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원작자의 권리, 매절계약
사라진 원작자의 권리, 매절계약
  • 윤수아 기자
  • 승인 2024.03.04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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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를 존중하는 계약 구조와 창작계 개선 필요해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각색한 드라마가 방영하거나 한 곡을 여러 방면으로 각색한 편곡이 흥하는 등 2차적저작물을 다룬 산업이 발전하는 추세다. 이는 모두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나 원작자는 2차적저작물로 인한 수익을 받지 못해 피해를 보기도 한다. 출판사와 창작자 간 수익 배분 분쟁이 빈번히 발생하는 현시점에서 매절 계약의 개념과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며 대응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매절계약으로
  정산받지 못하는 원작자

  매절계약은 계약 체결 시 저작권 사용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원작자에게 한꺼번에 지급하는 계약이다. 2차적저작물은 기존 저작물에 창작성을 더해 만들어지며 웹툰의 드라마화, 편곡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매절계약을 체결하고 2차적저작물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부가 수익이 생기면 원작자가 이에 대한 정산을 받지 못하는 권리 침해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3월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이하 이 작가)가 출판사와 저작권 관련 분쟁으로 4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소송을 벌이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작가는 <검정고무신>의 원작자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와 맺은 계약으로 인해 캐릭터 사용을 제재받았다. 한편 동화책 <구름빵>은 출간 이후 2차적저작물인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되며 4,400억 원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러나 원작자인 백희나 작가(이하 백작가)가 <구름빵>으로 정산받은 금액은 총 수익의 1%도 되지 않는 1,850만 원뿐이었다.

  백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으나 계약 내용이 법을위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백 작가는 <구름빵> 출간 당시 저작권료를 한번에 받는 조건으로 저작물의 모든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하는 매절계약을 체결했다. 반면 이 작가는 출판사와 수익을 나눴으나 <구름빵> 사례와 마찬가지로 <검정고무신>에 대해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고 배포하거나 복제하는 등의 권리를 출판사에 위탁했다. 위에서 언급한 두 사례처럼 원작자가 매절계약을 체결해 저작권 사용료를 모두 선지급 받으면 2차적저작물로 인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대가를 할당받지 못한다.

<검정고무신> 작가가 생전 작업한 미공개 원고 일부 <출처/중앙일보>

 

  원작자는 왜
  매절계약을 맺는가

  매절계약으로 피해를 입은 창작자 대부분은 당장필요한 수익과 데뷔를 위해 매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계약을 체결한다. 특히 계약 경험이 없는 신인이라면 더욱 피해받기 쉽다. 신인 작가들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빠른 진출을 위해 출간을 원하지만 출판사는 무명 작가에게 쉽게 투자하지 않는다.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이일호 교수(이하 이 교수)는 “작품을 출간해 데뷔하고자 계약을 체결하는 창작자들이 매절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면 계약서에 쉽게 서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출판사는 신인 작가의 미숙함을 악용해 불공정한 매절계약을 맺는다. 특히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고 이용할 권리인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돼 있다면 원작자는 출판사의 허락 없이는 저작물을 기반으로 한 창작이 불가하다. 반면 출판사는 원작을 바탕으로 웹툰이나 영상 등 2차적저작물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며 출판사 간 권리를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매절계약 자체를 문제라고 결론짓는 것은 섣부르며 이점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 법제연구팀 박정훈 선임연구원은 “업계에서는 출판 계약을 체결했으나 원작자에게 투자한 금액만큼 이익을 거두지 못해 출판사가 경제적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며 “출판사 입장에선 계약을 통해 저작권을 확실히 양도받고 원작자는 장래의 수익을 사전에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매절계약을 맺기도 한다”고 말했다.

2023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나타난 표준계약서 참고 여부 <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불합리한 계약 문제
  창작계 개혁 위해서는

  불공정한 매절계약을 비롯한 창작계 내 계약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2010년도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제재하는 실질적인 제도가 미비한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분야별 표준계약서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문체부가 제시한 저작권 표준계약서는 권리이전 기간과 2차저작물작성권이 원작자에게 있음을 명확히 밝혀 매절계약으로 발생하는 폐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표준계약서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계약 체결 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고 내용을 당사자 간 협의에 따라 수정하거나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23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 536명 중 표준계약서 양식대로 계약을 체결한 작가는 88명으로, 전체 웹툰 작가의 약 16.4%에 불과하다. 또한 계약 조건 결정 방식에서는 59.6%에 해당하는 웹툰 작가가 플랫폼에서 제시한 계약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판사와 원작자 간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모범 답안’일 뿐인 표준계약서는 무용지물이다.

  법적인 강제가 없다면 부당한 계약은 계속 체결될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상조 교수는 “지난 60여 년간 저작권 보장 범위와 제재 개선을 둘러싸고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원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입법론적노력은 전무했다”고 말했다. 2018년 국회에서 창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된 논의는 부재한 채로 폐기됐다. 추후 흥행에 따라 수익을 청구할 수 있는 저작권법 전부개정법률안 역시 2021년 1월에 발의됐으나 2년이 넘는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고(故)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출처/뉴스케이프>

 

  바람직한 창작세계를
  만들기 위해

  원작자가 불합리한 계약으로 피해받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2차적저작물작성권 양도를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이 교수는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양도할 경우 계약당사자가 충분히 이해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공증받게 만드는 강제 조치가 필요하다”며 “창작자가 공인된 기관에서 계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매절의 법적 결과에 대해 이해했다는 절차를 거치면 불리한 계약 구조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작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당사자간 계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국내 계약법에 따르면 양 당사자의 합의로 체결된 계약은 사후 내용을 변경하기 어렵다. 반면 유럽은 출판사와 원작자 간 지위가 동등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국가가 당사자 간 계약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2019년 유럽의회에서 통과한 DSM 저작권지침 제18조에 따르면 EU 회원국이 직접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 만약 불공정한 계약으로 원작자가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 지침에 따라 출판사에게 추가 정산을 요구하거나 계약 내용의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표준계약서 제도를 개선해 불공정한 계약서 사용 자체를 근절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사업자를 법적으로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이 교수는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시행하거나 표준계약서 사용을 독려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창작 환경에 맞춰 표준계약서를 갱신하고 소설이나 공연, 그림 등 분야를 세분화해 고려하는 과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원작을 기반으로 한 2차적저작물에 해당하는 창작 시장이 발전함에 따라 저작권 의식도 성장할 필요가 있다. 문체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양한 기관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여러 법안을 발의하고 있으나 여전히 부당한 계약으로 창작물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창작자가 많다. 허울뿐인 논의에서 그치지 않고 실효성 있는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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