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뇌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뇌다, 고로 존재한다?
  • 김효은 뉴욕대 객원학자
  • 승인 2012.05.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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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윤리의 쟁점과 전망

  2010년 5월 13일과 14일, 미국 테너시 주 연방 법정에서는 뇌 스캔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셈라우(Lorne Semrau) 씨는 한 회사의 사기사건에 간여했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Cephaos라는 뇌영상 서비스 회사에서 자신의 뇌를 스캔한 자료를 포함시켜 달라고 연방법원 청문회에 제출했다. 예전에는 영화 속에서나 상상했을 법한 이런 공방이 벌어진 것은 뇌신경과학의 발전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도구가 되는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다. 뇌신경과학의 급속한 발전은 이제 뇌신경에 영향을 주는 인지향상 약물, 정서개선약물이나 자극시술을 받아서 ‘마음 성형’을 하는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이 모습은 바로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공상과학소설 <Brave New World>(국내 번역제목 : 멋진 신세계)가 묘사한 사회로 이제 ‘놀라운 신경세계’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신경의 상태가 우리의 마음이나 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9세기 철도노동자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P. Gage)의 경우는 뇌의 특정 영역이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유명한 사례다. 1848년 철로확장공사 중 쇠막대기가 뇌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부분을 통관하는 폭발사고를 입은 게이지는 생존했으나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등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같은 신경학자들은 게이지의 뇌손상과 동일한 뇌 영역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뇌가 손상된 살인범에게 무죄를 판결해야 할까? 법적, 윤리적 평가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과 행동의 대부분이 뇌신경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자유의지가 없고 뇌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인형인 건 아닐까?

  ‘신경윤리’라는 새로운 분야는 이렇게 뇌신경과학의 발전에 따라 발전한 뇌신경 테크놀로지, 더 나아가 의식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제기되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들을 고민한다. 뇌신경과학의 발전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를 새로이 바라보게 해준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자유의지를 진정 가지고 있는지, 자유의지를 전제하는 법적 판단이나 사회적 규율이 과연 적절한지, 인지향상약물을 복용하고 시험을 치루면 부정행위인지, 뇌영상이 범죄자 판결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 등을 말이다.

  뇌신경이 우리 마음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몰라’ 결국 내 마음을 알기 위해 뇌과학에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영향을 진지하게 고려한다 해도 모든 뇌손상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신경윤리의 설명이 아니다. 실제 범죄자로 판결 받은 모든 이들이 뇌손상을 가진 것은 아니고,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도 일부 범죄자의 뇌 모습과 똑같은 뇌손상을 가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인에게든 우리 자신에게든 너무 관대해서도 너무 가혹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우리가 자전거를 잘 타게 되는 것은 자전거 타는 능력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일정시간의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뇌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타고난 것에 더해 환경과 학습을 통해서 끊임없이 변화한 결과다. 신경윤리는 이렇게 선천적 요인, 후천적 요인 등의 여러 맥락들이 어떻게 현재의 뇌 상태를 만드는지를 고려해 어떤 윤리적 판단을 하려는 총괄적인 작업이다.

  게다가 뇌의 상태를 보는 과학도구는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그 어떤 것도 완전히 객관적이기는 어렵다.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보는 뇌 거짓말 탐지기가 때로 거짓말을 가려내지 못하는 경우는 냉혈한 범죄자일 경우 범죄 행위 자체를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므로 뇌의 상태 자체는 정직한 상태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 하는 사람을 정직한 사람으로 잘못 분류(거짓 음성 false negative)할 수 있다. 반대로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과대망상으로 자신이 했다고 믿는 정신질환자는 거짓말 탐지기에 의해서 범죄자로 분류(거짓 양성 false positive)될 수 있다. 이러한 총괄적, 맥락적인 판단은 ‘신경윤리’라는 새로운 분야 안에 신경과학, 심리학, 철학, 법학뿐만 아니라 그 외 교육학, 사회학 등 꽤 넓은 범주의 모든 연구들과 사례들을 고려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경윤리는 여타의 어느 융합분야보다도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수년 전 뉴욕 타임스 지에 “이것이 정치성향을 보여주는 당신의 뇌다”(This is your brain on politics)라는 사진이 실렸다. 이것은 UCLA의 신경학자 야코보니(Marco Iacoboni)와 동료들이 2008년 대선후보 중 아직 후보자를 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대통령 후보자들의 연설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준 후, 나타나는 반응을 기능적자기공명영상으로 찍은 결과를 실은 것이다. 특정 후보자의 사진을 보여주자 피험자들의 편도체에서는 커다란 활동을 보였다. 편도체는 일반적으로 공포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다. 따라서 연구는 피험자들이 그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편도체는 공포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행복감이나 즐거움을 느낄 때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역으로 긍정적, 부정적 감정이 동시에 관련돼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라 할 수 없다.

  앞으로 신경과학의 성과를 이용한 이러한 결과들은 선정적인 기사제목과 그림으로 계속 대중매체에 소개될 것이다. 대중들은 뇌의 상태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인 ‘묻지마 판단’을 할 수 있다. 적어도 교육의 혜택을 받는 우리들은 그런 자료의 여러 맥락을 고려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결과 뇌과학의 혜택은 받으면서 폐해는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지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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