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제47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 변수정(국어국문 2)
  • 승인 2023.12.0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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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스, 알 코다.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나 봐. 쉬지 않고 흘렀던 노래들, 문이 닫히던 순간에도 분명 그곳에 머물렀을 농담과 조명이 꺼지던 순간에도 기록된 시끄러운 감정이 너무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나봐. 나는 떨어지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눈을 감으면 다시 연습실로, 앰프의 소음과 이명이 귀를 울리는 공간으로. 우리만의 언어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던 그곳으로, 자꾸만 되돌아가.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는 어느 날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계속 문 앞에서 이 곡이 끝나는 순간을 기다려. 언제쯤 문을 열어도 되는지 살피면서.

  드럼을 연주하며 생겼던 굳은살과 손목 염증은 진즉에 사라졌다. 연습의 훈장처럼 주어졌던 굳은살은 스틱을 놓은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고, 나를 줄곧 괴롭혔던 손목 염증은 밴드를 관두고 두 번의 계절이 지나 가장 아래 서랍에 넣어두었던 여름 옷을 꺼낼 무렵 말끔히 사라졌다. 다른 것들이 전부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는 와중에도 떨어진 청력만큼은 회복되지 않았다. 소음에서 벗어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진단은 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걸까? 합주가 끝난 직후나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주변이 고요해지면 항상 들리던 이명마저 어느 날부터 오른쪽과 왼쪽에서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오른쪽 귀가 먹먹하고, 기타 세션의 소리가 작게 들리던 것이 기분 탓이 아니라 지나친 소음에 귀가 다친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사장 데시벨과 똑같은 밴드 데시벨을 견디며 하루빨리 밴드 활동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뿐.

  그렇게 내 몸 이곳저곳에 어설픈 과거의 기억들이 자리 잡았다. 내가 밴드를 했다는 사실은 나와 내 몸 외에는 모르는 비밀이 되었다.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굳은살이 생긴 자리에 남은 딱딱한 피부와 비 오는 날이면 여전히 쑤시는 오른쪽 손목, 남들보다 조금 안 좋은 오른쪽 귀, 말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그때를 희미하게 떠올리게 한다. 청춘의 잔향인가. 원래 이렇게 멋없게 남는 것이 지나간 청춘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헤드셋을 쓴다. 귀에 딱 들어맞는 이어폰을 안 쓴지는 벌써 8년이 넘어간다. 귀에 무언가 차갑고 딱딱한 것이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 싫어서 이어폰 대신에 쓰기 시작한 헤드셋은 나의 고집이다. 잠깐의 고요함도 일상의 무료함도 못 견디고 자꾸만 노래로 삶을 채우려고 한다. 이게 다 청춘의 잔향 때문이야. 그렇게 핑계 삼고 싶다. 잔향이 너무 오래 남은 탓이야, 하고.

  벽에 느슨하게 기대서 노래를 고른다. 어떤 노래를 들을까, 어느 순간 플레이리스트에 담겨 CD에서 MP3로,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멜론으로, 유튜브로 옮겨 다닌 노래 중에 어떤 노래가 가장 그때를 떠올리게 할까? 나는 빠르게 목록을 내리며 바닥을 향한 모험을 떠난다. 밴드별로, 장르별로, 기분이나 계절별로 음악을 정리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3000곡 정도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스크롤하고 있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곳 어딘가에 우리를 추억할 노래가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계속해서 내려간다.

  “아, 찾았다”

  더 스미스, 너바나, 그 아래에 오아시스의 노래가 있다.

  “진짜 아무렇게나 담았네”

  언젠가는 꼭 정리하겠다는 다짐을 뒤로하고, 노래를 재생한다.

  - I don't believe that anybody Feels the way I do about you now.

  오아시스의 노래를 너는 제일 좋아했다. 그중에도 원더월이 제일 좋다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추천해 주는 바람에 이 곡을 들으면 그 애와 그때의 우리가 떠오른다.

  “난 이 노래 별로야. 가사가 너무 난해하지 않아?”

  내가 이 노래에 대해서 이렇게 물으면

  “네가 아직 원더월을 못 만나봐서 그래”

  그 애는 또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대답으로 내놓았다.

