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대신문사가 창간 61주년을 맞아 덕성여대신문사 데스크진이 정기자 4인을 직접 인터뷰했다. 그동안 덕기자로 활동하며 이들은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임해왔을까? 이에 데스크진의 질문에 정기자들이 솔직하게 답했다.
'결과는 너를 만들고 과정은 나를 만든다'
Q. 지금까지의 덕기자 생활을 헤드라인으로 작성한다면 무엇인가요?
노력이 늘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빌미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처음 맡은 장편 기사인 ‘독서의 길을 넓히는 오디오북’은 오래도록 부끄러웠던 기사다. 그 이유는 기사의 마지막 문단 사진과 첫 문장의 오탈자 때문이다. 표면적으론 사소한 부분이지만 오래 고민하려고 하지 않은 내 태도가 고스란히 보였다. 그렇게 내가 노력한 과정이 남들의 눈과 결과에 드러나지 않아도 나 자신이 기억한단 것을 알았다. 결과는 남들에게 보이는 나를 만들지만 과정은 내가 보는 나를 만든다. 신문사 활동으로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에 있는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문 하나가 나오기까지의 정성은 때론 결과에 비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다. 나에게 신문사 활동은 나를 만드는 것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란 걸 알려줬다.
Q. 과거로 돌아가면 신문사에 다시 지원할 건가요?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대단한 포부도 없이 약간의 호기심과 장학금의 유혹으로 신문사 문을 열었다. 첫 기사를 작성할 땐 들어온 문을 잡고 그대로 나가고 싶었다. 그만큼 신문사 활동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평소 좋아했던 드라마를 기사로 작성하면서 그 드라마가 조금 싫어질 정도였다. ‘차관 컴퓨터 노후화’ 기사를 작성하다가 250대가 넘는 컴퓨터를 직접 다 확인할 뻔하기도 했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얘기하라고 하면 끝도 없다. 그런데도 다시 돌아가 신문사 문 앞에 선다면 모른 척 또 문을 열 것이다. 250대 컴퓨터를 다 확인하겠다는 객기를 부릴 만큼 설득력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고 질릴 만큼 드라마를 다시 봤던 것은 그만큼 기사에 잘 담고 싶어서였다. 고생이라고 말하는 순간들은 잘하고 싶은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건 내 이름 뒤에 붙는 ‘기자’라는 호칭에 대한 애정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신문사 문 뒤에선 늘 힘들다고 투덜거리다가도 금세 신문사의 부흥을 위해 열변을 토하는 동기들이 있고 날카로운 피드백 뒤에 꼭 칭찬과 격려를 빼먹지 않는 선배들이 있기에 나는 그 문을 계속 열고 싶다.
'덕기자가 추천하는 <속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Q. 지금까지의 덕기자 생활을 헤드라인으로작성한다면 무엇인가요?
말 그대로 정말 고생하면서도 정말 보람을 느끼는 게 덕기자 생활인 것 같다. 월요일 아이템 회의가 끝나고 기숙사로 걸어갈 때면 이번 발행은 또 얼마나 힘들지 한숨이 푹 나오다가도 지난 기사를 피드백하는 시간에 들은 칭찬을 곱씹으며 뿌듯해하는 나를 발견한다. 때론 고생스럽게 느껴지는 기자 생활이지만 돌아보면 분명 내게 큰 의미로 남을 거라고 믿는다. 퇴임의 낙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덕기자 일동 화이팅!
Q. 덕기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역량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글쓰기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행을 거듭할수록 정말 필요한 덕목은 유연한 상황 대처 능력임을 깨닫는다. 아이템 회의를 거쳐 신문이 발행되는 순간까지 예상치 못한 변수를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된다. 기사에 실으려 계획했던 아이템을 쓸 수 없게 되기도 하고 날씨 등의 이유로 현장에서 취재 계획을 변경해야 했던 적도 많다. 인터뷰이가 기한을 훌쩍 넘겨 답변을 주는 건 부지기수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빠르게 계획을 변경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조급함 없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덕기자로 활동하며 있었던 일화 한 가지 말해주세요.
765호의 ‘5.18 민주화운동 특집’ 기사를 위해 광주로 취재를 나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일정을 마친 후 광주송정역으로 가기 위해 탔던 택시의 기사님이 5.18 당시 현장에 계셨던 역사의 산증인이셨다! 쾌활하신 기사님 덕분에 항쟁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질문도 하며 예상치 못한 인터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학보사 기자라고 밝히니 좋은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도 하셨다. 신기하고 뭉클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일화다.
'파도 속에서 진주 찾기'
Q. 지금까지의 덕기자 생활을 헤드라인으로 작성한다면 무엇인가요?
한 대학의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한 편의 기사를 완성하기까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사실을 검증하며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기사가 완성됐을 때의 성취감은 매우 크다.
그 과정 중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765호 ‘카카오톡 학생증’ 기사다. 처음엔 단순히 학교 측에 건의하면 될 줄 알았지만 실제론 교내 담당 부서와 업체 간의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이에 내 이름을 걸고 담당자들과 여러 차례 통화를 하며 정식으로 건의를 진행했다. 열심히 취재한 후 카카오톡 학생증이 다시 사용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결과였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 있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런 내 기자 생활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파도 속에서 진주 찾기’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취재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가끔은 거센 파도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얻은 성취는 진주처럼 반짝이고 값진 보상으로 느껴진다.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글을 쓰고 싶다.
Q. 기사가 써지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기사를 작성하는지 알려주세요.
기사가 써지지 않을 땐 잠을 잔다. 억지로 붙잡고 고민할수록 오히려 생각이 꼬이기 때문에 잠시 멈추는 게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만약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용한 카페에 가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과 함께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그렇게 한결 가벼워지면 메모장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적는다. 완벽하게 쓰려 하기 보단 일단 쓰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렇게 한 문장씩 적다 보면 막혔던 부분도 자연스럽게 해결돼 기사를 다시 작성할 마음이 생기게 된다.
'덕성여대신문사, 적극적인 홍보 필요해'
Q. 지금까지의 덕기자 생활을 헤드라인으로 작성한다면 무엇인가요?
신문사 활동을 해오면서 예상외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신문 동아리도 있어?’ 또는 ‘신문사에선 뭐해?’와 같은 말이다.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단 사실은 알았지만 교내 신문사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단 점을 매번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모든 기자가 매 발행마다 많은 노력을 들여 신문을 완성한다. 물론 그런 수고를 모두 알아줬으면 좋겠단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신문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단 생각을 자주 한다. 앞으로 신문사가 학우들에게 더 익숙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Q. 신문사에서의 시간이 당신을 어떻게 바꿔놓았나요?
가장 먼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신문사 활동 이전엔 개인적으로 동아리를 비롯한 교내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아서 강의만 듣고 집에 가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신문사에 들어온 후 학교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공강 시간에도 할 일이 많아졌다. 신문사에서 마음 맞는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이제 동기들과는 신문사일이 아니어도 시간을 자주 같이 보내게됐다. 바쁘긴 하지만 그만큼 전보다 알차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또한 기사를 준비하다 보면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알게 된다. 어떤일을 어디서 맡고 있는지 알게 된다. 취재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일들이다.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나면 아르바이트생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듯이 신문사 활동 또한 보이지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신문사에서의 경험들이 나의 시야를 조금씩 넓히고 있다고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