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화는 새로운 황금기를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의 부활은 과거 전성기로의 회귀가 아니다. 만화라는 장르를 통한 새로운 형식의 등장이다. 만화로 분류되지만 그 내용과 표현, 창작 과정이나 방식, 유통과정 등은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웹툰’이라는 형식이다.
웹툰은 인터넷을 비롯한 온라인 문화의 일반화와 그 흐름을 함께 한다. 특히 최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웹툰을 급격하게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바일 문화는 웹툰의 중요한 특징들과 잘 맞는다. 대중들의 일상의 변화는 이동성으로 규정된다. 일상은 점점 빨라지고 분주해지고 있다. 때문에 사색과 성찰,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 결과 삶의 여백 혹은 여가는 자투리 시간으로 남는다. 그 간격을 채워줄 수 있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웹툰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화는 동네북이었다. 사회적 범죄의 원인 혹은 청소년 일탈 문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곤 했다. 1996년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고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만들어지던 당시, 만화는 마약과 동일시되면서 악으로 규정됐고, 결국 처형당하는 꼴이 됐다. 수많은 만화가 불에 태워지거나 폐기처분됐다. 그로부터 15년 이상이 지났고 웹툰 시장이 활성화돼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법도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올해 초 학교폭력 논란에서만 보더라도 일부 언론에서는 여전히 학교폭력의 진원지로 만화, 즉 웹툰을 지목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예술을 ‘고급/저급’으로 분류하는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
한국사회에서 만화는 여전히 하위문화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1990년대 말부터 강조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효과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품성 등의 논의는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예술과 문화의 등장은 단순히 그 예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웹툰의 경우만 보더라도 동시대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대중의 변화, 그들의 일상과 문화, 정서 등이 통째로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웹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혁명성의 등장이다. 이는 테크놀로지와 수용자의 관계, 그리고 웹툰 자체의 내용과 표현의 전위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웹툰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리트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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