  서은은 그런 사람이었다. 가볍고, 밝고, 장난과 농담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굴다가 또 이상한 데에서 금방 진지해지는, 알기 어려운 사람. 노래의 진가를 모른다며 잔뜩 핀잔을 주고는 그 노래가 담긴 CD를 선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애랑 이 노래가 잘 어울렸나, 노래를 부른 가수도, 듣는 팬들도 아직도 원더월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곡을 좋아하는 너, 자신만의 원더월을 너무 빨리 찾은 서은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 노래를 부르던 너를 떠올린다.

  - Because maybe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이 구절에서 너는 꼭 눈을 감았다. 무대를 오르기 전에 늘 긴장을 해서 공연이 있는 날에는 항상 체하곤 했던 너를 떠올린다. 너는 떨림을 감추려고 가슴에 손을 얹고는 했다. 네 심장은 어떤 박자에 맞춰 뛰고 있었을까? 내 드럼과 함께 뛰고 있었을까? 이 곡이 몇 bpm이더라. 아주 오래전에 버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버리지 못한 미련이 담긴 상자 어딘가에 그 악보가 있을 거야. 다행이다. 내가 추억에 쉽게 매몰되는 사람이라서. 우리가 속삭였던 모든 것을 버릴 때도 악보만큼은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이상하게 그 악보집은 버릴 수 없었어. 아무리 바래고, 구겨져도 버릴 수가 없어서 버리지 않았어. 그 악보에 네 심장의 떨림도 함께 묻혀 있겠지? 꺼내두어야겠다. 꺼내서 그때의 떨림을 기억해야겠다.

  - And after all You're my wonderwall

  그리고 이 구절에선 꼭 눈을 떴다. 나는 이 노래에서만 들을 수 있는 네 낮은 목소리가 좋았다. 남자 키라서 부르기 어렵다고 해놓고 항상 잘만 부르던 너에게 이 노래는 꽤 잘 어울렸다. 가끔 나를 보면서 이 부분을 불러주던 때를 기억한다. 서은아, 너한테 원더월은 누구였니. 누구를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그런 표정으로, 그런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거야? 서은과는 벌써 8년째 함께했다. 그 애가 뿌리던 싸구려 향수의 향과 내 샴푸 향이 우연히 같아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친구였던 것 같다.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그 애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할까? 아직도 모르겠다. 난 그냥 너를 싸구려 라벤더 향으로만 기억하고 싶은데. 그게 좀 어려워, 서은아.

  “안녕하세요, 보컬을 맡게 된 고서은입니다”

  14년도의 봄, 처음으로 서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적당히 따뜻하고, 지극히 평범한 목소리. 보컬이라고 하기에는 특색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난했던 네 목소리가 노래를 부를 때는 누구보다 매력적이고, 기분 좋은 울림을 낼 수 있는 소리가 된다는 것, 그게 우리가 연주하고 네가 부르던 곡과 너무 잘 어울렸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애들이 네 목소리를 칭찬할 때 나도 거들어 줄걸, 너무 야박하게 굴었나. 노래를 부르든, 부르지 않든 늘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그게 뭐라고 아끼다가 영영 못 꺼내는 마음이 되었는지. 아끼던 마음과 말을 전부 꺼내서 전시하고 싶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 빛바랜 청춘은 늘 괴로움을 동반하는구나. 서은아, 너도 그랬던 적이 있어? 어느 날, 네가 너무 보고 싶어져. 그런데 더 이상 너를 만날 수가 없어서 우리의 청춘을 파먹는 거야. 네가 남긴 잔향을 파먹다가 밑바닥까지 다다르면, 그 밑바닥에서 내 얼굴을 마주해. 초라한 나, 청춘에 갇혀서 자꾸만 이곳으로 돌아오는 나를. 아마도 네가 쓰던 향수의 베이스 노트는 라벤더랑은 무척 안 어울리는 향인가 봐. 잔향이 너무 써서 남은 향을 견디기가 어렵다.

