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잠시 시간을 내어 휴식을 취하기도 어렵다. 이에 덕기자가 책, 공연, 전시회 등을 소개해 학우들에게 한 줄기 여유를 선물하고자 한다.
물방울에 새긴 애도의 기억
전시 <김창열>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김창열의 작품을 소개하는 회고전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 속 기억들을 물방울로 형상화한 그의 예술세계를 되짚는다.
첫 번째 장 ‘상흔’에선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회화적 요소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중 <제사>는 1950년대 한국의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했던 김창열의 초기 작품이다. 앵포르멜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추상 미술 운동으로 그는 서양의 현대미술을 전쟁과 분담의 아픔을 겪은 한국적 정서와 연결지었다. 이 시기 작품들은 한국전쟁 직후 세대가 마주해야 했던 상실과 분열의 시대적 상흔을 함께 보여준다.
두 번째 장 ‘현상’은 뉴욕과 파리에서 실험을 거듭하던 1960년대 후반의 모습을 담았다. <현상> 연작은 기하학적 형태로 인체의 장기가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이는 분단과 폭력이 남긴인간 존재의 상처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냉전의 긴장 속에서 개인이 겪은 불안과 시대적 불확실성을 담고 있다.
세 번째 장 ‘물방울’은 김창열의 예술 정수로 불리는 물방울 회화의 전개 과정을 다룬다. 작가의 평생에 걸친 물방울 탐구 여정이 작품에 생명력을 더한다. <물방울>은 유화 물감을 이용해 캔버스 전체에 물방울을 묘사했다. 작가가 그린 물방울은 단순한 실사화를 넘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동양철학을 담아내는 상징이 됐다.
마지막 장 ‘회귀’에선 <천자문> 연작이 중심을 이룬다. 삶의 상흔을 치유하는 애도의 의미가 담긴 천자문과 물방울의 만남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 한국현대사의 집단적 상처를 어루만진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후 처음 공개되는 7.8m 대작 <회귀>는 전쟁과 죽음을 넘어 화해와 성찰의 공간을 열어주며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번 회고전은 한 작가의 작품을 넘어 물방울 속에 한 세대의 기억과 애도를 담아낸 기록이다. 김창열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상실 △삶과 죽음의 경계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런 기억을 물방울에 투영하면서 개인적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역사를 기리는 물방울 회화를 통해 김창열이 남긴 예술과 삶의 흔적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전시 <김창열>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