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민주당이지?” 지난 4월 한 횟집에서 한 남성이 욕설과 함께 민주당이냐고 고함을 치고 탁자 위에 있던 유리 맥주잔을 들어 사장 부부를 위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엔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구실 위치를 물어본 뒤 “진보 교수를 공격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사람들은 같은 뉴스를 보고도 전혀 다른 현실을 산다. 하나의 사실보다 정체성에, 이해보다 적개심에 빠르게 반응한다. 서로의 차이를 묻고 이해하기보다 상대를 공격할지 고민하는 사회가 되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일부였지만 오늘날의 문제는 그 갈등이 공존이 아닌 적대와 응징을 위한 갈라치기로 변하고 있단 점이다.
최근 △극우화 현상 △정치 성향 커뮤니티 확산 △일부 정치인의 혐오 발언은 이런 국내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온라인에선 유사 성향끼리 모여 다른 의견을 배제하고 조롱하는 환경이 강화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에서의 혐오와 적개심은 집단 감정을 증폭시키고 현실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치적·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치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된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입장의 사람들을 혐오하고 비인간화하며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국제민주주의 및 선거지원기구(International IDEA)가 발표한 ‘2025 세계 민주주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73개국 가운데 절반이 넘는 94개국에서 민주주의 상황이 악화됐다. 특히 △언론의 자유 △사법 독립 △사법 접근권 같은 핵심 지표에서 뚜렷한 후퇴가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글로벌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시민의 역할과 역량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만연한 혐오와 적대는 민주주의 공동체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의 저자 김정환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민은 독재자를 끌어내릴 수 있는 역량은 충만하지만 독재자를 애초에 선출하지 않을 역량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담론엔 전자의 역량을 과신하고 ‘또 탄핵하면 된다’며 낙관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 통찰이 시사하는 바는 한국 사회가 다시 민주 정부를 세우는 지난 과정에서 시민으로서의 최종적 역량을 모두 소진했을 수도 있단 점이다.
민주주의 공동체는 단순한 정권 교체에 기대지 않아야 한다. 혐오와 적대를 줄이며 시민으로서의 성숙한 역할을 다하는 것은 곧 독재자를 애초에 선출하지 않을 역량과 연결된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너는 어느 편이냐’가 아닌 ‘우린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로. 그 물음 속에서 비로소 혐오와 적대를 넘어 진짜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길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진영은 강해졌지만 공동체는 약해졌다.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