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가 일으킨 신선한 제조 혁명, PB상품
유통업체가 일으킨 신선한 제조 혁명, PB상품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8.10.22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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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상품으로 수익과 경쟁력을 모두 얻은 유통업체

  기존의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만 이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최근 유통업체는 제조시장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자사의 자체 브랜드인 ‘PB(Private Brand)’를 개발해 직접 제품을 기획·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PB상품을 통해 유통업체는 더 많은 수익을 창출했으며 동시에 상품시장에는 새로운 경쟁체제가 형성됐다. 기자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소비문화를 제공하고 있는 PB상품에 대해 알아봤다.

  PB상품,
  새로운 소비를 이끌다

  PB란 유통업체가 자기매장의 특성과 주요 고객의 성향을 고려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자체 브랜드다. 또한 유통업체가 직접 기획하고 개발해 판매하는 상품을 ‘PB상품’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진 PB로는 대형마트 3사의 PB인 노브랜드(No Brand), 온리프라이스(Only Price), 심플러스(simplus)가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과 같이 기존의 유통업체는 제조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매장에 유통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마트가 식품·생활용품 분야의 PB인 ‘이플러스(E-PLUS)’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 유통업체는 PB를 개발해 PB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PB상품은 많은 소비자에게 하나의 주요한 소비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저렴한 가격만을 전략으로 내세웠던 과거의 PB상품과 달리 오늘날 PB상품은 저렴한 가격과 함께 기존 제조업체 브랜드의 상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품질을 갖추게 됐다. 식품·생활용품 분야의 PB상품을 자주 구매하는 박선아(47. 여) 씨는 “요즘 소비자는 상품이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그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그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러나 PB상품은 가격이 저렴한 동시에 품질도 좋아 자주 구매한다”고 말했다.

  싼 게 비지떡이다?
  PB상품의 이유 있는 가성비

  기존의 유통업체는 제품을 유통·관리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창출한다. 이러한 유통업체가 직접 브랜드를 개발해 상품을 판매하면 PB상품을 판매함으로써 기존의 수익 창출 구조와는 다르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임채운 교수(이하 임 교수)는 “기존의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의 제품을 유통·판매하면서 고정된 마진율만큼 이익을 창출했다”며 “이는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물량이 늘어날수록 이익률이 증가하는 제조업체와 달리 유통업체는 마진율을 향상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유통업체도 직접 제품을 기획해 판매하면서 제품에 대해 직접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며 “또한 이익을 증대하는 것도 예전보다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 비해 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는 상품의 원가를 낮춰 판매할 수 있어 제품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한신대 학교 경영학과 오창호 교수(이하 오 교수)는 “유통업체는 직접 상품을 유통하고 판매할 수 있다 보니 별도의 비용이 지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유통업체는 PB상품을 기획해 판매하기만 할 뿐 제품의 생산은 다른 제조업체에게 위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생산설비를 갖출 필요가 없어 고정비 부담이 낮다”고 말했다.

 

  잘 만든 PB 하나
  열 브랜드 안 부럽다

  유통업체는 다른 유통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PB를 개발하기도 한다. 유통업체만의 특색있는 PB상품을 개발해 판매함으로써 더 많은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기존의 유통업체는 매장에서 취급하는 기존 제조업체의 상품으로 매장의 차별화 전략을 펼쳤다”며 “그러나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소매시장과 다양한 유통업체의 등장으로 유통업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업체는 자사만의 차별화된 경쟁우위 요소를 갖기 위해 PB상품을 개발해 판매한 것이다”고 말했다.

  PB상품은 유통업체가 자체적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돕는다. 임 교수는 “유통업체는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제품의 제조과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업체가 자체적으로 제품의 품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제품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또한 제조업체와 거래 과정의 협상력도 높여준다”고 말했다.


  이러한 면에서 PB는 중소 유통업체가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임 교수는 “중소 유통업체의 경우 대기업 유통업체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약하다”며 “이때 중소 유통업체가 좋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개발한 PB는 그 업체의 부족한 브랜드 인지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대기업 유통업체보다 자본이 부족한 중소 유통업체가 브랜드 인지도가 중요시되는 상품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영세 업체 울리는
  거대 자본의 횡포

  현재 우리나라의 PB 시장 규모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형마트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PB상품 매출액은 전체 PB 시장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8년, 대형마트 3사는 PB 시장에서 3조 2,1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5년 후 5조 6,5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5년 동안 대형마트 3사가 PB상품으로 얻은 매출이 약 76%가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PB 시장에서 나타나는 유통업체의 활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PB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통업체가 대부분 대기업인 상황에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경쟁이 정당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논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진국 연구위원(이하 이 연구위원)이 발표한 ‘PB상품 전성시대, 성장의 과실은 누구에게로 갔나?’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이 출시한 PB상품 중 기존 제조업체의 상품의 특성만 약간 변형했거나 포장만 바꾼 상품이 전체 상품의 약 88%를 차지했다. 이는 유통업체가 PB상품을 통해 큰 노력이나 경제적 투자 없이 이익을 창출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기업 유통업체와 중소 제조업체의 이익배분 구조가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대기업 유통업체와 중소 제조업체가 PB상품으로 창출되는 이익을 배분할 때 두 기업의 지위 불균형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조선비즈에서 이 연구위원은 “PB 시장에서 영향력이 있는 대기업 유통업체와 달리 중소 제조업체는 그 영향력이 약하다”며 “그러다 보니 중소 제조업체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보복행위를 우려해 대기업 유통업체와의 거래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를 감수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PB상품의 경쟁력만으로 공정하게 경쟁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PB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시장참여자인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경제체제 속
  뜨거운 PB 경쟁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대기업 유통업체와 중소 제조업체의 이익 배분 구조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대기업 유통업체의 마진율이 중소 제조업체의 이익률보다 높은 이익 배분 구조가 시장경제체제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유통업체는 PB상품을 기획해 제작하는 것에서부터 유통해 판매하는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며 “그 과정에 제조업체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손실 위험은 유통업체가 부담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실 위험 부담이 큰 기업이 이익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시장경제체제에서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원리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익이 창출되는 과정에서 제조업체가 불리한 처지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통업체에만 이 문제의 책임을 지우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만약 중소 제조업체가 이익을 더 배분받기 위해선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등 그만큼의 투자를 해야 한다”며 “중소 제조업체가 그런 투자를 하지 않고 대기업 유통업체에 이익을 더 배분해달라고 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채로운 PB가 선도하는
  다양한 소비문화

  그렇다면 PB 시장에서 경쟁에 참여하는 기업 모두가 만족할만한 PB 시장은 형성될 수 없을까? 그러기 위해선 업체의 불공정거래를 방지할 정부의 올바른 규제가 필요하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PB 시장은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초기 단계다”며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PB 시장에서 기업들이 경쟁하다보면 불공정거래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정확한 감시와 법적 잣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PB가 등장하며 PB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임교수는 “현재 국내 유통업체의 PB는 주로 수요를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위험부담이 낮은 식품·생활 용품 분야에 포진돼 있다”며 “국내 PB 시장보다 30여 년 빨리 등장한 외국 PB 시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PB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유통업체는 소비자와 접촉하기 쉬워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국내 유통업체는 그 장점을 이용해 외국 PB 시장처럼 다양한 분야의 PB를 개발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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