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는 힘이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맴돌게 되는 어떠한 경험과 의식이,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공유’되고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문학에도 힘이 있습니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과 ‘허구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낭만을 꿈꾸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쓰기’는 작가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작업이며, 자신이 바라본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을 낭만적으로 풀어낸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소설 쓰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심지어 재미있게 기술하라니요...
그런데 여기 이 어려운 작업을 시도한 소설 한 편이 제게 도착했습니다. <커튼콜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소설인데요. 고등학교 연극부 부장인 이아진을 주인공으로 해 그가 축제를 준비하며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시간 순서에 따라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축제 준비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위기와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결국 이를 통해 모두가 소기의 성과를 이루는 모습이 물 흐르는 듯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습니다. 독자에게 똑같은 경험은 아닐지라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커튼콜 앞에 나오기까지 모아진 여러 노력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또한 이러한 큰일을 치르고 난 후 한 뼘 더 성장한 인물들이 앞으로도 각자의 커튼콜을 위해 열심히 달릴 것이라 다짐하는 부분도 작가의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인상 깊습니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은 현실을 담고 있되 현실 그 자체는 아닙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작가의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이 소설에 녹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소개서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져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작가의 의식이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나와의 분리’,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번 학술문예상 소설 부문에 응모한 <커튼콜을 위하여>에서 작가는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인지,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시점이 계속 혼재되는 양상이 많아 아쉽습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경험에 일정 부분 허구를 섞어 소설을 쓰다 보니 자신 안에서도 계속해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자기 경험담이 아니라 온전히 상상에 의해 쓰인 글이라고 하더라도 ‘시점’이 통일될 필요가 있음은 자명합니다.
또한 ‘시간 순서에 따른 일의 경과, 그 과정에서 이아진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 등이 그저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이 짙고, 마지막 부분에서만 급하게 자신의 주제 의식을 다시 상기시키는 느낌이 있습니다.즉 이 작품이 ‘자기소개서’나 ‘수필’이 아니라 ‘소설’로 완성되려면 일련의 과정 속 인물 간의 심리묘사 혹은 그들을 둘러싼 작가의 주제의식(혹은 사회적 메시지)이 조금 더 촘촘하게 그려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 작품을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 쓰기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아마 그래서 이번 학술문예상 소설 부분에도 응모작이 한 편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쉽지 않은 일을 이룩했을 때 그 기쁨은 배가 되고, 자신을 한층 더 성숙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소설 쓰기를 통해 자신과 주변을 더 깊게 들여다볼 기회가 여러분 앞에 놓여있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학생들이 이 기회에 기쁘게 도전하기를 바라며, 심사평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