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적 장소가 그랬듯, 과거 대학 역시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이 늘어났지만 오랜기간 동안 형성된 대학의 남성 중심적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에 대학 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인 총여 학생회(이하 총여)가 등장해 여성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일이다. 총여가 있었던 많은 대학에서 최근 총여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총여는 왜 사라지게 됐을까? 총여가 위기를 맞은 지금, 총여는 정말 대학에 필요하지 않은 조직인 걸까?
위기에 빠진
총여학생회의 존립
지난 5월,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모음’(이하 모음)이 존립 위기에 빠졌다. 발단은 지난 5월 24일 열린 페미니스트 은하선 작가의 초청 강연(이하 은 작가 강연)이었다. 연세대학교 내부에서 이에 대한 반대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은 작가 강연을 반대하는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지난 5월 23일부터 강연 반대 연서명을 진행했고, 이에 총 569명의 강연 반대 연서명이 연세대학교 학생복지처에 전달됐다. 그러나 지난 5월 24일, 모음은 강연 장소만 변경해 은 작가 강연을 진행했다.
이에 지난 5월 25일, 연세대학교에서는 ‘제29대 총여학생회 <모음> 퇴진 및 재개편 서명운동’이 진행됐다. 이를 주도하는 ‘제29대 총여학생회 <모음> 퇴진 및 총여학생회 재개편 추진단’(이하 추진 단)은 모음이 학생들의 반대에도 은 작가 강연을 강행했으며 이러한 모음의 독단적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총여 재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추진단은 총여를 학생인권위원회로 개편하는 가안을 제시했다. 추진단은 연세대학교 전체 학생 의 1/10 이상의 서명을 받았고, 중앙운영위원회에 이에 대한 학생총투표를 공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추진단의 움직임에 학생총투표를 반대 하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우리에게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이하 우총필)는 추진단의 서명운동이 연세대학교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점을 지적했다. 우총필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추진단의 서명운동에 참여한 학생 중 학적부상 재적인 여학생의 수는 전체의 1/10 이상에 미치지 못했고, 이에 총여의 회원인 여학생의 참여가 학생총투표 실시 필요조건에 미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우총필은 서명운동이 받아들여져 학생총투표가 진행되자 이에 대한 보이콧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학생총투표가 진행되고, 총여 재개편 요구에 투표인원의 82.28%가 찬성했다. 모음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총투표 결과를 책임있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총여의 방향을 논의하는 재개편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위의 사건으로 우리사회에 총여를 둘러싼 담론이 활성화됐지만, 총여의 실체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연세대학교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고려대학교 여성주의교지 ‘석순’은 <캠퍼스 페미니즘> 기획에서 전국 4년제 대학 217개교를 대상으로 ‘전국총여학생회 전수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총여가 존재했던 83개교 중 현재 총여가 존재하고 있는 대학은 37개교에 그쳤다. 2018년 현재 서울 주요 대학 중 총여가 운영되고 있는 대학은 동국대학교와 연세대학교뿐이다. 여러 대학에서 총여가 제도적으로 폐지되거나, 남아있어도 그 자리가 공석인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대학에 총여가 부재한 상황이다.
과거, 남성 중심 문화에서
여성을 지키다
총여는 1980년대 학생운동시기 우리나라에 생겨났다.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하 심 의원)이 서울대학교에 재학하며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운 동권의 가부장적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최초의 여학생회를 만든 것이 그 계기였다. 총 여는 남성 중심적인 대학문화에서 여성을 위한 소통창구이자 여성을 대변하는 기관의 역할을 했다.
1984년 성균관대학교의 총여학생회장이었던 이승영(55. 여) 씨는 “당시 학도호국단이 총학생회로 바뀌어 만들어지며 학도호국단의 여학생 제대가 총여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총여의 1년 사업을 계획하고 단과대학별로 이를 진행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여성 문제 를 어떻게 사업에 녹여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주체로서 총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같은 해 성균관대학교의 약학대학 여학생회장이었던 도세영(55. 여) 씨는 “당시는 남성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일이 진행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며 “대학에서 여성의 역할을 바로 세우고 성차별적인 관습을 바로잡아나가는 것이 여학생회의 활동목표였다”고 말했다.
현재, 계속해서 일어나는
존립 필요성 논란
현재 총여의 존립에 대해 많은 의견이 갈리고 있다. 과거보다 여성이 대학에 많이 입학하고, 총여가 등장한 시기에 비해 현재 우리사회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학에서 여성 인권이 충분히 신장했기 때문에 더 이상 총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다양한 여성주의 기관이 있으며, 여성 인권을 위하는 총학생회 산하 기구가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여가 자치 기구로서 존재하면 대학 내 여성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담론을 더 활발히 펼 칠 수 있다. 학내 여학생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발생할 때 총여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10년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했던 강현주 씨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여가 산하 기구로 가면 총학의 기조를 따라가게 돼 여학생 활동 자체가 부문 운동으로 빠진다”며 “근본적으로 성별 이분법에 대해 도전적인 질문을 던질 수 없게 된다”고 전했다.
또 남학생이 함께 내는 학생회비가 총여의 회비 로 이용되기 때문에 총여의 존재가 남학생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우총필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총동아리연합회 또한 총여와 마찬가지로 중앙동아리를 하지 않는 사람의 학생회비를 쓴다”며 “이에 대해서는 동일한 지적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가 사회복지정책의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사회적 열세의 정체성을 지원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는다”며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것은 공동체적 의무다”고 전했다. 고려대학교 여성주의교지 석순의 46체제 편집위원 먀콘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총여 담론에서 필요한 것은 총여를 둘러싼 학생회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총여가 무슨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다”고 전했다.
진실로 성평등한
대학과 사회를 위해
무엇보다 총여를 부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내 성평등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나 학내 미투(#Me Too) 운동과 같이 여성이 피해받는 사건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진정 대학 내 성평등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레디앙의 기사 <심상정과 학생들의 세상을 바꾸는 ‘불온한 수다’>에 따르면, 연세대학교에서 심 의원을 초청한 강연 <심상정이 말하는 한국경제>의 뒤풀이 자리에서 심 의원은 총여 폐지에 대해 양 보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심 의원은 “대학 문턱을 나서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부장제를 실감하게 된다”며 “대학에서부터 성평등 문화를 확고하게 갖춰야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평등한 사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고 전했다.
또한 연세대학교의 한 남학생의 자보 ‘나는 총 여학생회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는 “성차별이란 우리가 자라오면서 공기처럼 주변에 존재했던 것이다”며 “이러한 일들이 최근 감소했을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사라졌다고 믿는 건 굉장히 꿈결 같은 생각이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연세대학교의 총여 학생회 재개편을 반대하는 많은 자보가 대학 내 여성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자다. 이러 한 현실에서 대학이 성평등을 이뤄냈다고 주장하긴 어려운 일이다. 인권과 차별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노력하고 연대해 진실로 성평등을 이룬 날이 온다면, 우리는 그때 다시 총여의 존립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