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호 학술문예상 수필 우수작
제47호 학술문예상 수필 우수작
  • 김민솔(영어영문 4)
  • 승인 2023.12.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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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지 않는 방법

  난 한 번도 내가 한 곳에 오래 머물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이 시대에, 한평생 일을 해도 집 하나를 얻을까 말까 하는 이 시대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15년 전,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티비 개그 프로그램에서 떠들어 댔으니, 이제는 거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내 머릿속에, 그리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듯했다. 자취를 시작하고도 이곳이 나의 보금자리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하고 무언가 살 일이 있을 때마다, 1년이면 떠날 건데, 2년이면 떠날 건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가 나는 어딘가에 오래 묶여 있는 삶보다, 내 집을 마련해 안정감을 느끼는 삶보다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삶을 꿈꿔왔다. 최근 몇십 년간 여행 작가부터 시작해 여행 유튜버가 늘어나는 것은, 또 우리가 그것을 소비하기를 즐겨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미국으로 와서 내 미래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나의 호스트 패밀리인 ‘밥 아저씨’. 비록 80대의 할아버지이시지만 우리가 그를 아저씨라 부르는 이유는 ‘밥 할아버지’보다 단순히 입에 더 잘 붙기 때문이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이곳의 이름은 ‘그린빌(Greenville)’로 대중교통조차 없는, 펜실베니아와 오하이오 사이에 아무런 존재감 없이 존재하는 조그만 동네이다. 이 변두리 지역의 이름을 듣고 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마을 이름이 ‘그린빌’이냐며, 이렇게 재미없는 동네 이름도 있냐며 농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사람 사는 주택들과 아주 조그만 다운타운, 그리고 도로에 있는 월마트와 각종 패스트푸드점이 이곳의 전부이다. 이 지루한 곳에서 밥아저씨는 약 70년을 살아왔다. 미군 신분으로 한국에 와 계셨던 약 10년을 제외하면 한평생을 이곳에서 산 셈이다.

  나는 그의 집을 방문한 뒤, 세월이 온갖 곳에 묻어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이곳에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70년도부터 살았어.’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I could never.’ 저라면 절대 그러지 못할 거예요. 그니까 밥아저씨는 그린빌에서 살아온 70년 중에서도 50년을 한집에서 살아온 것이다. 나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지하철에서 수백 명과 어깨를 부딪치는 서울에 살아도 가끔은 지루했는데.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한 집에 몇십 년 동안이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던 나에게 답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의 차 뒷좌석에 타 그린빌 곳곳의 풍경을 구경하며 창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을 때였다. 시간은 어느새 4시에서 5시를 향하고 있었고 노을이 지기 전 햇빛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 가을의 황혼은, 노랗게 빨갛게 또 주황색으로 물든 낙엽을 비추어 더욱더 형형 색깔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가히, 아름다웠다. 햇빛은 낙엽을 비추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창가를, 그리고 나의 눈가로 시선을 돌리었다. 그런데도 나는 감히 눈을 찌푸릴 수 없었다. 내 눈가를 찌르는 햇살에 나는 오히려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 매년 여름이 가을로 바뀌고, 매일 해가 질 때마다 창가 아래 그림자가 지는데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법을 모르고, 강아지풀이 발목을 스칠 때 웃지 않는 법을 모른다. 언젠가 너무나도 우울했던 나날들에, 심지어 죽음을 꿈꿨던 밤에도. 나는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오는 햇빛의 아름다움에 언제나 감탄하고 있었다. 해의 죽음을 추모하는 바닷가 위의 색깔, 그리고 다시 해의 탄생을 비추는 윤슬. 그것들이 나를 죽지 못하게 했다. 태양은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인간의 삶에 대한 미련을 향한 비소일지도 몰라도, 눈물자국에 짓눌린 눈덩이와 지친 심신으로도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몰랐다.

