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사대(事大)와 농단(壟斷)
역사 속 사대(事大)와 농단(壟斷)
  • 최주희 사학전공 교수
  • 승인 2023.05.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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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510일 검찰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 정부의 성과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거대정당의 대결 구도 속에 정책 성과의 지표들이 여야에 각각 유리한 키워드로 가공·재생산되고, 세대 간, 남녀 간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뉴스가 사회적 이슈로 연일 회자되는 가운데, 현실정치에 대한 피로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강남 수재민 사태와 이태원 참사에서 보인 안일한 행정 조치나 강제동원 배상 처리 문제에 관한 굴욕적 외교 행보에 대해 선출직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는 반성과 사과의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의 이러한 정치 행태는 군부독재와는 또다른 모습의 권위주의 정치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노선을 관통하는 기저에는 힘에 굴복하는 패권주의적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 역사시대 이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지속적인 위협 속에서 대한민국이 단일 민족의 신화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평화기에는 외교전략으로서의 사대교린(事大交隣) 질서를 존중하더라도 전란기에는 국토 수호 및 국권 회복을 위한 치열한 외세저항운동을 펼친 데 있었다. 특히 대중국 외교에서의 사대정책은 시대마다 집권 세력 간 온도 차는 있었지만, 근본 기조는 동아시아의 보편 문명에 대한 존중 그 이상이 아니었다. 17세기 명청교체 이후로는 정치군사면에서의 외교는 보다 형식화되고, 민간 지식인들의 교류가 확대되었다. 교린국이었던 일본에 대해서도 조선전기 이래 한반도 남단을 노략질하던 왜구에 강경 대처하면서도 계해약조(세종 25)를 통해 교역의 통로를 열어주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전략이 통용됐다. 임진왜란 직후 전범처리 및 서계 문제에 관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기유약조(광해군 1)를 통해 시혜적 경제교류가 재개되고 평화적 교린관계의 틀이 유지됐다.

  문제는 한일병합 후 일제 총독부 권력에 기생하던 많은 언론·군인·경찰들이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의 새로운 권력층으로 재편되면서, 이들과 이들의 후예들이 전근대 사대외교의 형식논리를 대일·대미 관계에 직접 적용하는가 하면, 일제 식민사관을 계승한 식민지근대화론을 확대 재생산해오고 있는 점이다. 주변 강국의 패권에 굴복해 외교적 수사(修辭)를 수사가 아닌 양육강식의 현실정치로 받아들임으로써 어떠한 비극을 맞이했는지 우리는 불과 한 세기 전에 뼈져리게 통감(痛感)’한 바 있다. 또한 자국에서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 강국을 이용해 온 정치세력들이 내지 구성원을 어떠한 방식으로 탄압하고 국정을 농단해왔는지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 사례를 익히 봐 알고 있다. 집권층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해온 다수의 구성원에 대해 공동체적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호시탐탐 높은 곳에 올라[壟斷] 이익을 꾀하려는 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7~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이러한 역사적 기원을 갖는 한국의 정치세력과 그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진실을 폭로하는 행위만으로도 권력에 큰 위협이 되었던 87년과 달리, 저마다의 의견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지금이 역설적으로 권력을 통제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과거 권력을 통제하던 이 이제 권력을 쥐고 민의를 통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지금, 그럼에도 여전히 권력을 견제하는 최선의 방식은 다수의 뜻을 모으고 이를 문자로 기록하여 역사화하는 작업일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43주기를 맞이한 지금, 민족의 자주독립과 해방 후 민주화에 앞장서 온 덕성의 사학인으로서 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한 시국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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