  서은의 향, 싸구려 라벤더 향수. 이제까지 내가 맡아 왔던 라벤더의 향기와 네게서 나는 향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나는 감히 그 향수를 싸구려라고 칭했다. 사실 라벤더 향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먼저 나에게서 자기랑 비슷한 향이 난다고 했고, 마침 그때 내가 샴푸를 바꿨고, 하필 그 향이 라벤더라서. 나는 그냥 라벤더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에게 무슨 향수를 쓰냐고 물으면, 너는 나를 놀릴 생각에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난 향수 같은 거 안 쓰는데?”라고만 해서 무슨 향인지 추측하는 일은 관두었다. 여전히 그 향의 이름은 모르겠다. 탑 노트는 사라지고 잔향만 남을 뿐이다. 향기는 너무 쉽게 휘발되어서 나는 계속 기억을 꺼내어본다. 예를 들면, 네가 피우던 말보로 실버의 향과 이제는 페인트칠이 벗겨져가는 분홍색 구령대, 거기에 앉아서 너는 담배를 피우고, 나를 너를 바라보며 나누었던 대화. 운동장에 눈이 발목까지 쌓였을 때, 손을 녹여가며 만들었던 눈사람이나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빠져나와 첫차를 기다리던 합정역 5번 출구, 영근터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읽었던 시집.

  단편적인 조각으로 맞춘 우리의 기억은 눈부시다. 사실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너를 미워하던 마음과 이유 없이 짜증 냈던 날들은 기억 저편으로, 아주 먼 곳으로 치워두고 행복했던 순간으로 추억하고 싶다. 우리의 첫 무대, 선배들과의 이별, 공연에서 생겼던 크고 작은 실수,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만난 순간, 축제, 처음으로 떠난 동아리 엠티, 동방 408호에서 보냈던 밤들. 그러나 그런 기억 사이에는 너무 많은 불협화음의 순간이 존재해서 좀처럼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순간들도 음을 조율하듯이, 악보를 고치듯이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순간들은 기억을 비집고 나온다. 기억하기 싫은 여름은 매번 찾아온다.

  아무리 에어컨의 온도를 낮춰도, 연습실 가장 구석에 자리한 드럼 자리까지 시원한 바람이 오지는 않았다. 몇 번 합주를 하고 나면 나는 땀범벅이 되었고, 금세 지쳤다. 여름은 정말이지 싫다. 그땐 조그마한 자극에도 짜증이 났다. 그런 나한테 그 애의 라벤더 향기는 지독한 멀미였다. 오죽하면 그 애가 뿌리는 향수가 싫어서 곁에 앉기를 꺼려 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서은은 툭하면 노래를 부르다가 뒤를 돌아봤고, 그러면 나는 멀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걸 멀미라고 해도 되나? 가슴은 울렁거렸고, 귀는 늘 빨개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앰프 소리와 드럼의 울림에 섞인 향기 때문에 자꾸만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서은 때문에 박자를 놓친 거라는 내 변명은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그 애를 싫어했다. 짜증 내고, 핀잔을 주고, 거리를 두었다. 답답한 마음과 알 수 없는 기분을 전부 네 탓으로 돌렸다.

  당연하게도 서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여름은 원래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가 낭만적으로 만드는 계절이고, 매년 조금씩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드럼이 그 자리에 위치한 것도 분명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내가 금방 지치고, 더워하는 것도 서은의 잘못이 아니다. 서은의 향수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리고 그건, 멀미가 아니었다. 네가 합주 중에 나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탓할 수 없다. 그건 서은의 마음이니까.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남을 괴롭힌 부끄러운 계절이었다. 내가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서은은 받아주었고, 늘 웃어주었다. 너희는 나와 서은이 서로에게 화를 내고, 장난을 치는 친한 친구 사이라고 말했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서은이 나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 친구로 보일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떤 핑계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나는 내 감정을 너에게 책임지라고 떠밀었을까. 8년 동안, 매일 같이, 어쩌면 그것보다 더 자주 나는 너를 생각했고, 너에게서 나를 찾으려고 했다.

  -사실, 서은아. 나는 예전에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다만, 너처럼 용감하지 못해서 나를 제대로 인정하기 어려웠나 봐.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해석하기 싫었어. 지금에서야 이렇게 말하는 게 비겁하다는 거 알아, 미안해

  감정을 깨닫고, 매일같이 사과하는 일기를 썼다. 이기적인 나는 너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잠들기가 어려워서 하루의 일과를 쓰고, 짧은 감상을 쓰고, 사과를 했다. 닿지도 않고, 닿을 수도 없는 사과가 쌓여가던 어느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일기를 쓰고 잠들었는데 꿈에 네가 나왔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꿈에서도 너는 다정한 웃음을 지었고, 내가 좋아했던 그 얇은 입술은 여전했다. 왼쪽 눈 옆에 자리한 갈색 점도 그대로였다. 분명 너였다. 나는 사과했다. 매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또, 울었던가?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

  너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을, 너의 얼굴을 하고서 꿈속의 네가 물었다.

