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출세의 사다리’라고 불리던 사법시험이 로스쿨 도입으로 폐지를 앞두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로스쿨은 ‘돈스쿨’이라 불리며 돈 있는 부유층 자식만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됐다. 어쩌면 우리사회는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부모의 신분이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신분제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세습되는 부로 점점 고착화돼가는 신분 장벽, 신분제 사회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백성을 양인과 천인으로 나누는 신분 제도로 ‘양천제’를 시행했다. 백성들은 각각의 신분에 따라 사회적으로 맡은 역할이 달랐고 신분 간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이와 달리 현재는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이는 헌법 제2장 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와 2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는 조항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사회는 부당하게 국민들의 평등권과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을 법으로서 보호한다.
이처럼 현재 우리사회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평등이나 부조리를 드러내는 사건들이 많다. 예컨대 올해 초 ‘갑질’의 상징이 됐던 ‘땅콩 회항’ 사건에서도 이러한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동등한 자격으로 체결된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주인 갑이 계약상 우위를 차지해 고용자를 부당하게 대한다. 이는 과거 신분제 사회 속 주인과 노비의 주종 관계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현대사회가 과거 신분제 사회로 다시금 회귀한 듯한 인상을 준다.
노동자라 읽고 노비라고 쓴다
몇 년 전, 모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지금이 조선시대라면 회사원의 신분은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행인에게 물었고 그는 “노비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서 회사원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한 마디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확실했다. 위의 사례에서는 회사원만 언급돼있지만 단순노동자, 감정노동자, 이주노동자 등과 같은 다양한 노동자들이 ‘현대판 노비’로 여겨진다.
학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전체 인구의 최소 30% 이상이 노비 신분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왕씨는 500년 동안 종친과 거실(巨室)들이 노비를 많이 끌어들여 천여 구(口)까지에 이르렀습니다”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는 조선시대 종친이나 귀족 가문에 노비가 1천 명이나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당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했던 노비들은 마당 쓸기 같은 단순한 노동에서부터 상당한 규모의 생산조직까지 생산활동에 참여했다. 조선 중기의 설화집인 <어우야담>에 의하면 “국법상으로 노비는 벼슬길에 나갈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농업·공업·상업·병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사농공상 중에서도 노비들은 농업과 공업에 많이 종사했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는 농업사회였으며 노비가 주된 노동력이었기에 농민의 대다수가 노비였다. 또 <세종실록>에는 수공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를 공장이라고 일컫는데 공장 대부분이 노비였다고 기술돼 있다.
이러한 조선시대 노비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우리사회의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많은 수의 국민들이 노동자로 일하면서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조선시대 산업생산의 많은 부분을 책임졌던 노비와 흡사하다. 물론 현대인들은 자유 계약에 기초하고 있으며 신체도 회사에게 예속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훨씬 나은 환경에서 일한다. 하지만 사용자의 ‘권력’에 종속된 채 일한다는 본질적인 면은 바뀌지 않았다.
현대판 노비의 탄생
오늘날의 노동자와 조선시대 노비가 사회로부터 차별받는 철저한 약자의 모습인 것도 유사점이다. <선조수정실록>을 보면 조선 중기 문신 겸 사상가였던 정여립이 7-8세 때 놀면서 까치 새끼의 뼈를 부러뜨리고 살을 찢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여립은 이 사실을 아버지인 정희증에게 고했다는 이유로 여종을 칼로 찔러 죽인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노비를 죽여도 조선시대의 권력층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이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 노비는 주인의 소유물로서 주인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현대사회에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로 갑이 을에게 불합리한 권력을 휘두른다. 노동자들은 조선시대 노비들처럼 고용자에 의해 그들의 목숨, 즉 정규직 전환이나 재계약 여부가 결정된다. 지난 5년 간 비정규직은 3만 8306명에서 4만 3476명으로 13.5% 정도 증가한 반면 정규직은 9만 9249명에서 10만 1274명으로 2% 정도 늘어나는데 그쳤다. 비정규직들은 신분적 차별과 임금 차별, 그리고 불안한 고용형태로 노동시장에서 절대적 약자가 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6월에 발표한 ‘업종별 직장 괴롭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비율은 정규직이 12.4%인 반면 무기계약직은 17.7%, 비정규직은 22.2%였다. 이처럼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불이익이나 피해를 경험한 비율이 높다. 회사는 마치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양반과 같은 모습을 띤다. 반면 21세기형 노비로 자조되는 비정규직은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신분제적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
조선시대는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신분’이 형성됐다. <경국대전>에는 노비의 신분과 주인을 결정하는데 모계(母系)를 따르게 하는 노비종모법이 법제화돼있다. 이처럼 이 당시는 혈통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고 대물림됐다.
현대사회의 경우 민주주의 이념 아래 타고난 신분이 아닌 자신의 ‘능력’에 따라 지위와 권력이 주어져야 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부모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면 소위 ‘금수저’인 자식들 역시 그 권력을 세습받는다. 그 예로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기업에 자녀의 취업을 청탁한 국회의원이나 기업을 삼대에 걸쳐 세습하는 재벌들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시장경제체제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라는 날개를 장착해야 한다.
신분제 사회에서 행해졌던 혈연에 의한 ‘신분’ 형성이 21세기인 오늘날도 똑같이 행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제도가 빈부 격차를 만들었다면 현재는 시장만능주의의 토대 위에서 부모의 재산이나 권력의 차이가 불평등과 격차 사회를 만들고 있다.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이 실시한 <계층상승 사다리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81%가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했다. 또한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90.7%에 이른다. 이처럼 다수의 국민들이 신분 세습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우리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신분제적 질서를 타파해나가야 한다. 정부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 문제 완화 같은 실효성 있는 장치들을 강구해야 한다. 부모의 재산을 부당한 방법으로 상속받거나 혹은 권력을 세습 받은 타고난 소수들의 ‘승자들이 독식하는 세상’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의 근간인 진정한 의미의 ‘기회적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