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인력 확보의 딜레마, 의대증원
필수의료 인력 확보의 딜레마, 의대증원
  • 강서영 기자
  • 승인 2024.09.23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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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의료계 사이 원활한 의사소통 선행해야

  보건복지부의 ‘OECD 보건 통계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30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의사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과대학 모집인원 증원 정책(이하 의대증원)을 추진하며 의료계와 대립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현 의대증원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 이어질 의대증원의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필수의료 위기에
  주목받는 의대증원

  국내 의대증원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다. 2000년, 정부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구분하는 ‘의약분업’을 시행했다. 당시 정부는 의약품을 판매할 권한이 제한될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의과대학 입학정원(이하 의대정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했다. 그 결과 의대정원은 2006년 기준 3,058명으로 동결됐다. 의대정원이 동결된 지 14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인해 우리나라 임상 의사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10년동안 총 4,000명의 의대정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전체 인구 대비 의사 수가 감소하는 추세에도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자 필수의료 인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나타난다. 필수의료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필수의료 분야에 최소 인력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국민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에 따르면 전국 필수의료 분야 모집인원 대비 전공의 확보율은 △소아청소년과 26.2% △산부인과 63.4% △응급의학과 76.7% 등에 그쳤다. 비수도권 지역의 모집인원 대비 전공의 확보율은 △소아청소년과 11.7% △산부인과 46.6% △응급의학과 74% 등으로 비수도권의 필수의료 인원은 더욱 부족한 실정이다.

 

20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전기모집 선발결과 발표 <출처 / 보건복지부>

 

  이에 윤석열 정부는 2035년까지 최대 1만 5,000명의 의사를 확보하고자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제시했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4대 의료 개혁인 △의료 인력 충원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공정한 보상으로 구성된 정책이다. 정부는 해당 정책의 일환으로 의대증원을 재차 추진하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 의대증원에 중점을 둬 지역인재 전형 권고기준을 60%로 상향했다. 앞선 정책 발표에 따라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대입 수시모집은 의대증원 정책을 반영해 이뤄졌다.

 

  의대증원의 한계
  의료계 반발로 이어져

  정부가 의대증원을 추진하는 가운데 반대의사를 표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의료계는 대한의사협회를 주축으로 의대증원의 한계점과 부작용을 지적하며 의대증원 철회를 요구하는 총파업을 진행했다.

  정부는 의대증원으로 인해 의사 수가 증가하면 필수의료 분야 인원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증원한 인원이 필수의료로 유입되지 않을 경우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다. 올해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가 전국 의과대학생 1만 4,67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정책 및 현안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2%가 필수의료 패키지에 반대하는 이유로 의료시스템의 복잡성과 유기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이는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이 단순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필수의료 분야는 타 진료과에 비해 수가가 낮다. 수가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진료비다. 건강보험공단이 책정한 금액을 준수해야 하는 급여 진료는 금액 책정이 자유로운 비급여 진료보다 수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급여 진료 항목이 주를 이루는 필수의료 종사자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를 근거로 의료계는 의대증원 추진에 앞서 필수의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의대증원으로 인해 의사 양성 과정에서 교육의 질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의대협은 입장문을 통해 “2,000명의 학생을 추가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6조 5,0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나 교육부는 구체적인 예산 규모를 확정하지 않았다”며 “의대증원에 앞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 시설과 체계가 보장돼 있는지 의문이다”고 전했다. 의과대학생의 학습권 우려가 지속되자 지난 5월, 의과대학생 단체는 서울고등법원에 의대증원 집행 정지를 신청했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의대증원으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와 의과대학생들의 손해를 인정했다.

 

의대증원을 비판하는 팻말 <출처 / 한국일보>

 

  그럼에도 의대증원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그러나 의대증원 집행 정지 신청은 인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의대증원 시행으로 발생할 손해에도 불구하고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의 인력 회복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신청을 기각했다. 이어 대학 측의 의견을 존중하며 의과대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대증원을 이어갈 것을 권고했다.

  정부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바탕으로 의대증원의 부작용을 예방하고자 다양한 보완책을 제시한다. 지난 10일, 교육부는 ‘의학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2030년까지 △의과대학 교육 △전공의 수련 △대학병원 연구 역량 강화에 약 5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특히 지역 내 대학병원을 필수의료 거점으로 양성하기 위해 국립대학병원을 집중 지원한다. 더불어 필수의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증·필수 분야의 공정한 보상 체계를 제시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따르면 800여 개의 중증 수술 및 마취 수가가 인상될 계획이다.

  정부는 앞으로 증가할 의료 수요를 고려해 의대증원 및 관련 정책과 투자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책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의료계와 소통하며 향후 의대증원 인원을 조정할 의향을 내비쳤다. 지난 12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정원 및 의료 정책에 대해 의료계와 논의할 준비가 됐다”며 “의료계가 정책 협상에 참여해 의료개혁 진행에 도움을 주기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응급의료 종합상황을 보고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출처 / 경남포스트>

 

  말 많은 의대증원
  결국 해답은 ‘소통’ 뿐

  필수의료 부족으로 의대증원을 추진하는 현상은 해외에서도 발생했다. 2008년,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로 지역의료 부족이 문제되자 의대증원을 시작했다. 이후 의사와 소통해 의료 서비스의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맞게 증원 인원을 조정하며 점진적으로 의대증원을 이어갔다. 독일은 의료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의대교육 마스터플랜 2020’을 계획해 의대정원을 50% 확대했다. 이처럼 각국에서 의대증원을 추진했으나 의료계가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에 태원준 국민일보 논설위원은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는 건강보험을 통해 국가에서 통제하는 반면 의료 체계는 민간에 의존하는 형태다”며 “이에 의사는 진료비를 자유롭게 조정하기 어려운 동시에 시장원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시스템 전반을 국영화 또는 민영화하는 타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복합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강한 반발이 생겨난 것이다.

  의대증원은 우리나라의 의료 특성을 고려해 진행해야 한다. 독일은 의사의 의대증원 요구를 정부가 직접 반영했으며 일본은 의료계와 정부의 협의로 의대증원을 결정했다. 의대증원이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선 우리나라 의료 특성을 잘 파악하며 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상호 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의대증원을 이어간다면 앞서 제시한 한계점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의대증원은 단순한 숫자 조율 문제가 아닌 국민의 생사와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과 체계적인 대처방안 구성이 필요하다. 의료계와 정부가 협력해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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