  꿈에서 깼을 땐, 다시 꿈속이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짐 정리가 덜 된, 침대 주변에 아무렇게나 상자가 쌓여있는 내 원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했던 연습실이었다. 꿈인 걸 알고 꾸는 꿈이 무서우면서도, 그때로 돌아온 것만 같아서 깨기 싫었다. 이제 우리의 연습실이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다. 밴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졸업을 했고, 대충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로 전공을 살린 척 취업을 했고, 그렇게 일상을 보내다가 우연히 다시 연락하게 된 밴드 멤버들과 다시 찾은 연습실에는 이름도 얼굴도 낯선 후배들의 공연 포스터, 브랜드만 바뀐 채로 여전히 쌓여있는 술병, 이 연습실에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 아이들의 기타와 널브러진 악보, 이제는 낡아버린 도어락과 먼지가 가득한 블라인드가 우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의 방명록과 작은방 창문 아래에 적어둔 너와 내 이름, 우리만 알아볼 수 있는 낙서들, 고작 이런 것들로만 나는 우리의 연습실을 회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꿈이라 그런가, 모든 것이 생생하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속에서 연습실은 계속 존재했던 걸까? 내가 잊고 싶었기 때문에 사라진 것일까? 너처럼?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나는 꿈속의 연습실에 홀로 앉아 너를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냐고? 모든 게 미안하지. 연습이 끝나는 게 싫었고,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핑계를 대서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네가 방해해서 합주를 제대로 못 했으니까, 다른 애들은 가더라도 고서은만 남아서 나랑 연습하라고 하면 너는 바보같이 알겠다고, 기다려주겠다고 해줬으니까. 그래서 계속 심술을 부리고, 짜증을 냈다. 사실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너는 어쩌면 그때부터 내 마음을 알고 있었겠구나. 그래서 나에게 그렇게 물었구나.

  밴드의 메인 기수로 무대에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들이 생겼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을 땐 씁쓸하지만 후련했다.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렀다. 밴드에서 해보고자 다짐했던 것들은 절반도 이루지 못했고,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것이 떨렸지만 끝은 정해져 있었다. 합주를 하면서, 포스터를 붙이면서, 무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끝을 준비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우리는 어디로 흩어질까. 이 작은 방안에 모여서 나누었던 대화들은 어디에 기록될까. 우리의 음악은 의미 없는 것으로 남을까. 가족보다 더 많이 얼굴을 마주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썼는데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영상으로만 남은 노래는 몇 번이고 재생할 수 있겠지만, 기억은 돌려 감기를 할 수 없는데 한순간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고민했다. 그때의 너도 그랬을까? 네가 여느 때처럼 전혀 진지하지 않은 얼굴로 진지한 질문을 했다.

  “너는 어디로 갈 거야?”

  처음에 그 질문을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너는 연습실 바닥에 누워서 나를 올려다보며 물어봤으니까.

  “오늘은 집에 가겠지, 내일은 공연 끝나고 너네랑 뒤풀이 가고.”

  내 대답을 들은 네가 조금 웃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다음 날은? 민지는 내년에 휴학할 거래, 지영이는 일본으로 교환학생 간다고 했고, 나는 내년까지는 학교에 있을 것 같아. 너는 어디로 갈 거야?”

  어디로 가느냐고?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생각하기 싫었으니까. 왜 끝은 꼭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걸까. 몇 번이고 마음의 준비를 해도 마지막이 슬프다는 건 정해져 있는 사실인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하고 힘차게 외치면, 이별을 조금 미뤄낼 수 있나. 아니다, 그것도 너무 슬프다. 내가 몇 번이고 끝나지 않았다며 마지막을 미뤄도, 결국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아, 헤어짐은 필연인가. 매 순간 헤어짐을 상상하며 살아왔다면 그 질문이 조금은 덜 슬프게 다가왔을까. 나는 서은이 바라는 대답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었다.

  “몰라, 그래도 다시는 밴드 같은 거 안 할 거야.”

