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빚’, 게임사의 눈에는 ‘빛’인가
소비자의 ‘빚’, 게임사의 눈에는 ‘빛’인가
  • 황보경 기자
  • 승인 2021.09.13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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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에 의존치 말고 건강한 게임 운영해야

  사람들은 희박한 확률에 성공했을 때 느끼는 희열을 잊지 못한다. 게임사는 그러한 소비 심리를 이용해 확률형 아이템으로 수익을 형성한다.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소비자에게 막대한 과금을 유도하기도, 영업비밀 명목으로 확률을 은폐하기도 한다. 확률형 아이템 중독에 빠지는 이용자가 늘어나며 게임 산업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곧 경쟁력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주요 매출 담당하는 ‘가챠’

  게임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아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속 일정한 확률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특정 아이템을 의미하며 ‘무작위 뽑기 아이템’이라고도 불린다. 문방구에서 동전을 넣고 돌리는 캡슐 뽑기 기계와 비슷하다. 게임 이용자들은 뽑기 기계를 사용할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일본어 ‘가챠’를 속어로 더 많이 사용한다.

  게임에 최초로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은 국내 게임 회사 넥슨이다. 2004년 6월, 게임 ‘메이플스토리’ 일본 서버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가챠포티켓’을 유료 아이템으로 판매했다. 가챠포티켓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넥슨은 2005년부터 한국 서버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선보였고, 타 게임사들도 매출액을 올리기 위해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오늘날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는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운에 따른 보상을 즐기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효과적인 매출액을 달성할 수 있음이 앞서 증명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표 게임 3사인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의 매출 합은 2020년 기준 8조 314억 원에 달하며 수익의 중심에는 확률형 아이템이 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전체 매출인 2조 4,162억 원 중 89%인 2조 1,455억 원을 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유료 아이템 판매로 벌어들였다.

국내 대표 게임사의 매출 추이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는다. 〈출처/서울신문, 엔씨소프트 자료 제공〉
국내 대표 게임사의 매출 추이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는다. 〈출처/서울신문, 엔씨소프트 자료 제공〉

 

  확률 비공개와 조작 논란,

  이용자의 신뢰는 수직하락

  확률형 아이템의 가장 큰 문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확률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이하 게임협회)가 2015년부터 시행한 자율규제 강령에 따르면 확률 공개 대상은 이용자가 직접 유료로 구매한 아이템에 한정한다. 유료 아이템과 무료 아이템이 섞여 있을 경우 확률 공개 대상이 아니다. 유료 아이템을 강화하거나 합성할 시에도 확률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

  ‘컴플리트 가챠’는 유료 아이템 여러 개를 합성해 더 희귀한 아이템을 얻는 것으로 이중 뽑기라고도 한다. 확률형 아이템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 아니므로 확률 공개 대상이 아니다. 게임 ‘리니지2M’의 경우 최고 등급인 ‘신화 무기’를 얻기 위한 과정이 복잡하다. 우선 확률형 아이템인 ‘레시피’가 필요한데, 상위 3개 등급의 레시피를 획득할 수 있는 확률은 0.2%~0.25%에 그친다. 나아가 각각의 레시피를 다른 재료로 변환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변환한 재료 10개를 모아야만 일정 확률로 신화 무기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합성 확률이 비공개고, 합성 실패 시 그동안 모은 레시피가 파괴된다. 이용자들은 신화 무기 레시피를 얻기 위해 평균 1~2억 원을 쓴다.

