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에 대해 말하는 일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금기시돼 왔다. 월경과 피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주제로 취급돼 여성의 권리와 건강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에 피임과 월경에 얽힌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이러한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의 몸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할까
피임과 월경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피임약은 90% 이상의 피임 효과 외에도 △생리통 완화 △생리주기 조절 △여드름 치료 등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의약품이다. 그러나 여전히 피임약은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주제로 여겨지며 내 몸을 위한 선택일 뿐인데 약 하나 사려는 걸음이 조심스럽고 무거워진다. 월경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일상생활이나 미디어 속에서도 월경을 ‘생리’라고 정확히 표현하기보단 ‘그날’ ‘마법’ 같은 우회적인 말로 돌려 말하는 경우가 많다. 생리통이나 생리용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월경은 여전히 여러 문화권에서 금기시되며 그중 네팔에서는 생리 중인 여성을 격리하는 ‘차우디파디’ 관습이 존재한다. 이 악습은 2017년 불법화됐지만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피임과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및 문화적 태도는 성 건강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여성의 건강권을 제한한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성·생식 건강’ 조사에 따르면 19~39세의 초기 성인의 경우 지난 1년간 성관계 시 사용한 피임 방법은 콘돔이 62.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외의 피임방식으론 △질외사정 △월경주기 △경구피임약 △사후피임약이 순차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주로 활용하는 피임 도구는 남성용 콘돔이긴 하나 질외사정과 월경주기와 같이 잘못된 피임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생리대 지원 사업의 명칭은 ‘청소년 건강지원’이며 생리대는 ‘보건위생물품’이란 모호한 단어로 대체됐다. 이는 정부조차 예산 집행 사업에서 생리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약이 아닌
권리 이야기
우리가 치료에 사용하는 의약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OTC, Over the Counter)과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있어야만 구매 가능한 전문의약품(ETC, Ethical The Counter)이다. OTC 피임약으론 주로 저용량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 성분의 복합제로 구성된 사전피임약이 있다. ETC 피임약은 주로 치료제로 쓰이며 대표적으로 항미네랄코르티코이드 활성과 항안드로겐 활성 효과가 있어 △여드름 △다모증 △다낭성난소증후근 치료에 사용된다.
최근 피임약의 OTC 전환 논의가 세계적으로도 활발한 이유는 약의 편의성 뿐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건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피임약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건 결국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고 여성의 성 건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넓히는 일이다. 프랑스는 2023년 7월 HRA 파마의 피임약 오필(Opill)의 OTC화를 승인해 의사 처방 없이도 구매가 가능해졌고 미국도 2024년 초부터 시판을 시작했다. 일본은 2017년 OTC화 논의가 무산됐지만 2022년 시민단체의 요구로 전문의 설명을 조건으로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한 약의 분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건강권이 국가에 의해 얼마나 보장되는지 가늠하게 하는 핵심적 사안이다. 특히 성범죄 피해나 원치 않는 임신에 있어 사후피임약 접근성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의미한다. 2019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2022년부터 합법화 됐다. 낙태죄 폐지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신장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후피임약은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으로 남아 있어 실질적 권리 회복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2012년 당시 약사법 개정 논의에서 정부는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검토하던 흐름을 역행해 기존 일반의약품이었던 사전피임약마저 전문의약품으로 재분류했다. 현재까지 사후피임약의 OTC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한국의 여성들은 피임과 관련된 중요한 선택권조차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피임약의 OTC 전환은 여성의 성 건강이 공론장에서 배제돼온 현실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성 건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
성 건강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개인의 인식 개선 △사회적 태도 변화 △제도적 지원 △문화적 수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피임과 월경에 대해 올바른 정보와 인식을 갖추고 공동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적으로 피임과 월경을 건강권 문제로 인식하고, 침묵보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제도적으로 피임약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생리용품 지원을 확대하며 실질적 성교육의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문화적으로 몸과 건강을 이야기하는 일이 더 이상 눈치를 보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일이 아닌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진행하는 성교육은 성폭력 예방 중심으로 편중돼 피임 교육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정보가 기초적이어서 청소년은 물론 미혼 성인이 올바른 피임 방법을 배우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는 문제가 있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피임과 월경에 대한 교육 내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특히 피임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제공이 부족하며 월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론 중심 성교육으로 실질적인 정보 제공이 미흡하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2022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피임에 대해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올바른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인식부터 제도까지
균형 잡힌 변화
최근 △연세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등에서 생리용품 무상 지급이 확대되고 있으며 일부는 생리대 자판기 운영을 중단하고 생리대 나눔함으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대학도 △인사관 △차미리사관 △대강의동 △자연관 △예술관 등 주요 건물 화장실에 생리대 나눔함을 설치해 무료로 제공 중이다. 정부는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리대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경기도는 2024년부터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매월 월경용품 구매비를 지역화폐 방식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인식’의 장벽이다. 제도는 마련됐지만 캠퍼스 안에서는 피임이나 월경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며 여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여대는 성·재생산 건강을 더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정보 접근성과 상담 창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대학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은 운영되지만 피임이나 월경 같은 성 건강 중심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우리대학 또한 성 건강 관련 비교과나 상담 프로그램은 마련돼 있지 않다.
대학은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변화의 거점인 만큼 피임과 월경 등 성 건강에 대한 논의도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성 건강을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교육의 부재는 왜곡된 인식이나 건강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학이 성 건강권 담론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제도만으론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피임과 월경 등 성 건강에 대해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와 상담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성 건강을 말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고 누구도 그 권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작은 변화들이 모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