  그 다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헤어짐은 한 번이면 충분하니까. 두 번씩이나 같은 일로 우는 건 비참하다. 한 번이면 충분한 만남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이걸로 만족할래.

  시간은 또 빠르게 흐른다. 마지막 공연에서 우리는 모두 무대 앞으로 나와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한다. “지금까지 포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명 아래는 뜨겁다. 서로 맞잡은 손에 땀이 흐른다. 그래도 놓지 않는다. 이게 우리가 잡는 마지막 손이니까. 우리가 전하는 마지막 인사는 조명이 꺼질 때까지 계속된다. 조명이 꺼진다. 환호, 울음, 웃음, 박수, 노래가 꺼지면 장소가 바뀐다.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었는데도 여전히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서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된다. 술김에, 지금이 아니면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만큼은 괜찮아. 누구도 네 이야기가 오그라든다고 하지 않을 거야. 오늘이라 괜찮아. 묵혀두었던 이야기와 분노와 속상함이 몇 번의 건배로 사그라든다. 상처도 결국 잊히겠지, 모두가 조금씩 서로를 잊을 때쯤엔 추억과 그리움만이 남을 거니까. 하나둘씩, 취해가고, 빈자리가 생기고, 결국 새벽의 합정 거리에 서은과 나만이 남겨진다.

  취기와 흥분, 기쁨이 새벽 거리를 걸으며 사라졌다. 지하철역까지는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데도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여기 예전에 공연했던 클럽이네. 그러네, 진짜 별로였어. 맞아, 너무 좁고 냄새나. 저기는 안 가본 데다. 옆에 우리 공연하기 전에 먹었던 국밥집인데? 아, 그렇구나. 가본 골목이구나. 어색함이 묻어나는 대화는 이내 끊긴다. 어느 순간부터 서은과 나는 어색해졌다. 서은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그때쯤엔 서은에게 일말의 짜증이나 심술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애를 보면 점점 힘이 빠져서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새벽은 추웠다. 술 때문에 오른 열은 너무 쉽게 식어서 우리는 손을 잡았다. 마지막 무대 위에서 그러했듯이, 그냥. 이것도 마지막이니까. 조명이 꺼질 때까지 잡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다. 다행히도 아직 새벽이었고, 하늘은 어두웠다. 그 순간, 거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미안, 손이 차갑지”

  “아냐, 괜찮아”

  나보다 하얗고, 조금 커다란 손. 그 애의 목소리처럼 따뜻한 서은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것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결국 우리도 헤어져야만 한다. 한참을 같이 손을 잡고 같이 걷다가 9번 출구가 보일 때쯤에 내가 슬그머니 손을 빼자 서은이 걸음을 멈췄다.

  “있잖아, 우리는 이렇게 끝나는 거지?”

  “뭐가?”

  “그냥 친구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한 거잖아. 그치?”

  나도 걸음을 멈춘다. 들이마신 공기가 차갑다.

  “내가 뭐를 결정해? 너 아직 술이 덜 깼구나”

  그때 서은의 눈이 슬퍼 보였던 건, 분명 나 때문이다. 내가 또 그 애를 슬프게 만들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고, 거절하는 내 방식이 또 서은에게 상처를 줬다.

  “나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시작과는 다른 결말로 끝날 줄 알았어”

  “모르는 사이로 만나서 친구로 헤어지는 거니까 다른 결말이긴 하지, 아니야?”

  “지금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너는 마지막까지도 장난만 치냐? 어떻게 매사에 장난이야?”

  서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다. 눈을 마주치면 금방이라도 서은이 울 것 같아서 나는 또 도망친다. 그 애를 두고 지하철역으로 걷기 시작한다.

  “마지막까지 모르는 척하는 게 네 선택이야?”

  서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소리친다. 그 애의 비난을 들은 나는 다시 그 애한테 간다. 가서는, 해서는 안될 말을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했다. 우리가 어떤 사이가 될 수 있는데? 서은아, 네가 말해봐. 우리가 지금 하는 게 사랑이야? 너는 사랑이라고 생각해? 이 감정에 우정 외에 어떤 이름이 붙을 수 있어? 쏘아붙인다. 너는 물러나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서은의 반응에 내가 당황한다. 어째선지 서은의 얼굴을 보면 숨이 막힌다. 초라해진 나는 도망쳤다. 그 애를 두고, 지하철로, 더 멀리멀리, 집으로, 누구도 우리 사이를 알 수 없는 내 작은방으로.

