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학내외 문제를 알려 온 대학언론은 오늘날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학언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62년간 우리대학의 이야기를 담아 온 덕성여대신문의 역사와 함께 대학언론이 마주한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검열과 탄압 속 대학언론의 발자취
국내 대학신문의 역사는 1919년에 창간된 숭실대학교 ‘숭대시보’에서 시작한다. 숭대시보는 1925년 숭실학당 대학부가 숭실전문학교로 개편되며 ‘숭실타임즈’로 제호를 바꿔 발행했다. 그러나 1938년 일제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 학교가 폐교되며 학보도 함께 폐간했다. 1935년 연희전문학교에서 창간된 ‘연전타임스’는 현재 연세대학교 학보인 ‘연세춘추’의 전신으로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로 제작된 최초의 대학신문이다. 그러나 연전타임스 역시 일제의 언론 탄압이 극심해지며 발행이 중단됐다.
대학신문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광복 이후였다. 6·25 전쟁 이전까지 11개의 대학신문이 등장했으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모두 휴간하거나 폐간됐다. 그럼에도 대학 언론인들은 활동을 이어갔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 4일 부산에서 ‘대학신문’ 창간호가 발간됐다. 부산으로 피란 간 대학들이 ‘전시연합대학’으로 통합된 상태에서 범대학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이후 ‘대학신문’은 1953년 10월 서울로 돌아온 각 대학들이 학보를 창간하기 시작하며 서울대학교의 학보로 남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다음 날인 1979년 10월 27일 계엄이 선포되면서 대학언론도 사전 검열의 대상이 됐다. 동국대학교엔 계엄사령부가 파견한 기관원 사무실이 자리했다. 동대신문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신문이 검열로 잘려나가 군데군데 백지로 발행됐으며 전두환의 ‘전’자만 실려도 발행이 중지될 정도였다’고 전했다. 1981년 5월 7일자 ‘전대신문’은 5·18 기사를 쓰지 못한 채 ‘5월의 메모’ 18일 칸을 비워 발행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학내 편집권을 둘러싼 제약은 계속됐다. 아주대학교의 ‘아주대학보’는 1990년대까지 주간 교수가 발행 전 기사를 살피는 사전검열 구조가 유지됐다고 밝혔다. 2013년 국회 배재정 의원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언론인의 35%가 학교로부터 기사를 직접적으로 검열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덕성여대신문에 기록된 학우들의 목소리
덕성여대신문은 1964년 11월 25일 창간됐다. 월 1회 4면 발행으로 시작해 이후 격주로 8면을 발행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덕성여대신문은 그동안 우리대학의 크고 작은 사건과 변화를 기록해왔다.
1984년 11월 12일 제227호에는 학생의날 기념식 관련 기사가 실렸다. 광주학생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 행사는 기념식 이후 4·19탑으로 가던 중 전투경찰에 의해 재학생 18명이 연행된 사건을 전했다. 이 사건의 풍자가 담긴 구름재자 코너는 현재 그 형식을 거의 유지한 채 덕성여대신문 여론면에 남아 있다.
1985년 5월 28일 발행한 제236호에도 학우들이 광주항쟁에 관한 행사에 관심을 보였고 여러차례 시위가 벌어져 학생들이 연행되기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1985년 10월 4일 제240호가 발간됐다. 1면엔 ‘14일 민주마당에서 학생총회 개최’와 ‘김수련양 1차 재판 열려’ 등의 기사가 실렸다. 김수련 학우는 당시 우리대학의 총학생회 홍보부장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로 2년 6개월을 구형받았단 내용이 담겼다. 해당 호는 당초 9월 30일 발행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배포금지 조치로 발간이 연기돼 10월 4일 발행됐다. 이어 제241호에선 이정민 전 총학생회장의 재판 결과와 학우들이 영치금을 모금해 전달한 사실이 보도됐다.
2024년 12월 9일 발행한 제758호 1면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시국선언 기사가 담겼다. 덕성여대신문은 다양한 사회 현안과 이에 목소리 내는 우리대학 학우들의 모습을 담아 왔다.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 대학언론의 위기
한국 언론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대학신문은 오늘날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대학언론 현황과 발전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4년제 대학의 학보 운영률은 71.4%로 집계됐다. 1995년 90.7%에 달했던 운영률이 30년 사이 19.3%p 감소한 것이다.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회가 발표한 집계에서는 폐간이 확인된 학보사 31곳 가운데 30곳이 사립대 소속이었으며, 이 중 16곳은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이후 사라졌다.
학보사 폐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학우들의 관심 부족이다. 전국 192개 4년제 대학의 재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는 입학 이후 학보를 거의 읽지 않았다고 답했다. 학보는 학내 소식을 전달하고 학우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임에도 학우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독자 감소 문제는 재정 문제로도 이어진다. 지난해 5월 국회에서 열린 대학언론법 입법간담회에서 한국체육대학교 학보사 김세준 간사는 매년 반복되는 예산 삭감 요구로 학보사 운영 기반을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체육대학교 교지는 40년 만에 교지 인쇄를 중단했다. 인쇄비가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독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과 인력이 취약해진 대학 언론은 그 기능을 상실하기 쉽다.
편집권 침해 또한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 2021년 11월 숭대시보는 당시 총장의 전면 대면수업 인터뷰를 검증·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이에 숭실대학교 측은 숭대시보 기자를 전원 해임하고 발행 예정이던 종이신문의 배포를 중단했다. 이후 기자들은 주간 교수가 기사 퇴고를 맡는 조건으로 전원 복직했다.
2024년 12월 9일 ‘카이스트신문’은 12.3 사태와 관련된 호외 출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카이스트 측은 학보사에 인쇄 예산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학교 입장과 무관하다는 점을 명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학보사 측은 전·현직 기자 58명의 사비를 모아 총 4천 부의 신문을 인쇄했다고 밝혔다. 2024년 열린 대학언론인 컨퍼런스 ‘불씨’에서도 △인력난 △재정난 △예산 삭감 △편집권 침해 대응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대학신문의 위기는 한 매체의 존폐 문제를 넘어선다. 학보는 학우들에게 학내 소식을 전달하며 다양한 의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해 왔다. 과거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발행을 이어온 대학언론은 오늘날엔 그 수요 자체가 소멸해 간다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학보가 학내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기 위해선 학우들에게 학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독립적 보도 환경과 안정적 운영 기반을 확보할 방법을 고민할 시점이다. 학우들 역시 학교와 학내 현안에 관심을 갖고 학보가 전하는 이야기에 목소리를 더하려는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