  밥아저씨는 가을이면 제철인 옥수수를 구하기 위해 1시간을 운전해 농장에 가고, 추수감사절이 되면 칠면조를 산다. 옥수수가 맛이 없어질 즘에는 사과를 사러 가고 덤으로 멋대로 자란 호박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찾아온 겨울에 달달한 디저트를 사고 벽난로를 켠다. 주말이면 한국 학생들을 초대하고 두 계절이 지나가면 학생들이 떠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학생들이 찾아오고 밥 아저씨는 우리를 다시 옥수수 농장에 데려간다. 그는 우리의 서툰 영어 농담에 항상 웃는다.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는 나처럼 개와 늑대의 시간을 아끼는 사람일 것이다. 밥아저씨는 나처럼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를 것이다. 그것이 그가 이 그린빌에 70년을 머물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던 나날들이 모두 무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얻으려 했는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갔는가? 왜 매일 밤을 새우고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코피를 막고 낮은 점수에 슬퍼하고 눈물을 흘렸을까? 내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뿐인데. 그것 하나면 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데. 나는 미국에 와서 언어 말고 무엇을 배웠냐고 물으면 무언가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것. 나는 세상을 사랑하면 얻을 수 있는 ‘여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 수능이 끝나면 쏟아지던 죽음에 관한 소식들을 기억한다. 아직도 내 곁의 친구는 취업을 걱정하며 여전히 자격증 공부에 밤잠 못 이루고 수업을 듣느라 끼니를 거른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친구들이, 그리고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의 모든 이들이 밥을 먹어야 할 때는 먹고 자야 할 때는 자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행복해하는 일이다. 여름 앞에서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짜증보다는 잠시 쉬어갈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지만 왜 사회는 우리에게 이러한 것을,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자꾸 잊으라 했을까. 무엇이 우리에게 계절이 변하는 것을 보며 행복해할 자유조차 빼앗아 갔을까. 왜 나는 이러한 것을 미국에 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을까? 나도 안다.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한국은 미국처럼 땅이 크지도 않고 경제적 규모도 작고 이런 저런 정치적 역사적 요소들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즐길 기회를 달라고. 달리는 중간에라도 세상을 사랑할 여유를 달라고. 그러면 어쩌면 우리는 다음의 청춘에게 내가 느낀 것과 같은 세상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지만 홀연히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나를 꿈꾸지는 않는다. 나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배웠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늙어가고 계절은 변해간다. 밥아저씨가 가는 농장의 옥수수는 시간이 다르게 커갈 것이고 또 죽어갈 것이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이지만 단 한 순간도 같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매일 만날지라도 우리는 항상 즐거운 것에 대해 말하고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매년 햇빛으로 물든 단풍잎에 감탄하고, 한밤중에 내린 눈에 남몰래 들뜨고, 어느새 따스해진 날씨에 놀라 이른 산책을 나오는 것을 반복한다 해도 왠지 모르게 이젠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공간에 오래 머무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그 전에 내 집 마련을 못하니 불가능한 일인 걸까? 어쨌든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 어차피 모르니 그냥 만끽하자. 여유를 가지고 잠시라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억지로라도 챙기자. 그러니 감히 당신께 말해본다. 우리 조금만 밥아저씨처럼 살면 안 될까?

 

 

  <제47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수상소감>

  저는 사실 말주변이 없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나 제가 생각하는 것이, 원하는 것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말을 더듬고는 하니까요. 그런데 일단 무작정 글을 쓰면 무언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제야 제가 무엇을 느꼈고, 말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세상은 모든 것이 글로 소통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문자나 카톡 할 때 말을 잘하느냐 물으면 불행히도 그것도 아닙니다. 서투르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기다릴 시간을 걱정하다 무작정 타자를 쳐버리고, 말실수하기 일쑤입니다. 어쩌면 저에게 필요한 건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 미국에 왔으니, 큰 방황을 했습니다. 모국어로도 말을 잘 못하는데 타국어로 제 생각을 표현하기라뇨.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에 저는 자꾸만 작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영어단어를 생각하느라 한참이나 뜸을 들어도 한국과 다르게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 침묵이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도요.

  아마 그때부터 이곳의 사람들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와 다르게 ‘여유’를 알고 있다는 것을요. 그때부터 무언가 자꾸만 저를 건드렸고 밥아저씨의 차에서 ‘여유’의 의미를 깨달았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말주변이 없던 제가 평생을 찾아왔던 것이니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경험을 꼭 글로 풀어내겠다. 생각만 하던 저에게 학술문예상이라는 기회가 다가왔고 감사하게도 수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상이 아니라 매 순간 쫓기던 저에게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글로 마음을 전해도 된다고 말하는 위로처럼 느껴지네요. 평생 동안 던진 질문에 드디어 답변을 받은 것 같아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상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 조금은 밥아저씨처럼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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