  더 이상 드럼을 연주할 일은 없어졌다. 스틱은 전부 버렸다. 학교로 향한다. 이제 연습실도 갈 일이 없다. 진즉에 짐은 전부 가져왔다. 다시 서은을 만날 수 있을까?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우리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구나. 남겨진 무언가를 애써 무시하며 살아간다.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갔다. 학교는 좁지만, 나는 얼마든지 서은을 피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애가 나를 또 배려해 준 걸지도 모른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서은이 휴학을 했고, 서은이 복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졸업을 했다. 그동안 서은에게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으니까. 서은은 3년 전에 번호를 바꾸었다. 고서은입니다, 번호를 바꾸었습니다. 번호를 바꾸고 그 애의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연락처에 보냈을 게 분명한 문자가 우리가 나눈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고작 그렇게 끝날 사이였나, 우리가? 나는 이상하게도 서은이 늘 곁에 머무른다고 느꼈다. 분명, 연락하면 이전의 상처를 뒤로하고 다시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아서 일말의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꿈은 언제나 이 부분에서 끝이 난다. 나는 다시 정리가 덜 된 내 방에서, 침대 위에서 잠을 깬다. 벗겨진 헤드셋에서는 몇 번이고 혼자 흘러나왔을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아직 흐르고 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자우림의 영원히 영원히. 이제는 쌀쌀해진 가을 새벽의 찬 공기 때문에 마른 기침을 몇 번 하고 달력을 본다. 오늘은 10월 26일, 곧 서은의 기일이다. 그 애를 떠올린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냐고 물었지. 뭐가 미안하냐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거.

  사랑해서 말하지 못했던 것들. 사랑하니까 하면 안 됐던 말들. 그런 게 전부 미안하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시선과 너의 눈에 담긴 나를 보던 날들을 뒤로하고 사랑을 모른 척했던 모든 순간이. 나를 부정하고 너의 사랑을 의심했던 날들이 미안해. 사실은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걸 그때도, 지금도 알고 있었어. 싸구려 라벤더 향은 향수 따위가 아니라 그저 너의 향기였다는 것도 알아. 어깨에 기대면 풍겨오던 향기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너의 머리칼, 빳빳한 셔츠의 재질과 맞닿아 있는 새끼손가락.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 그리고 겹쳐지는 손. 아, 조금 더 온기를 느끼고 싶다. 가능하면 더 가까이 맞닿고 싶다. 이어지고 싶고, 겹쳐지고 싶다. 그 모든 마음이 사랑이 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은 미움의 탈을 쓰고 날이 선 말을 날렸다.

  아, 단 하루도 너를 미워한 적이 없다. 울렁이는 마음, 취할 것 같은 향기, 고서은을 이루던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 이제는 전부 잔향으로 남은 것조차 마음 깊이 사랑한다. 모든 거짓 속에서 어쩌면 너를 사랑한다는 인정하기 싫은 진실이 가장 밝게 빛났던 건, 네가 나에게 마음을 돌아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항상,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서은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은아, 사랑해서 미안해. 이제야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해서 미안해.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아서, 이제는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서 미안해.

  언제든 쉽게 닿을 수 있던 말들이, 늘 이어져 있던 마음이 몇 번의 행복과 절망 위에 쓰인 행운인지. 또, 내가 그 행운을 얼마나 쉽게 놓아버렸는지 이제는 안다. 어떠한 말도 너에게 닿을 수 없고, 나에게 묻은 라벤더 향기는 매일 조금씩 사라진다. 속삭임과 사랑의 부속물들은 흩어진다. 기억은 향기보다 쉽게 휘발되어서 내게 남은 향이 이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네가 피웠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한테는 독한 말보로 실버가 너의 향이 맞던가? 아닌데, 서은이한테는 늘 청명하고 달달한 향이 났는데. 서은아, 너무 오래된 첫사랑이 나를 괴롭혀. 사랑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순간들이 나를 붙잡아.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서 자꾸만 되돌아가. 그런데도 정말 슬픈 건 뭔지 아니?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거야. 거리에서 너에게 입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걷는 건 이제 절대로 못한다는 거야.

