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이란 문학, 역사, 철학을 줄여 부르는 말로 인문학 학문이자 대학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학문이다. 그러나 취업이 어렵다거나 기술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문사철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학생들은 전공하기를 꺼리고, 정부와 대학은 문사철 축소를 원한다. 문사철은 점점 설 곳을 잃으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취업률로 평가받는 문사철
‘문송합니다’, ‘문레기’, ‘문과충’ 등 문과에 대해 도를 넘는 *인터넷 밈이 생겨남과 동시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대학 커뮤니티 내 인문계열 학생이 올린 자조적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입시 학원은 ‘취업이 어려운 문과는 무조건 학교 간판이 중요’와 같은 문장을 광고에 사용한다. 몇몇 학과는 여성 비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그 학과’라고 불리며 여성 혐오의 범주와 겹치기도 한다.
문사철 경시는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에서도 나타난다. ‘문과는 취업 안 돼, 가면 굶어 죽어’라는 말과 함께 문과보다는 이과를 권장하며 문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는다. 실제로 희망하는 진로와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취업률로 인해 이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문사철은 신자유주의가 확산하며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서경대학교 철학과 반성택 교수(이하 반 교수)는 “생산성과 효율성 위주로 평가하는 신자유주의의 위세 앞에서 대학이 교수에게는 논문 생산성과 연구비 수주 확대로, 학과에게는 취업률 통계로 학과의 존속 가치를 결정해 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사철 경시의 뒷배경에는 취업이 있다. 교육통계서비스 및 대학알리미에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졸업생 기준 서울 주요 15개 대학의 인문계열 취업률은 64.6%로 나타났다. 공학계열 취업률이 77.7%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낮은 수치다.
줄어드는 인문계열 학과 및 정원
취업 어려운 학과는 필요가 없나
인문계열의 낮은 취업률은 곧 학과 구조조정으로 직결한다. 2016년, 교육부는 ‘프라임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프라임 사업은 사회와 산업 수요에 맞춰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자금을 지원하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으로, 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의 약자다.
프라임 사업의 배경은 2015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4~2024 대학 전공별 인력 수급전망’으로, 10년간 79만 2,000명의 인력이 노동시장 수요를 초과해 공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교육부는 인력이 비교적 과대 공급될 인문계열의 학과 및 정원을 축소하고, 과소 공급될 이공계열 학과 및 정원을 확충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프라임 사업은 대형 유형인 사회 수요 선도대학과 소형 유형인 창조기반 선도대학으로 나뉜다. 두 유형 모두 인문계열 입학 정원 일부를 이공계열로 이동해야 한다. 대형 유형은 입학 정원의 10% 또는 200명 이상을, 소형 유형은 5% 또는 100명 이상을 이동해야 한다.
대형 유형 선정 대학 중 하나인 숙명여자대학교는 2017년, 프라임 사업 결과를 반영해 △전자공학전공 △소프트웨어융합전공 등 4개의 프라임 관련 학과를 신설했다. 인문계열 159명과 예체능계열 33명을 감축했고, 이 192명의 정원을 이공계열로 이동했다.
여러 대학에서 인문계열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폐지하고 정원을 대폭 축소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 인하대학교는 철학과와 프랑스언어문화학과를 폐지하고, 영어영문학과와 일본언어문화학과의 정원은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문화경영학과와 문화콘텐츠학과는 다음 해 신설할 융복합대학으로 편입하겠다며 문과대학 9개 중 6개의 학과에 변동을 주겠다고 알렸다. 위 구조조정 계획은 결국 교수와 학생의 거센 반발로 철회했다.
인문계열 학과가 구조조정을 겪으며 연구자들은 제대로 된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반 교수는 “인문계열 강사들의 열악한 여건과 이공계열 연구비의 약 1.5% 수준에 그치는 인문계열 지원 연구비 등의 문제가 크다”고 전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인문계열 교수들이 줄어들고, 충원도 전임교수 대신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또는 계약직 전임교수로 이뤄진다. 반 교수는 “교육부는 각종 대학평가에서 중요하게 반영하는 전임교수를 산학협력중점교수나 강의중점교수 등의 저연봉 교수까지 포함해 정의한다”며 “인문학에 뜻이 있는 후학들이 직업으로써의 전망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이 현상은 인문계 학문 후속 세대가 자라날 통로를 차단당한 것이기에 인문학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 위기의 주요인,
대학평가에 묶인 교육기관
대학 입시에서 나타나는 줄 세우기 형태가 대학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대학이 취업의 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 분야를 육성하는 교육기관이라는 본질을 잃은 지 오래다.
2010년경부터 추진한 각종 대학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취업률이다. 문제는 해당 취업률이 정규직 취업률이라는 데 있다. 반 교수는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도입한 비정규직과 계약직은 이공계 기술 직종보다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의 진출 분야에서 더 많이 늘어났다”며 “이는 정규직 취업률만을 반영하는 각종 평가에서 인문계열 구조조정이 더 가속되는 심층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에 목매는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의 가치는 점점 퇴색한다. 인문학 혐오가 계속 이어진다면 이는 실용 교육·전공 교육·기업체 맞춤형 교육 등과 같은 교육의 실패와 맞닿는다. 반 교수는 “교육 수요자를 언어·문학·역사·철학적 눈으로 세상과 사회를 보도록 이끄는 학문 분야인 문사철이 생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에 직면할수록 실용·전문·효율적으로 편향할 것이다”고 말했다.
스스로 사유하는 인문학,
대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문학 위기에 대한 얘기는 국공립대보다 사립대에서 더 크게 들린다. 사립대는 사회 수요를 빠르게 수용하며 교육과정을 구성하기에 인문학이 살아남기 더 힘든 환경이다. 반 교수는 “85%가 넘는 사립대 비중을 낮추는 것이 구조적 위기 요인을 해결할 수 있는 가닥이다”고 말했다. 이어 “사립대 운영자들은 시류에 맞춰 고등교육을 경영한다”며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많은 시민과 대학생에게는 인문학이 시류에 맞춰 가다 불리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학문으로 전락한다”고 설명했다.
전임교수 확보율은 대학평가에서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부가 정의하는 전임교수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반 교수는 “많은 사립대가 교육부 평가를 앞두고 전임교원 확보 지표를 맞추고자 낮은 연봉의 전임교원을 전임교원이라는 이름으로 충원하고 있다”며 “이 편법이 성공할수록 인문학의 위기는 심해질 것이다”고 전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과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교양인을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2014년 5월, 김혜숙 전 한국인문총연합회 대표회장은 ‘변화 속의 대학 인문학’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견실히 인문학 뿌리를 갖출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전략과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인문대학 형태와 교사양성 시스템이 21세기에 맞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밈 :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와 문화 요소로, 인터넷 용어와 비슷한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