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대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다양한 형태의 학습을 통해 사람들이 대학의 학사 학위(이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인 학점은행제는 직장인이나 가정주부 등에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학점은행제가 시행되고 있는 와중에 학점은행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관(이하 학점은행기관)의 부실한 학사관리와 무분별한 과대·허위광고는 학점은행제를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한다. 이에 기사에서는 학점은행제를 둘러싼 논란과 앞으로 학점은행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열린 교육사회로의 출발점,
학점은행제를 시행하다
학점은행제는 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폐쇄적 교육을 개방함으로써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그 이상의 학력을 갖춘 사람이 시간과 장소에 제한받지 않고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제도다. 지난 1995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직속 기구 교육개혁위원회는 열린 교육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교육체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학점은행제를 제안했다. 그리고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을 제정한 뒤 1998년 3월부터 학점은행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습자들은 학점은행제를 통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학위를 취득할 수 있을까?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습자는 학교뿐만 아니라 평생교육시설, 학원, 직업훈련기관 등에서 이수한 과정이나 취득한 자격을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누적된 학점이 △4년제 학위 140학점 △3년제 학위 120학점 △2년제 학위 80학점을 충족했을 때, 학습자는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교육부의 ‘학점은행제 및 독학학위제 학위수여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학위를 취득한 학습자들은 2015년에 잠시 감소했다가 △2016년 58,063명 △2017년 70,162명으로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사람들이
학점은행제를 이용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학점은행제를 통해 만학의 꿈을 향한 희망을 실현하거나, 새로운 전공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바람을 이루고, 중도 포기한 학업에 대한 아쉬움을 충족할 수 있다. 지난해 학점은행제를 이용해 학위를 취득한 A 씨는 “항상 배움과 학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학점은행제를 이용해 그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며 “학점은행제는 가정 형편 상 대학을 다니지 못했거나 학력에 아쉬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도다”고 말했다.
이외에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점도 학점은행제의 장점으로 뽑힌다. 현재 학점은행기관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은 60~80만 원 정도다. 이는 일반대학교 중에서 비교적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학교와 비교했을 때에도 뒤지지 않는 저렴한 금액이다. A 씨는 “약 2년 반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으로 4년제 학위를 받았다”며 “학점은행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보면 학점은행제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학습자가 3년 안에 4년제 학위를 취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얻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실한 학사관리
마련된 대안은 아직 미흡해
하지만 일부 학점은행기관의 부실한 학사관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점은행제 운영 실태점검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학점은행기관 567곳 중 지난 2015년까지 7년간 부실한 학사관리 등으로 적발된 기관은 174곳이다. 이 같은 부실한 학사관리는 대체로 학점은행기관이 해당 기관의 전반적인 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를 고용해 발생한다. 교육부의 ‘학점은행제 질 제고 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대행업체는 학습설계 및 학습자 모집과 수강신청 및 대리수강 등을 대행하고 학점은행기관으로부터 수강료의 일정 금액을 받는다. 이러한 편법적인 학사관리로 인해 학사관리의 질뿐만 아니라 학점은행제의 질도 저하된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지난 2016년 9월부터 ‘학점은행제 알리미(학점은행제 정보공시통합시스템)’를 개통했다. 이는 학점은행기관이 학습자에게 8개 항목과 17개 정보를 통합해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8개 항목에는 △기관 운영규칙·시설 △학습비 등 회계 △기관 발전계획과 특성화계획 △교육 여건과 기관운영 등이 포함돼 있다. 교육부 홍민식 당시 평생직업교육국장은 “학점은행제 정보공시통합시스템의 개통은 학습자의 알 권리를 신장시키고 기관 간의 자발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경기도의 한 대학교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의 감사에 대비해 표면상으로만 운영방식을 바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는 대학본부가 아닌 해당 대학이 고용한 위탁업체가 학부 홍보부터 수강생 모집, 학부교육 운영과 관리 등 모든 제반 사항을 책임진 것이다. 이에 민주시민교육연구실 김태준 선임연구위원(이하 김 연구위원)은 “현재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감사와 평가를 거쳐 학점은행기관을 관리하고 있지만, 이를 진행하는 조직이 부족해 부실한 학사관리를 엄격히 제재하기 어렵다”며 “관리 조직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해당 조직의 인력을 늘리거나 지역에 있는 학점은행기관은 해당 지역에서 맡아 학점은행기관의 학사관리를 규제·관리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과대·허위광고
대학을 사칭하는 경우도 있어
학점은행기관의 과도한 허위광고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 2016년, 학점은행제기관인 국민대학교(이하 국민대) 평생교육원은 신설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과정을 소개하면서 ‘수능 없이 입학할 수 있다’, ‘비싼 대학 등록금도 모자라 실무능력을 키우기 위해 학원까지 다니냐’ 등의 과장된 문구를 사용했다. 이에 해당 광고를 본 학생들은 SNS에서 ‘학위 장사에 불과하다’, ‘말도 안 되는 돈 장사를 하기 전에 광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국민대 평생교육원은 “이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해당 사안을 총장에게 허가받았다”고 밝혔으며, 국민대 측은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또한 학점은행기관이 수강생을 모집하는 데 있어 대학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점은행기관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학부’, ‘정시’, ‘수시’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포털 사이트에 있는 학점은행기관의 광고를 보면, 학점은행기관은 정시, 수시 등의 대입 관련 단어뿐만 아니라 ‘수능내신 미반영’, ‘교수진 실습지도’, ‘100% 면접 선발’ 등 입시 설명 문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지난해 1월,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는 “입시 설명 문구를 사용한 학점은행기관을 다 막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될뿐더러 사실 이 같은 행위는 법으로 검거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학점은행기관이 금지된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키워드를 검색하며 이를 주의 깊게 살펴 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신문이 이를 기사로 다루자, 교육부는 ‘ “4년제 학사학위 대학 평생교육원의 거짓말” 보도 관련’ 설명자료에서 “학점은행기관이 일반대학처럼 홍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점은행기관의 학습자 모집이 집중되는 2월과 8월 등에 학점은행기관들의 거짓·과대홍보를 집중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며 “학점은행기관의 거짓·과대홍보에 대해서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과대·허위광고를 제재하는 데 중앙의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며 “학점은행기관 자체에서 홍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 교육사회의 중심에 선
학점은행제 돼야
학점은행제는 개인적 사정으로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이들에게 학위를 향한 발판이 돼 주는 제도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학점은행제를 이용해 학위를 취득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학점은행기관의 무분별한 과대·허위광고나 부실한 학사관리 등으로 인해 학점은행기관의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현재 학점은행제는 학점을 부여하는 것과 과도하게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 등에만 치중돼 있다”며 “이는 학습 과정에서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고 역량을 발굴해 열린 교육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학점은행제 본래의 취지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학점은행제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