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퇴근길 이어폰을 꽂고 책을 듣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읽기 지원 매체로 시작한 오디오북은 이제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오디오북이 독서 문화에 가져올 변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새롭게 떠오르는
독서의 형태
최근 오디오북 <첫 여름, 완주>가 국내 문학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오디오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첫 여름, 완주>는 기존의 출판 방식과 달리 종이책에 앞서 오디오북을 먼저 출간한 뒤 전국 장애인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해 주목을 받았다.
오디오북은 영미 문화권에서 처음 등장한 독서 방식이다. 1930년대부터 시각장애인과 전쟁으로 시력을 잃은 군인을 위해 책 내용을 전달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후 1960년대 카세트테이프의 보급과 함께 전문 낭독자가 등장하면서 소설과 교육 서적을 녹음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오디오북은 스마트폰과 디지털 음원 기술의 보급으로 대중화되며 출퇴근 이동 시간에도 책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해외에선 종합 인터넷 플랫폼 기업인 아마존이 1995년 ‘오더블(Audible)’을 설립하며 2000년대 후반 본격적인 오디오북 시장을 열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선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자료를 제작했고 대학 도서관 일부에 점자책과 함께 오디오북이 등장했다.
2016년 이후 △교보문고 △예스24 △밀리의 서재 등 국내 주요 독서 플랫폼이 오디오북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국내에서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2019년부턴 정부가 오디오북 제작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2025년 약 300억 규모의 오디오북 지원 사업을 공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실시한 2022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종이책 독서율은 감소하는 추세였으나 오디오북 독서율은 3.5%에서 4.5%로 증가했다. 오디오북 이용률 증가와 산업 규모의 확대를 고려할 때 현재 출판계에 오디오북이 미칠 영향은 주목할 만하다.
대체재가 아닌
디딤돌이 된 오디오북
현재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문체부가 2023년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43%로 1994년 시행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조사에 따르면 독서의 주요 장애 요소로 24.4%가 ‘시간 부족’을, 23.4%는 ‘미디어 매체 사용’을 꼽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 매체가 독서보다 주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디오북은 시간적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인에게 독서를 이어가게 하는 대안으로 적용할 수 있다.
오디오북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단 점에서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적합하다. 테크앤미디어 아웃룩의 2020년 ‘미국 성인의 하루 평균 활동 소비 시간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물리적 시간인 24시간보다 7시간 더 많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인이 하루 평균 최소 7시간을 멀티태스킹으로 보내고 있으며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는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멀티태스킹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오디오북은 바쁜 현대인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새로운 독서 방식이 될 수 있다. △집안일 △운동 △대중교통 이용 중에도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며 독서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의 오디오북 이용 동기에서도 ‘동시 작업 가능’이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오디오북은 독서에 대한 관심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오디오북을 들은 뒤 종이책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40.2%에 달했다. 오디오북의 대중화는 특정 매체에 그치지 않고 독서 문화 전반에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독서
오디오북은 본래 시각장애인의 독서권 보장을 위해 개발된 매체로 출발해 시각장애인의 주요 독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의 ‘2022 장애인독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오디오북 이용률은 2020년보다 14.9%가 증가했다. 강남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김호연 교수(이하 김 교수)는 “점자책은 부피가 크고 제작·보급 면에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단 한계가 있다”며 “반면 오디오북의 경우 스마트폰과 음성 재생기기를 통해 항상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본 △미국 △영국에서 제작하는 시각장애인의 대체자료는 30% 이상인 것에 비해 국내의 경우 10%도 미치지 못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의 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점자 문맹률은 90.4%에 달하며 이들의 61%가 가장 필요한 대체자료로 오디오북을 선택했다. 독서를 하고 싶어도 어려움을 겪는 독서 취약계층에게 오디오북은 필수적인 읽기 지원 도구이자 문화 확장의 수단이다. 김 교수는 “오디오북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문화적 참여가 확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오디오북은 청각 및 언어 분야에서도 의료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청각장애인은 손실된 청력 정도에 따라 청능훈련을 진행한다. 청능훈련은 청각장애인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잔존 청력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듣기 훈련이다. 한림대학교 청각학 전공 진인기 교수(이하 진 교수)는 “오디오북은 병원 외 환경에서도 청능훈련을 이어갈 수 있는 도구로 청력 재활 효과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디오북이 의료적·사회적 차원에서 활용되기 위해선 앞으로 오디오북 서비스 개발에 있어 사용자의 특성에 적합한 세부 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더해질 때 오디오북의 성장은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진 교수는 “오디오북이 청각 재활 훈련에 활용되기 위해선 개인 맞춤 난이도 조절이나 세부적인 훈련 제공 면에서 아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겨진 과제와
독서문화의 내일
오디오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시장 규모가 나날이 성장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국내 오디오북에 대한 인식과 이용률은 저조하다. 2023년 기준 국내 오디오북 이용자 수는 전체 인구의 4.5%에 불과했다. 중국은 대규모 투자 및 교육·엔터테인먼트 분야와의 적극적 연계를 통해 성인 오디오북 이용률 32.7%를 기록했다. 오디오북을 단순 종이책의 부속 상품으로 한정하지 않고 문화와 교육에 결합시킨 결과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통해 오디오북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
공공도서관에 마련된 오디오북도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오디오북은 독서 취약계층의 경험을 확대할 수 있는 매체인 만큼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국내 17개 광역대표도서관의 오디오북 보유량은 약 7만 1,000권으로 전체 도서의 1%에 불과하다. 공공도서관의 오디오북 접근성 확대는 산업 확장 이전에 선행돼야 할 과제다. 오디오북을 둘러싼 저작권 논의 또한 해결해야 한다. 현재 오디오북은 전자출판물의 한 형태로 분류되지만 모바일 기반 제작과 소비가 확산되면서 관련 법적 규정이 모호해졌다. △원저자 △출판사 △낭독자 △제작자 간 권리관계를 명확히 하는 저작권 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오늘날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문자를 읽고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쉼표 같은 시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독서를 포기하는 일은 현대인의 흔한 현실이다. 오디오북은 이런 흐름 속에서 효율적인 형태의 독서를 제공하고 독서 취약계층의 독서권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오디오북이 단순히 새로운 독서 방식이나 대체재가 아닌 독서의 가치를 지켜내는 또 하나의 길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