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하면 난해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최근 현대미술 작품은 작품 자체보다 흥행도와 가격으로 주목받곤 한다. 현대미술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나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현대미술을 어떤 시선으로 감상해야 할지 알아보고자 한다.
덜어냄의 미학
현대미술
현대미술이란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술을 의미한다. 20세기를 기점으로 유행한 △설치미술 △팝 아트 △개념미술이 대표적인 양식이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전통미술과는 다른 독창적인 기법이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오브제 △사진 △영상 등을 통해 틀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주제를 표현한다.
현대미술의 배경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미술 사조인 인상주의에서 시작한다. 인상주의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다르게 작가 본인이 받은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당시 미술은 부를 소유한 자들만이 향유하는 문화로 여겨져 일반 시민들이 접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당시 화가들은 지배계층의 수요에 맞춰 신화·성경을 중심 소재로 삼았다.
반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을 소재로 포착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대상의 현재 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매일 변화하는 모습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했다.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꼽히는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희뿌연 색채를 사용해 해가 돋는 르아브르 항구의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그는 해가 떠오르는 찰나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자세한 풍경보다 빛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인상주의 미술은 탈전통적이며 작가의 개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시초라 평가받는다. 오늘날의 현대미술 또한 전통적인 회화와 다르게 추상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현대미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물의 재현이 아닌 작가의 주관이기 때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은영 교수(이하 박 교수)는 “주제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주의 작품과 달리 현대미술은 주로 △선 △면 △색채 등 최소한의 형식적 요소만 사용한다”며 “이러한 작품은 현실 속 모습을 연상하기 어려워 감상자에게 난해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새로운 패러다임
예술과 상업
팝 아트의 거장으로 불리는 앤디 워홀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현대 미술가를 대표한다. 그는 주로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를 주제로 선정했다. 대표작인 <Campbell’s Soup Cans>는 32가지 종류의 통조림 깡통을 캔버스에 찍어낸 판화다. 그는 **실크 스크린 방식으로 작품을 대량생산 후 판매해 대중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골적으로 이윤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직접 작품을 만들었기에 작품을 대량생산해 판매한 일은 상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대미술가이자 앤디 워홀의 후계자로 불리는 제프 쿤스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공장처럼 가동해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는 오로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만 하며 실질적인 제조는 기술자들에 의해 이뤄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천문학적인 가격에 매입된다. <Michael Jackson and Bubbles>는 당시 가장 유명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조각품이다. 제프 쿤스는 이 작품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그는 단숨에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 후 제프 쿤스는 해당 조각상과 동일한 3개의 작품을 만들어 값비싼 가격으로 재판매했다. 그는 대중문화를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도 높은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간 예술은 고상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생각이 미술계에 지배적이었으나 상업적인 성격을 띈 작품이 등장해 순수미술과 대중미술 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들은 당시 배제되던 주제를 작품에 끌어들이며 미술이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형식을 벗어난 예술
작품인가 기만인가
2019년,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에 바나나가 작품으로 전시됐다. 별다른 효과없이 실제 바나나를 벽면에 붙여놓은 모습이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이하 카텔란)의 <코미디언>으로 설치미술에 해당한다. 설치미술이란 작가의 의도에 따라 물체를 전시해 공간을 구성하는 현대미술의 표현방식 중 하나다. 독특한 방식으로 전시된 이 작품은 한화로 약 1억 7,000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낙찰돼 화제가 되며 여러 기업에서 해당 작품을 모방한 광고를 선보였다. 그 중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은 감자튀김 하나를 벽면에 붙이고 0.01 유로로 가격을 표기한 사진을 게시해 <코미디언>을 패러디했다.
<코미디언>을 감상할 때 중요한 점은 바나나가 아니다. 바나나를 미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 작가의 ‘의도’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카텔란이 판매한 것은 작품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인증서다. 그는 인증서에 작품의 설명과 전시 방법을 명시해 증서를 소유한 자만이 작품을 전시할 자격을 가진다고 말했다. 테이프로 바나나를 벽에 붙이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위지만 작품으로 인정 가능한 바나나는 전 세계에서 단 세 개 뿐이다. 결국 <코미디언>이 값비싼 가격에 거래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물 속에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은 설치미술에 이어 개념미술의 범주에도 포함된다. 개념미술은 현대미술의 형식 중 하나로 작가의 생각 그 자체가 주를 이루는 분야다. 결과물보단 작가의 아이디어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예술이라 보며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집중한다. <코미디언>처럼 단순한 기법을 사용한 사물도 그 자체로 작품이 됐듯 평범한 물건도 작가의 관점에 따라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
개념미술은 일상 속 무엇이든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새로운 미술사적 지평을 열었다. 동시에 작가의 심오한 철학을 기반으로 제작돼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박 교수는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오브제를 작품으로 제시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더 나아가 오브제가 작품으로서 어떠한 맥락으로 읽히는지 생각하며 주체적으로 감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험을 통해 발견하는
예술의 가치
현대미술은 말 그대로 동시대의 미술이다. 지금도 현대미술은 계속해서 변화하기에 함부로 정의할 수 없으며 이해하는 것 또한 어려울 수 있다. 이에 현대미술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전통미술과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칼럼 <현대미술은 사기일까?>를 작성한 김선지 작가는 “현대미술에서는 더 이상 사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중요하지 않으며 예술가의 선택에 따라 무엇이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수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현대에서 정의하는 예술이란 단순히 작품을 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후각 △청각 △촉각 등 여러 감각을 사용한 체험을 말한다. 춘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류지영 교수는 “작품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감성과 사고는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다”고 말했다.
오늘날 예술은 학문으로서의 접근이 아닌 관람자가 얻는 교훈이 중요하다. 작가가 다양한 기법과 실험을 통해 예술 작품을 내놓듯 보는 이 또한 가지각색의 느낌과 해석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현대미술은 감상자의 자유롭고 다양한 해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며 “작가의 의도만이 아닌 관객의 해석을 통해서도 의미를 만들어가는 분야다”고 말했다.
과거와 다르게 오늘날에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다. 예술은 더 이상 특정 부류만의 문화라 할 수 없으며 이를 향유하는 방식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어렵다. 작품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 편견 없이 예술 작품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브제: 예술과 무관한 물체를 본래 용도에서 분리해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갖는 매개체
**실크 스크린: 실크 천에 구멍을 뚫은 뒤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판화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