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잠시 시간을 내어 휴식을 취하기도 어렵다. 이에 덕기자가 책, 공연, 전시회 등을 소개해 학우들에게 한 줄기 여유를 선물하고자 한다.
강물처럼 흐르는 삶과 사랑에 대하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반드시 이해해야만 가능한 것일까?
1910년대 초 미국의 한적한 시골 마을 목사인 맥클린은 가족과 함께 몬타주 강가의 교회에서 살고 있다. 그는 플라이 낚시를 종교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며 즐긴다. 두 아들인 폴과 노만도 플라이 낚시를 배우며 삶의 흐름과 하나님의 섭리를 자연스레 배워 나간다. 시간이 흘러 차분하고 성실한 노만은 아버지의 교육을 순순히 받아들여 문학과 시를 사랑하는 모범생으로 자란다. 반면 폴은 충동적이고 과감한 성격으로 싸움에 휘말리며 무모하게 행동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항상 집단의 중심에 선다. 이후 노만은 문학 공부를 위해 동부로 유학을 떠나고 폴은 고향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간다. 폴은 근무시간에 술에취하는가 하면 노름판에 말려드는 등 위험한 행동을 즐겨한다. 노만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폴은 도박을 멈추지 못한다. 이런 폴의 방탕한 생활은 가족을 걱정시키고 노만과의 관계에도 균열을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노만은 경찰로부터 폴이 길에서 폭행을 당해 사망했단 소식을 전해 듣는다. 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온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빠져 괴로워한다. 맥클린과 노먼은 폴을 사랑했지만 그의 삶을 끝내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두 사람은 사랑의 방식을 깨닫는다. 맥클린은 자신의 마지막 설교에서 사랑하는 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 노년의 노먼은 강가에 홀로 앉아 낚시를 한다. 그는 낚시를 하며 물 위에 드리운 햇살 사이로 가족들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의 추억 속 모든 사랑과 상실이 강물처럼 이어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오롯이 이해할 순 없어도, 오롯이 사랑할 순 있다.”
삶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른다. 그리고 우린 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일은 이해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삶의 의미란 결국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조차 사랑하려 했던 시간 속에 남는 것 아닐까. 삶과 사랑의 의미를 잔잔하게 그려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