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작게 만드는 말투에 대해
나를 더 작게 만드는 말투에 대해
  • 최예은(정치외교 3) 학우
  • 승인 2025.05.1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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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살 테니까 커피 한잔 같이하시겠어요?”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남성 구매자가 커피 기프티콘을 파는 남성 판매자에게 남긴 채팅이다. 구매자는 ‘팝니다’가 아닌 ‘팝니당’이라는 표현을 보고, 자연스럽게 상대가 여성일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더불어 남성 판매자면 ‘팝니당’이 아닌 ‘팝니다’라고 써달라, 헷갈린다고 덧붙였다. 말투가 성별을 추측하게 만들고, 심지어 대화의 태도를 바꾼다.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귀엽고, 친절하고, 공손한 말투를 기대한다. 이러한 말투를 여성의 말투로 상정하고, 단호하거나 거친 말투, 직선적이고 단정적인 말투를 쓰는 여성은 기분이 나쁜지에 대한 물음과 함께 ‘세 보인다’고 평가한다. 위 일화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닌 기대하는 말투를 벗어난 여성을 낯설거나 불편한 존재로 여기는 구조를 보여준 사례다. 그래서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말투를 낮추고, 무해하게 만들며, 귀엽게 포장한다.

  그 누구도 여성에게 ‘팝니다’가 아닌 ‘팝니당’이라고 말하라고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수많은 응시와 평가, 대화 속 분위기, 눈치와 경험이 여성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퇴행어를 사용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어떤 압력을 받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 말투를 요구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어느새 ‘스스로’ 퇴행어를 선택한다. 퇴행어는 단순한 취향과 개성이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신호와 압력의 결과다.

  예의는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이며, 말의 방식과 내용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종종 퇴행어를 지적하면 “그냥 예의를 차린 것뿐인데요?”와 같은 반응을 볼 수 있다. 이는 퇴행어가 곧 예의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예의와 퇴행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예의란 반드시 어조를 낮추거나,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말투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명확하면서도 정중한 표현은 퇴행어 없이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죄송합니당ㅠㅠ”이 아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으로 충분히 예의 바르게 말할 수 있다.

  이 글은 퇴행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퇴행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강요도 아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말투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만든 규범에 익숙해진 결과인지 돌아보자는 제안이다. 그 속에 담긴 사회의 기대와 사회적 구조의 흔적을 인식해야한다. 지금도 많은 여성이 말끝에 덧붙이는 퇴행어가 결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이는 스스로를 더 작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방식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맞춰 온 규범이라면,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말투를 가질 수 있어야, 비로소 자유로운 담론도 가능해진다. 말투부터 위축된 사회에서, 구조를비판하고 차별을 뚫는 말하기는 시작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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