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수상은 △박경리 △박완서 △양귀자 등 국내 여성 문인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문학사 속 여성과 현재 한국의 여성 문학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문학사 속 여성
새로운 장을 열다
여성 문학이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문학사 속 글을 아는 지식인은 소수였을뿐더러 글을 쓰는 여성은 보편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상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구분 짓는 잣대로써 작용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 따르면 여성 창작자들이 쓴 작품을 ‘여류문학’으로 칭하기 시작한 시점은 1930년대다. 여류라는 호칭은 작가 이전에 성별을 부각했으며 여성 작가의 글이 문학사에서 분리되는 원인이 됐다. 당시 남성 문인이 지배적이었던 문학계에서 여성 작가는 여류라는 호칭 아래 하나의 장르로 여겨지며 주류 문학에 편입되지 못했다.
여성 문학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시점은 1960년대 중반이다. 근대화와 경제개발로 인해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여성이 증가했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고등교육이 확대돼 문학에 관심을 갖는 여성 또한 함께 증가했다. 경제적 안정을 찾은 여성들은 여성을 위한 잡지를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월간 여성지였던 <여원>, <여성동아>는 독자 문예란을 만들어 여성의 문학 활동을 장려했다. 여성지 출판이 활발해지며 글을 투고할 수 있는 기관이 다양해지자 여성 작가가 증가했고 여성 문학 담론의 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2020년 발표된 논문 『1970년대 여성문학-여성전업작가의 등장과 다양한 글쓰기 주체의 성장』에 따르면 남성 작가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신춘문예제도에 여성작가가 다수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박완서는 이러한 시기에 여성지를 통해 등단했다. 박완서 작가는 당시 전업주부였지만 <여성동아>의 장편소설 응모작 <나목>의 당선을 기점으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엄마의 말뚝 △친절한 복희씨 등을 내며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자리잡는다. 이처럼 당시 여성지는 문학적 글쓰기의 토대를 마련하며 여성이 전업 작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박완서 이후 △김지원 △김채원 △이경자 등의 여성 작가가 신춘문예와 잡지를 통해 등단했다.
다채로워진
여성의 이야기
여성 문학은 △여성작가문학 △여성해방문학 △여성주의문학으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만큼 현재도 그 정의가 유동적이다. 여성 문학의 정의도 다양하지만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문학적으로 표현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성 중심 문학사에서 여성은 사회에 하고픈 말을 문학 작품으로 내비쳤다.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여성의 내면과 욕망을 탐구하는 작품이 등장했고 기존의 여성상을 벗어난 새로운 인물이 작품 속에 나타났다.
여성 문학은 주로 여성에 관한 사회적 통념에 맞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근대 여성 문학의 시초라 볼 수 있는 나혜석의 단편 소설 <경희>에선 근대교육을 받은 주인공 ‘경희’가 관습에서 벗어나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신여성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은 여성이 자아를 탐색하고 실현하는 모습을 묘사한 근대 문학 최초의 여성 해방적 소설로 평가받는다. 봉건적 가치관 속 신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주인공 경희를 통해 여성이 근대적 자아 정체성을 자각하는 과정을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근대 여성 문학의 시초라 평가받는다. 또한 신여성인 경희를 통해 여성들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비판하고 근대적 여성으로서 성장하길 바라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속 ‘서희’는 조선 후기 몰락한 집안을 되살리고자 주체적으로 노력한다. 작중 서희가 가문의 재건을 일궈내는 과정에선 다른 여성 조력자들과의 연대가 돋보인다. 여성 등장인물 간 연대를 통해 여성은 타자화되는 보조적인 대상이 아니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여성 개인의 내면세계를 탐구한 작품도 있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은 ‘안진진’이라는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안진진의 내면세계를 섬세한 문체로 묘사했다. 이 작품에서 안진진은 자신의 인생사를 풀어가며 삶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한다. 안진진의 모습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에게도 큰 공감을 이끌어 26년 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서점가 역주행 돌풍을 이뤄냈다. 우리대학 영어영문학전공 우정민 교수(이하 우 교수)는 “역사적으로 벌어졌던 여성 교육과 여성주의의 결과물이 모두 맞물려 작가와 독자 모두 여성이 주가 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의
중심이 된 여성들
지난해 한강 작가는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 속 여성 작가의 힘을 보여줬다. 또한 올해 문학동네가 주관한 ‘제16회 젊은작가상’에선 수상자 7명 모두 여성 작가가 선정됐다. 여성 작가로만 수상자가 채워진 건 △2010년 △2021년 △2023년 이후 네 번째로 현재 한국 문학의 주류로써 여성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성 작가들은 2016년부터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출간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서른네 살 주인공 김지영의 삶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젠더 문제와 차별을 사회적 논의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당시 페미니즘이 사회 의제로 떠오르며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관련 문학 작품들도 큰 주목을 받았다. 여성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은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2년 만에 누적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넘기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책이 됐다.
이후 여성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그려내는 소재와 내용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간 남성 중심의 장르로 인식됐던 SF 장르에서도 여성 작가들이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으로 2020년 출간된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누적 판매수 10만 부를 돌파하며 국내 SF 소설의 부흥을 불러왔다.
한국 현대문학 속 여성 작가의 부상은 여성 독자 증가와도 관련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0년 한국소설 구매층 중 여성의 구매 비중은 69.9%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예스24에서 집계한 2024년 상반기 도서 구매 비율에 따르면 구매자의 68.4%가 여성이었다. 이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김은하 교수는 “여성 독자들이 사회에서 외면당하기 쉬운 여성의 경험을 대신 말해줄 자로 여성 작가를 지정했다고 볼 수 있다”며 “여성 독자의 증가와 이들이 가진 힘은 한국 문학에서 여성 문학이 주류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성 문학이
나아갈 방향
여성 문학에 관한 연구 또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기존 문학사의 주를 이루는 작품은 대다수 남성이었다. 2022년 발표된 논문 『페미니즘 리부트시대 여성문학의 계보 만들기: 한국여성문학사와 여성문학 앤솔로지의 필요성과 내용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남성과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의 글쓰기는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대학 차미리사교양대학 오자은 교수(이하 오 교수)는 “우리가 흔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정전은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여성의 고유한 경험과 정체성을 다룬 작품은 문학 정전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있더라도 시대가 지나며 잊히거나 삭제됐다. 이처럼 문학사 비평과 서술은 주로 남성 중심적이었기에 여성 작가에 대한 평가나 연구는 그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성 문학사를 연구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기존 문학사를 보완해 재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 교수는 “기존 정전을 재구축해 한국 여성문학사를 서술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발간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기존 문학사에 없던 여성을 기준으로 선별해 기록한 최초의 작업물이다. 이 선집은 기존의 남성 중심 문학사에서 배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문학적 성과를 재조명한다. 이는 단순히 여성 작가의 작품 복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속한 사회·정치적 맥락을 훑으며 그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또한 여성 문학의 역사적 계보를 담아내 인정받지 못한 여성 문학을 다시 기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 교수는 “여성 문학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진 후에야 비로소 여
성 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 문학은 한 집단의 목소리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에 필요하다. 한 집단으로서 독자적인 문학사를 형성해 지나간 시대 속 여성의 삶과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음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될 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