  조금만 있으면 서은의 생일이었다. 29일에, 그 밤에 그렇게 갑자기 서은을 잃을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다. 누군가가 후배들과 공연을 기획해 보자고, ob 멤버들도 오랜만에 모여서 얼굴 좀 보자고 했으니까, 적절한 핑계를 대며 돌아오는 네 생일에는 꼭 연락해야지, 잘 지냈는지 묻고, 시시한 대화를 나누다가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그에게도 내가 받은 따뜻함을 주고 있는지,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눈을 맞춰주는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쓴맛의 감정들은 접어두고,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꼭 축하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할거야, 나는 너의 사랑을 받으며 내 삶에서 가장 적정한 온도를 유지했던 날들이 정말로 행복했거든. 이제야 내 마음을 알아서 삶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어야지. 다시 한번, 너랑 무대에서 서고 싶다고 해야지. 겨우 다짐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는 게 어딨어.

  너 없이도 네 생일은 돌아와서, 11월 3일에 나는 홀로 남아 초를 켰다. 작은 조각 케이크는 너무 달아서 전부 버렸다. 이어지는 우울한 날들,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삶들. 다시 돌아온 10월에도 여전히 나는 혼자 남아 있다. 29일 밤에, 이태원 골목에는 네가 없어서 거기서 너의 흔적을 찾는 건 두려워서 나는 또다시 방으로 숨었다. 세 번의 이사 끝에도 살아남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악보집과 CD 사이에서 너를 찾아본다. 구겨진 몇 장의 사진들을 꺼내 본다. 11월 3일, 우리의 마지막 정기 공연과 너의 생일이 겹쳤던 날. 사진 속 서은의 미소 때문에 가슴이 아리다. 생일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데,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빌고는 “얘들아, 내가 우리 전부, 앞으로도 오늘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빌었어!”라고 말하던 너. 바보야, 네가 소원을 전부 말해버려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잖아. 너의 솔직함과 비교되는 나의 비겁함 때문에 내가 너무 불행하잖아. 돌아와, 돌아와서 네가 해결해 줘. 과거에 갇혀서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여기서 벗어나게 해줘. 예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손을 내밀어 줘.

  상자에 들어있던 걸 전부 꺼내 침대에 늘어놓는다. 돌이켜보니 행복하지 않았던 날이 없다. 네가 왜 웃는지도 몰랐는데 그냥 네가 웃어서 따라 웃었고, 무대 아래에서 눈물 흘리던 너를 안아주었고, 같이 눈물 흘렸던 날들. 너를 사랑할 수 있었던 날들이 너무 행복했기에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 나를 너로 가득 채워놓고 정작 너는 떠나버려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든 사랑과 초대를 거절해놓고 너를 감히 사랑한다고 말해서 이런 벌을 받는 걸까? 나한테서 사랑을 뺏어가는 벌을. 고백도, 거절도, 사과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벌을. 그래서 내 사랑은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 네가 있을 법한 시점으로, 우리 마음이 이어져있던 순간으로, 누구도 사랑을 말하지 않았지만 사랑인 걸 알고 있던 곳으로. 상자는 바닥을 보인다. 상자에 들어있던 건 모두 눈에 익어버려서 새로울 게 없는데도 낯선 악보가 눈에 띈다. 구겨진 악보를 꺼낸다. 악보에서 익숙한 필체를 발견한다. 분명 서은의 것이다. 아, 이게 정말 우리의 마지막인가 보다. 네가 건네는 마지막 인사인가 보다.

  “D.S. time? 이게 뭐야”

  누군가 악보에서 찾아낸 기호에 다들 관심을 가지고 모였었지. 디에스는 덕성 아니냐, 장난치지 말고 무슨 뜻인지 찾아봐라, 디에스 알 코다는 또 뭐냐. 악보는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면서 사족이 붙고, 농담이 섞였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만의 해석으로 악보를 읽었었다. 여러 가지 추측 중에 맞는 건 하나도 없었고, 그것이 달세뇨라는 건 연습실에 있던 음악책을 세 권 정도 훑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누구 하나 음악 기호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곧 연주할 줄 모르는 법을 모른다는 말은 아니었다. 노래를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어디서 쉬었다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서 끝이 나는지 알았다. 도돌이표 하나에도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다. 나는 계속해서 악보를 넘긴다. 아마 그때 네가 메모를 남겨두었나 보다. ‘디에스는 정말 덕성인가?’를 지나 다섯 번째 장으로 향한다. 여기 마지막 메모가 있다. 별이 세 개 붙은 메모.

