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전부터 이어진 우리나라 대학박물관은 그 역사가 깊고 수행하는 임무도 다양하다. 그러나 여러 제도적, 사회 구조적 문제로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공립 및 사립박물관의 규모가 나날이 발전하고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대학박물관은 어떻게 회생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박물관 문화의 선구자 대학박물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우리나라 대학박물관은 1928년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학교) 도서관 부설 박물관을 시작으로 긴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광복 후 민족문화 부흥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67년 대학설치기준령에 따라 ‘종합대학 박물관 설치 의무화’를 시행했고 대학박물관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전기를 맞았다.
대학박물관은 고고학 관련 매장문화재 발굴 활동으로 학계 인재 육성과 유물 확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혼란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가의 책무를 대신 이행한 것이다.
1987년 대학설치기준령에서 대학박물관의 설치의무 조항 삭제 이후 대학박물관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법적 근거가 사라지며 위상이 위축되고 예산과 시설, 전문인력 부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1970년대까지 대학박물관의 주 역할은 발굴조사였다. 당시 도굴로 인해 여러 유물이 발견됐고 사립대학의 경영진들을 중심으로 유물 구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 발굴전문기관이 들어서며 대학박물관은 발굴조사에서 우위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2020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한 박물관 897개관 중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소속 박물관은 100개관이다. 박물관은 늘어나는데 대학박물관은 신설은커녕 2007년보다 7개관이나 줄어든 실정이다.
대학박물관은
왜 사람들에게 잊혔나
대학 내에 위치해 일반인들에게 접근성이 불리한 점, 예산 부족으로 특별전 개최 횟수가 국공립 박물관에 비해 적은 점 등으로 인해 외면받고 있다.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이소영 조직홍보국장(이 하 이 국장)은 “대학박물관이 규모 확장은 멈췄지만 각 대학박물관의 소장 유물과 전시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다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 박물관이 아니라 연구기능과 인재양성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저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박물관이 겪는 어려움의 일차적 원인은 정책 부재에 있다. 교육부를 포함해 현재 어떤 부처에서도 대학박물관 관련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현재 대학박물관은 교육부 소속이지만 담당 직원 조차 없어 대학 내에서도 큰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국장은 “협회 차원에서 꾸준히 대학 박물관의 어려움을 전달했고 이에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학박물관 진흥지원사업’을 마련했다”며 “대학의 부속기관인 대학박물관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일이다”고 전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경영난을 겪는 현상도 원인이다. 대학이 위축하며 더불어 부속기관인 대학박물관까지 위협받는 것이다. 특히 대학이 취업준비 기관으로 변모한 현재, 첨단 학문과 거리가 먼 대학박물관이 설 곳이 줄고 있다.
문화콘텐츠 범람시대,
대학박물관의 존재 의미는?
대학박물관은 타 박물관과 달리 박물관으로서의 기본활동 외에도 특수한 임무를 겸한다. 이 국장은 “대학박물관은 박물관 관련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는 중차대한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박물관 운영의 가장 핵심 인력인 학예연구사 또는 관리직 종사자의 대부분이 대학 재학 중 대학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박물관과 인연을 맺는다”고 말했다. 대학박물관은 소속 대학의 관련 학과와 연계해 재학생들에게 연구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 업계에 진출할 수 있다. 전공 공부로 채울 수 없는 실무경험을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국장은 “대학박물관은 학술연구 기능 및 박물관 실무 인재양성 등을 통해 향후 박물관에 대한 요구를 예측하고 그에 필요한 운영시스템을 개발해 보급하는 등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고 전했다.
대학박물관의
재도약을 꿈꾸다
이 국장은 “대학은 이제 교수와 학생들만의 ‘대학’이 아닌 지역민과 함께하는 ‘대학’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바로 ‘대학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박물관에서는 대학 구성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을 겨냥해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림대학교박물관은 2019년 ‘박물관 유물 속 상징’을 주제로 지역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당 프로그램은 박물관뿐 아니라 신청한 학교에서 수업을 제공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여자대학교박물관은 지역 문화재인 태릉·강릉을 주제로 교육 프로그램을 열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사태에 맞춰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했다.
이 국장은 “대학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고 수장하는 기능을 넘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전시, 연구, 교육을 함께하는 기관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