  확률 비공개는 확률 조작의 위험성으로 이어진다. 넥슨은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환생의 불꽃’이라는 확률형 아이템을 사용해 장비 아이템에 추가 능력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무작위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지난 2월 “아이템에 부여하는 모든 종류의 추가 옵션을 동일 확률로 부여하겠다”고 알렸고, 이용자들은 “지금까지는 동일한 확률이 아니었냐”며 해명을 요구했다. 실제로 인기가 많은 능력치는 낮은 확률로, 인기가 낮은 능력치는 높은 확률로 부여됐음이 밝혀져 확률 조작 논란이 일었다. 이에 이용자들은 불매 운동 및 게임 이탈, 오프라인 트럭 시위를 진행하며 소비자를 기만하는 넥슨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게임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확률 조작 논란에 대한 넥슨 측의 해명을 촉구하고자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출처/메이플스토리 인벤〉
게임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확률 조작 논란에 대한 넥슨 측의 해명을 촉구하고자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출처/메이플스토리 인벤〉

 

  통제의 환상 부르는 확률형 아이템

  도박에 버금가는 중독성

  전 세계 확률형 아이템 구매 비용의 과반은 이용자의 평균 10% 미만이 지불한다. 그중 확률형 아이템 중독에 빠져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과금하기 위해 빚을 지거나 일상생활까지 지장받는 이들도 있다.

  영국 플리머스대학교와 울버햄프턴대학교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 구매는 구조적·심리적으로 도박과 유사하다. 실물이 없는 데이터에 현금을 걸고 희박한 확률을 노리며 실패할 경우 매몰 비용이 아까워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최호섭 IT전문 칼럼니스트(이하 최 칼럼니스트)는 “이용자가 확률형 아이템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복권을 구매하는 것과 같은 심리다”며 “당첨되지 않더라도 뽑는 순간에는 실제 가능성보다 큰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고, 뽑기를 했을 때 최소한의 보상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소비한 금액만큼 본전을 뽑았다’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확률형 아이템에 중독된 이용자는 통제의 환상에 빠진다. 확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실제 상황과는 달리 그 속에서 자가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게임협회 자율규제 강화,

  확률 공개 대상 확대에만 그쳐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15년부터 시작돼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올해 기준 107개 게임 중 106개가 협약을 준수하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율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크다. 막상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용자가 확률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확률 조작 및 확률 공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위해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토론회에서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임법)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이후 올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된 확률형 아이템 관련 개정안은 3건이다. 각각 △확률형 아이템의 출현 확률 공개 및 허위 표기 금지 △획득 확률 조작 및 컴플리트 가챠 금지 △정부 및 게임사에 게임물 이용자 보호 기구 설치의 내용을 담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의 법적 규제 가능성이 커지자 게임사들은 뒤늦게 자율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5월, 게임협회는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을 개정해 발표했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범위 확대 △유료와 무료가 결합된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확률 정보 표시 방안 마련 등의 내용을 담았으며, 올해 12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게임협회의 자율규제 강화와는 별개로 지난달 25일,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시 의무화 법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27일, 게임협회가 공개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 〈출처/EBN뉴스, 한국게임산업협회 제공〉
지난 5월 27일, 게임협회가 공개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 〈출처/EBN뉴스, 한국게임산업협회 제공〉

 

  자체적인 자정 뒷받침할

  단계적 법적 규제 필요해

  과열된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은 이용자의 소비 심리를 자극해 과소비를 부추기며 심각한 사행성 문제를 낳는다. 최 칼럼니스트는 “게임 시장의 자체적인 자정과 함께 단계별 법적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시장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자체 기준을 만들고, 정부는 확실한 법적 규제를 마련해 이용자가 올바른 소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일본은 확률 공개의 의무는 없으나 자국 기반 게임사의 절반 이상이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확률 공개 조건을 구체화해 게임사가 운영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의 담당자를 정한 후 서버에 기록을 남기도록 의무화하는 지침 덕분이다. 조작 의혹이나 오류가 생겨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는 게임사와 소비자 간 신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다만 확률 공개 확대만으로는 확률형 아이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복권 당첨보다 확률이 낮을 때도 있는 현 확률형 아이템이 구매가에 부합하는 보상을 주는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며 기형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최 칼럼니스트는 “확률형 아이템에 큰돈을 써야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면 이용자에게 외면받고 게임 시장도 가라앉을 것이다”며 “게임사는 스스로 적절한 선과 소비자의 요구를 판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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