  디에스 알 코다, 다시 돌아갔다가 이번에는 코다를 생략하고 넘어가, 마지막으로.

  어쩌면 이게 서은과 나의 마지막이 아닐까. 서은이라면 분명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코다는 생략하고 어서 곡의 마지막으로 향하라고 말하겠지. 끝나지 않는 곡은 없으니까. 이게 서은이 내밀어 주는 마지막 손인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나를 밀어내는 손. 곡의 너머로, 우리가 함께 부르고, 연주하던 곡의 끝으로 밀어내는 손이다. 서은아 내가 이 곡의 끝을 연주할 수 있을까? 드디어 넘어갈 수 있을까? 이 곡의 처음을 떠올린다. 그곳에 여전히 네가 있다. 그리고 이 곡의 마지막에도 네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를 짓는 네가 어서 이 곡을 끝내라고, 곡의 마지막으로 넘어가라고 한다.

  어쩌면 다시는 곡을 연주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특별했던 곡을 이제는 마쳐야겠다. 네가 부르고, 내가 연주하던 우리의 곡이 이렇게 엉망으로 끝나는 것을 부디 이해해 주기를. 네가 잠시 이 곡에 머물렀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곡이 내 삶에서 가장 애틋한 곡이 되었다. 이 곡을 마치고, 또 다른 몇 번의 곡이 내 삶에 찾아오든 찾아오지 않든, 나라는 무대가 끝이나고 조명이 꺼지면, 서은에게 가서 알려주어야겠다. 디에스가 아니라 달세뇨라고,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 이 곡은 여전히 너의 것이라고. 처음 곡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랑했다고. 너를 사랑해서 이번 곡은 조명 없이도 빛이 났고, 박수 소리가 없어도 아름답게 끝이 났다고. 네 메모 옆에 글자를 눌러 담는다. 서은에게, 추신, 디에스 알 피네 (D.S. al Fine).

 

  <제47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수상소감>

  서은은 제가 사랑하는 두 명의 여자를 닮은 인물입니다. 이름을 빌려준 서진과 채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처음 서진에게 소설을 보여주었을 때, 서은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감정이 어색하다고 말하더군요. 서진의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포크 여러분, 저의 청춘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미움에 치우쳐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날들,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들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오롯이 여러분의 것이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가 함께 부르고, 연주했던 곡들에, 그 곡의 모든 순간에 여러분이 있어 이번 곡이 박수 없이도, 관객 없이도 아름답게 피네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애도를 표현한 글이기도 합니다. 작년 10월 29일에 선배들을 떠나보내고, 저는 이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도 표현하지 않지만, 서로 알고 있는, 그래서 너무 쉽게 휘발될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애도는 슬퍼하기만 하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민희 언니의 말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보낸 사랑은 무사히 도착했나요? 제 애도는 잘 보내졌을까요? 우리대학의 작은 밴드 동아리에서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을 추억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며, 우리는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습니다.

  너희가 나의 원더월이라고 말했던 지영이를 떠올립니다. 포크에서 처음 베이스를 배우고, 우리의 락이 영원할 것처럼 연주하고, 다 같이 원더월을 부르며 눈물 흘리던 날들. 소설의 내가 서은을 사랑했듯이, 내가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나는 소설을 썼습니다. 나는 우리의 마지막을 떠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포크였습니다. 그 말이 정말로 마지막이 되는 순간을요. 그리고 나는 송이 언니의 말을 생각합니다. 시작을 위한 마지막일 것을 믿으며. 우리 그렇게 믿으며 마지막 곡을 연주해 볼까요. 슬픔과 후회는 잠시 미뤄두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마지막으로 서은을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 채은에게, 당신을 떠올리며 서은을 그렸습니다. 그러니, 이번 곡이 끝나도 계속 저와 함께해 주세요. 나의 다음 곡도 당신의 것이니까. 그럼 이제 정말 마지막입니다. 나는 이렇게 적습니다. 추신, 디에스 알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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