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유산은 점차 잊혀 가는 추세다. 이런 문화유산의 위기 속에도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화유산의 매력에 빠져 단청을 보존하고 알리는 안유진 국가무형유산 단청장 이수자를 만나봤다.
Q.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저는 현재 국가무형유산 단청장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국가무형유산 단청장 이수자로서 문화재의 단청을 복원하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의 전통회화 석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또 단청을 활용해 각종 △전시 기획 △상품 개발 △교육 등 다양한 활동도 병행해요. 방학엔 주로 국가유산을 수리하러 전국을 돌아다녀요. 최근에 했던 일을 소개하자면 올해 1월에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장안사에 가서 단청의 색채를 맞추고 문양을 점검했어요.
Q. 국가무형유산 보존에 관심을 가지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희 아버지 회사가 숭례문 근처에 있어서 어렸을 때 아버지를 기다리며 숭례문에 자주 놀러 갔어요. 경비 아저씨가 제 얼굴을 알 정도로 굉장히 자주 갔죠. 그러다 2008년에 숭례문 방화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자국민이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이 매우 크게 다가왔죠. 그 사건 이후로 나중에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이런 문화유산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이런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을지 찾아보며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키웠죠. 그때부터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을 마음에 품게 된 것 같아요.
Q. 여러 문화재 중 단청에 관심을 가지신 이유와 단청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단청은 건축의 화룡점정이에요. 건축물을 짓는 과정을 보면 먼저 기단부터 쌓고 돌을 다듬어서 나무를 올려요.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단청 문양을 칠해요. 그중에서 단청의 색채가 아름답게 느껴졌고 특유의 문양이 매우 도드라져 보였어요. 특히 단청이 건축물의 마지막을 장식한단 점이 매력적이었고요.
단청은 단순히 미적 요소로만 쓰이지 않아요. 삐뚤어지거나 조금 기울어진 건축물에 단청을 칠해 놓으면 마법같이 올바르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있죠. 단청은 자연재해나 병충해로부터 목조 건축물도 보호해 줘요. 건축물이 손상되지 않고 오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또 단청엔 여러 문양이 있는데 각기 다른 단청 문양으로 그 건축물의 위상이나 가치를 나타내요. 단청 문양 사이에도 확연한 위계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단청은 왕의 권력이나 사찰의 신성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역할도 수행하죠.
Q. 어떤 과정을 거쳐야 국가무형유산 단청장 이수자가 될 수 있나요?
국가무형유산엔 △전수자 △이수자 △전승 교육사 △보유자가 있어요. 이 중 전수자를 제외한 나머지만 국가무형유산에 포함돼요. 전수자는 쉽게 말해 연습생인데 이수자 아래에서 3년 이상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해요. 그래야 이수자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져요. 이수자 시험은 국가유산청 국립무형유산원이 주관하는데 실기와 면접으로 이뤄져 있어요. 실기시험은 약 5시간 안에 전통 안료와 기법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해요. 이후 전공 관련 전문 지식을 묻는 면접과 카메라 테스트를 봐요.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 최종적으로 이수증이 발급되고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가 돼요. 사실 국가무형유산 이수자 막내의 평균 연령이 40대일 정도로 국가무형유산 이수자가 되기까지 정말 어려워요. 그에 비해 저는 20대에 국가무형유산 이수자가 된 거니까 운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Q. 디자인 전공을 그만두고 단청장 이수자가 되셨는데 그때의 경험이 어떤 밑거름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입시 미술을 5년 정도 했어요.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 경험이 단청장 이수자로 일할 때 엄청난 도움이 됐어요. 입시 미술을 준비하면서 넓은 붓으로 색칠하는 걸 많이 연습했는데 단청도 넓은 붓을 사용해요. 처음 넓은 붓을 사용하시는 분은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 훨씬 수월하게 단청을 그릴 수 있었죠. 그리고 예술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단청에 관심이 있어 모든 과제를 단청 관련 주제로 했어요. 지금 생각나는 건 단청 패턴을 이용한 커버 디자인과 조선시대 왕비가 한 매니큐어 등이네요. 디자인 전공을 할 때부터 단청에 대해 공부했고 그 경험이 지금 상품을 개발하거나 전시를 기획할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Q. 단청 복원 작업을 오래하기 위해 집중하는 방법이 있나요?
제 성격상 생각이나 고민이 많아요. 그럴 때면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이죠. 그래서 생각이 많아질 때면 저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고 해요. 저는 불교를 믿어서 방 안에 작은 불상을 뒀어요. 생각이 많고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 그 방에서 향을 피우고 숨을 가다듬거나 천수경을 들으며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려요. 만약 절이 가까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서 절을 올리거나 사찰 대웅전에서 가만히 있어요. 또는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메뉴를 마시며 조용히 숨을 가다듬어요. 그러면 불안한 마음에 안정을 찾죠.
Q. 지금까지 진행한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가요?
많은 전시를 했었는데 기업들과 협업한 전시들이 기억에 남아요. 특히 디즈니랑 협업했던 <미키 in 덕수궁: 아트, 경계를 넘어서>와 한성자동차와 함께 한 <몽실몽실: 드림그림의 꿈이 담긴 공간>이 인상깊어요. 단청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단청을 그려 색을 입히니까 신기했어요. 그리고 정말 힘들어서 기억에 남는 전시도 있어요. 국가유산청에서 준비한 전시 <찬란>인데요.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 1년 동안 머무르면서 준비했는데 한 사람당 대작을 3개나 만들어야 했죠. 사실 1년에 3개를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아예 쉴 수가 없어서 엄청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완성하고 나니까 단청에 키네틱 아트를 접목한 게 최초라며 반응이 좋더라고요. 결과적으로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작업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Q. 단청을 어떻게 우리 일상 속에 접목하려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전통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거나 관심조차 없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단청을 알리려면 우리가 평상시 사용하는 물건이나 자주 보는 물건들에 접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 쉽게 접할 수 있게 단청을 이용해 디자인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스케이트보드나 의자에 단청을 입히는 작업 말이죠. 그리고 장애인 휠체어의 바퀴에 단청을 입혀 모두를 배려하는 공공의 디자인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에요.
Q. 앞으로 단청장 이수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여러 분야로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1순위로 확장하고 싶은 분야는 교육이에요. 그런데 교육을 하기 위해선 단청 복원 기술을 갖추고 그 기술을 전달하는 교수법도 배워야 해요. 그래서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제 능력도 키우고 싶어요. 최종적으론 사람들이 단청이라고 하면 ‘아 저거!’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문화유산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지켜나갈 수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지길 바라요.
Q. 덕성여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진로를 정하지 못해 막막한 학생들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만약에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원래 하던 것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전 반대예요.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되지 않는다면 화끈하게 놓고 새로운 걸 도전해 봐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나는 왜 안 될까’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빨리 뛰어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여러 분야에 도전해봤는데 결국 단청으로 이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전 덕성여대 학우분들이 무엇이든 도전하시길 바라요.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