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의 광주, 죄인은 없었다
39년 만의 광주, 죄인은 없었다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9.03.18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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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39년 전, 우리나라는 독재정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당한 후 국민들은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보안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전두환 씨(이하 전 씨)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에 1980년 5월 17일, 전 씨를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은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하에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 다음날인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는 악몽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광주의 대학생들은 계엄령 철폐와 전 씨 및 신군부 인사들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펼쳤다. 그러나 정부의 명령 하에 계엄군은 이를 무력으로 과잉 진압했고, 이에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더 강하게 저항했다. 10일 동안 광주시민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계엄군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그동안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광주시민들은 가족, 이웃,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경험했다.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이 당시 광주의 아픔을 ‘5·18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민주화운동)’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10일간의 항쟁으로 목숨을 잃은 넋을 위로하며 함께 아파하고 슬퍼했다. 그러나 당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장본인인 전 씨는 2017년에 ‘전두환 회고록’이라는 본인의 회고록을 통해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기술하는 등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부정했다. 전 씨의 반성 없는 태도와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에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11일, 전 씨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아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지방법원(이하 광주법원)에 출두했다. 전 씨는 회고록에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이하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했다. 이에 지난해 4월, 조 신부의 유가족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전 씨를 광주법원에 고소했고, 그 혐의가 인정돼 전 씨는 광주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던 전 씨는 여러 차례 광주법원에서의 재판을 거부했다. 전 씨의 요청으로 한차례 재판이 연기된 후에도 그는 알츠하이머, 독감을 앓고 있다는 이유를 들며 두 차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또한 전 씨는 광주가 아닌 서울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대법원에 ‘재판 관할 이전’을 신청했지만, 이는 기각됐다. 결국 광주법원은 구인장을 발부해 지난 11일에 전 씨의 재판을 진행했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39년 만에 전 씨가 광주에 온다는 사실에 광주는 들썩였다. 광주시민들은 재판을 통해 전 씨를 엄격히 단죄하고 전 씨가 광주시민을 향해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랐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의 바람과 달리 광주에 도착한 전 씨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그는 재판에서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모든 혐의를 부인했으며 법원 앞에 모인 광주시민들에게 짧은 유감조차 표하지 않았다. 전 씨는 오히려 5·18민주화운동의 혐의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에게 역정을 내고 시종일관 불편한 표정을 내비쳤다.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에 광주시민들은 다시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광주에서 발생한 10일의 항쟁 이후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에는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는 없었다. 모든 진실이 가해자가 누구인지 가리키고 있지만, 가해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 씨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광주법원 근처에서는 해당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는 39년 전 5월, 광주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 바쳐 외쳤던 말이기도 하다. 지금도 광주에 울려 퍼지는 이 목소리는 전 씨가 진심으로 사죄하는 그날, 진정으로 광주에 봄이 오는 날까지 외쳐질 것이다.

*신군부 :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만든 비공식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정권을 잡은 군 장성들을 이르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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