등록을 통해 각각 △지정문화유산(이하 지정유산) △등록유산 △비지정문화유산으로 구분한다. 등록유산에 해당하는 근현대유산은 개항기 전후부터 지금까지 형성된 문화유산 중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할 필요성이 있는 부동산·동산문화유산을 의미한다.
지난 2024년 국정감사에서 국가유산 보존 허술 및 보호 대응책 부족이 문제점으로 여러 번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국가유산 관리에 대해 지적하며 전반적인 국가유산 보호 체계를 명확히 정립할 것을 강구했다. 오늘날 지정유산이 아닌 근현대유산 대부분은 각종 개발행위와 제도 미흡으로 효율적인 보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철거 위기에 놓인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이하 관리소)가 있다. 관리소는 대한민국 정부(이하 정부)가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한 시설로 1973년부터 운영돼 1996년 폐쇄됐다. 이는 ‘낙검자 수용소’라 불리기도 했으며 수용자 중에는 약물 과다투여 및 탈출로 인해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관리소는 정부가 자국민 여성을 상대로 성매매를 조장한 아픈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더해 미군의 한반도 주둔 역사를 대변하는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공동대책위원회는 철거 저지 및 관리소 보호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근 상인과 주민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리소 철거를 주장한다.
이처럼 근현대유산의 사회변동 과정과 역사를 담은 기록이 재개발 등으로 인해 왜곡될 위험에 처했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국가유산의 보존보다 철거와 개발이익을 위한 건축이 우선된다면 근현대유산은 계속해서 소멸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부족한 정책과 산업화로
소멸하는 근현대문화유산
앞서 말했듯 등록유산은 지정문화유산제도(이하지정유산제도) 외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문화유산을 말한다. 2001년 7월, 국가유산청은 지정유산제도 및 근현대유산 보존의 한계를 고려해 등록유산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인 면에서 역사적 가치를 완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지정유산은 국가에서 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등록유산은 원칙적으로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등록되며 지속가능한 보존 및 활용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등록여부가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이에 등록유산제도는 지역 및 개인 등의 소유자가 근현대유산을 등록하지 않는 이상 보호제도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기존 지정유산제도는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며 엄격한 보호조치를 강제한다. 반면 등록유산제도는 소유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문화재 활용을 전제로 유연한 보존방식을 가진다. 따라서 등록유산을 개조하거나 수리해도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으며, 외관 또한 전면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소유자 뜻대로 변경할 수 있다. 그 예시인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건설된 건물로 인천시 유형문화유산 제17호로 등록된 등록유산이다. 이는 개항기 인천 제물포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사용하고자 지어졌다. 그러나 2018년 인천시에서 발표한 ‘더불어 잘사는 균형발전 방안(개항장 문화시설을 활용한 문화재생안)’에 따르면 제물포구락부와 역사자료관으로 사용되는 한옥 고택을 세계 맥주 판매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인천 지역 시민들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아닌 한정된 경제적 이익 추구의 공간으로 사용돼 오히려 가치를 하락시킨다며 반발했다. 제도가 체계적이지 않아 근현대유산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정상우 교수(이하 정 교수)는 “등록유산제도는 법적으로 근현대유산 보호를 강제하기보단 소유자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편이다”며 “보존보다는 개발 추진을 선호해 근현대유산을 완전히 보호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한 근현대건축물의 경우 소유자가 개인일 시 국가유산으로서의 보존·활용과 개인의 경제적 이익이 충돌해 제대로 된 보존이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정 교수는 “등록유산에는 소유자들이 실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유재산권 보장 차원에서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함부로 제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등록유산제도로 인해 제한되는 경제적 이익을 우려하기보단 근현대유산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근현대문화유산,
왜 보존해야 하는가
근현대유산의 특성상 성립시기에 있어서 민족적 문제가 결부돼 있는 경우가 많아 보존까지 원활한 합의가 어렵다. 그럼에도 근현대유산은 당시 문화를 대변하며 역사적인 사건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해야 할 가치가 높다. 군산대학교 건축공학부 송석기 교수는 “근현대유산은 일제 잔재이면서 침략의 증거물이다”며 “보존 여부에 관한 상반된 의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문화유산의 정의나 범주는 국가 및 민족이 자랑할 만한 과거에 한정돼 있었지만, 현재 문화유산은 우리 삶의 모습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존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고 전했다.
지역 내 근현대유산 보존만으로도 근현대시기 속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수 있다. 특히 근현대건축물의 활용은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 및 지역 활성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정 교수는 “문화유산은 공동체가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근거로 작용한다”며 “근현대유산 또한 문화적, 교육적 가치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 등 경제적 가치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근현대문화유산의
안정적인 보호 체계를 위해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상징물인 근현대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논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근현대유산 활용에 큰 관심을 갖고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지난 9월 국가유산청은 근현대유산을 보다 체계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보존·활용하고자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이하 근현대문화유산법)’ 시행을 밝혔다. 그간 50년 이상 된 국가유산만이 등록유산 등록 대상이었으나 이번 근현대 문화유산법을 통해 50년 미만의 현대문화유산도 보호 대상에 포함했다. 또한 근현대유산 등록 전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나 등록유산 절차 심의를 거칠 여유가 없을 경우 ‘임시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절차를 뒀다. 이에 따라 지정유산 중심 체계를 벗어나 등록유산제도를 폭넓게 운영할 방침이다. 근현대유산의 법적인 보호만으로는 사회적인 인식을 고취하는 데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근현대유산을 진정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 이외에도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부산대학교(이하 부산대)가 70년 된 건학 초기 건물을 복원했다. 1955년에 건립돼 한국전쟁 중 중요 문화유산 피난처의 역할을 담당했던 부산대 박물관이 보수과정을 거친 후 재개관한 것이다. 완전한 복원을 위해 전면적으로 개조하기보다 본래 목조 서까래를 그대로 보존하며 수리를 진행했다. 복원한 건물은 일부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해 많은 이들에게 근현대사의 가치를 널리 알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정 교수는 “소유자와 지역 공동체가 근현대유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사문화자산으로 활용한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자발적으로 각 지역별 근현대유산을 보호하려는 추세가 형성될 수 있다”고 전했다.
역사는 단절 없이 만들어지고 이어져야 한다. 이는 근현대유산도 마찬가지다. 근현대유산은 근현대사의 실증적인 역사자료로 남을 수 있기에 재생자원 및 지역상생의 활용도가 높은 근현대유산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근현대유산의 보호 강화를 위한 등록유산제도의 개선방안을 강구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