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안정 위협하는 전세사기
주거안정 위협하는 전세사기
  • 강서영 기자
  • 승인 2024.06.03 2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해자 보호를 넘어 악용되는 전세의 허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2022년, 서울 및 수도권 일대에서 500여 세대에 달하는 임차인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 전세사기 사태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드러내며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안의 현황을 알아보고 근본적인 제도가 발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전세의 함정
  위험에 빠지는 임차인

  2022년 7월, 주택 수백 채를 보유한 투기 일당 이 183억 원가량의 전세금을 빼돌려 구속·기소 됐다. 이어 몇 달간 비슷한 범죄 수법의 전세사기 사건이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며 피해자가 속출했다. 투기 일당은 주택을 매입할 때 매매 금액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전세금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어 해당 금액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 투기' 방식을 이용했다. 이후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 형식은 대표적인 전세 사기 수법이다.

 전세는 세입자인 임차인이 집주인인 임대인에게 부동산을 빌리는 대가로 일정 금액을 맡기는 계약 방식이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 없이 목돈을 맡기는 전세 특성상 계약 종료 후 임대인이 전세금을 갚을 의지가 없다면 임차인은 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전세의 허점을 이용해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전세금을 편취하는 사기 유형을 '전세사기'라고 한다.

  대표적인 전세사기 수법으로는 △깡통주택 △이중 계약 △동시 다중 계약 △주택 명의 변경이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법인 깡통주택은 임대인의 주택담보대출과 임차인의 전세금 합이 집값 과 비슷한 경우에 발생한다. 이 경우 임대인이 대출을 갚지 못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간다면 임차인의 전세금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돌려받기 어렵다. 계약을 이용한 수법에는 이중 계약과 동시 다중 계약이 있다. 이중 계약은 이미 월세 계약이 체결된 주택에 전세 계약을 이중으로 맺는 수법이다. △월세 세입자 △공인중개사 △임대관리 업체 등이 임차인을 속여 전세금으로 월세를 충당하고 남은 금액을 가로챈다. 동시 다중 계약은 임대인이 하나의 주택을 가지고 여러 임차인의 전세금을 동시에 받는다. 임차인이 본격적으로 전입하기 전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이용해 단기간에 많은 임차인의 전세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마지막으로 주택 명의 변경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알리지 않고 주택의 소유주를 바꾸는 상황을 말한다. 이 경우 새로운 임대인의 채무가 많다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출처/서울경제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사고액 추이 <출처/서울경제>

  청년세대는 왜
  전세사기에 취약한가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지난 1~4월, 전세사기 피해자의 전세금을 반환한 금액인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사고액’은 총 1조 9,062억 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전년 대비 76% 증가한 액수로 최근 몇 년간 임대인이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는 현상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처럼 전세사기가 꾸준히 증가한 주요 원인에는 피해자가 임대인과 주택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보고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 특별법) 추진 현황에 따르면 특별법 심의에서 인정된 피해자는 총 9,109명이다. 이중 72%인 6,553명은 20·30대이며 청년세대가 전세사기의 주요 피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세대는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해 사기 대상이 되기 쉽다. 국제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권호근 교수(이하 권 교수)는 “청년세대는 전세사기가 주로 이뤄지는 빌라나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계약 경험이 적어 전세 세입자 보호규정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다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청년세대는 비교적 자본이 적어 전세사기에 노출되면 피해 상황을 회복할 능력이 부족해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청년을 비롯해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전세사기는 자본과 주거환경을 동시에 앗아가는 생존 위협으로 작용한다. 이에 전세사기를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 <출처/쿠키뉴스>

  이어지는 법안 제정과
  실효성 없는 법률

  피해자가 급증하자 지난해 6월,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했다. 전세사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임차인에게 특례를 부여해 지원을 보장하는 전세사기 특별법은 제정 직후 한 달 만에 빠르게 시행됐다.

  그러나 제정된 전세사기 특별법조차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가 발생해 법률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전입신고를 마치고 임대차 계약의 확정일자를 갖춘 경우 △전세금이 최대 3억 원 이하인 경우 △임대인이 파산 또는 개인회생을 개시하거나 주택을 경매 또는 공매에 개시한 경우 △임대인의 기망 사실이 확실하게 드러난 경우 등에 해당해야 피해자로 인정받는다. 이 조건은 확정일자의 효력이 하루 뒤 발생하는 점을 이용해 사기를 저지르는 임대인을 규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효력이 발생하기 전인 계약 당일 거액의 대출을 받으면 임차인은 대응할 수 없다.

  이에 지난 28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본 회의에서 가결된 후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그러나 야당은 22대 국회가 열리면 법안을 재추진할 전망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선구제 후회수’로 피해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자사의 자금으로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는 피해 주택을 매입해 피해자의 주거 안정을 확보한다. 이후 채권 추심과 매각을 진행해 피해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해당 법안은 임차인이 받는 사후 피해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 역시 피해자 구제에만 집중해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김준일 교수(이하 김 교수)는 “피해자 구제에만 집중한 법안은 구제받는다는 전제하에 전세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낮춘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전세사기가 다른 사기 사건과 마찬가지로 개인 간 거래에서 일어난 문제임에도 국가가 피해자 구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대규모 전세사기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제정한 특별법인 만큼 추후 발생하는 전세사기 사건에 근본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에 참석한 전세사기 피해자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에 참석한 전세사기 피해자 <출처/뉴스핌>

  개선의 핵심은
  전반적인 제도 변화

  이어지는 법안 제정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허점이 제기되자 전세 구조 근간에 내재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세는 주택 매입을 위해 자금을 모으기 전 머무르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근 전세금이 무자본 갭 투기 자금으로 사용되는 등 기존 의도에서 벗어난 전세 계약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매매가에 달하는 높은 전세금이 책정된다. 기존 전세가 가진 의의가 퇴색한 현시점에서 전세 계약 지속을 위해 허점이 많은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

  임대차 거래는 법률관계가 복잡해 거래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복잡한 법률은 정보의 비대칭을 야기하기에 계약을 맺는 과정 중 계약 당사자를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부동산금융자산학과 배동학 교수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기 쉬운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전세 계약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며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고 임대인이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심사 받을 때 임대차 계약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세 계약 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의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서 강대학교 경제학과 김도영 교수는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의 상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 하는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며 “소상공인 수준에 머무르는 현재 공인중개사가 체계적인 정보를 수 집하고 평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공인중개업 의 기업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액의 장기 무담보 신용대출 형태인 현 전세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교수는 “임차인이 전세자금을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예치하고 은행은 해당 재원으로 임대인에게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은행의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대출을 주택담보대출로 지정하는 방식과 은행에 위험을 위탁한 임차인에게 소정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해당 방식은 사금융에 속하는 거액의 장기 무담보 대출인 전세를 개인 간 거래에서 제도권 금융거래 형태로 전환해 계약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이어지는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제화 시 임차인의 권리 보장이 지나치지 않도록 타협점을 찾는 노력이다. 전세 구조 개선을 넘어서 임차인과 임대인의 권리를 모두 보장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임대차 제도를 고려한 법 마련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