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굿 닥터>는 소아외과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박시온(주원 분)은 일반 의사와 달리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자폐성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낮아 일상적인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남들이 보기에 이상할 정도의 반복적인 상동 행동을 한다. 이와 더불어 평균 이하의 지능과 낮은 인지 능력으로 또래들보다 좋은 직업을 가질 기회가 적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도 감당하기 힘든 소아외과 전문의로 등장하고 있다. 주인공은 의학 전공서적을 줄줄 외우고, 전문지식과 뛰어난 공간지각 능력으로 동료 의사들이 해내지 못하는 어려운 수술도 척척해내는 능력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굿 닥터로 근무하고 있다.
우뇌의 극단적 발달로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여
지금은 오래된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레인 맨(Rain Man)>도 자폐성 장애를 가진 실제 인물인 킴픽(Kim Peek)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레이몬드(Dustin Hoffman 분)는 우편 번호부를 줄줄 외우고, 수년간의 날짜와 요일을 쉽게 기억하고, 숫자를 암기하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에서 돈을 따는 능력을 보여줬다.
지능이 정상이거나 그 이상을 보이는 고기능 자폐(high functioning autism)와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진 일부 자폐성 장애인 중에 특정 영역에서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혹은 석학적 능력(savant ability)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1978년에 미국 자폐증 협회를 창립한 버나드 림랜드(Bernard Rimland)가 자폐적 석학(autistic savant)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특수교육학 용어 사전(국립특수교육원, 2009)에서는 서번트 증후군을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특정 영역에서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후군이다. 이들의 지능은 대개 평균 내지 평균 이하이나 음악 연주, 미술 표현, 달력 계산, 암기, 암산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비상한 재능을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번트 증후군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좌뇌의 발달 저조로 인한 보상에 따른 우뇌의 극단적인 발달에 의해 일어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전적 영향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영향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요즈음 연구는 이들의 능력을 자폐성 장애의 특징 중의 하나인 세부 사항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과 연결하여 반복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으로 동기가 높아져 특출한 재능을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역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보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통 사람들도 일상의 모든 일에는 무관심하고 종일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면 그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진행 중인 연구의 하나의 가설이지 검증되지 않은 연구 결과다. 이들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서번트 증후군의 대표적인 특징은 위 사례에서 보는 것과 같이 특정 영역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들이 보이는 천재적인 능력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폐성 장애를 비롯해 발달장애 학생들이다. 그러면 이들에게는 장애 정도에 맞는 의료적 서비스와 특수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서번트 증후군의 부모들은 이들이 보이는 평균 이상의 재능을 보고 장애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거나 나중에 가서야 장애로 받아들이곤 하는데 이는 아이들의 교육 적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사막에서 이들이 보이는 재능의 신기루를 보고 쫓는 것이다. 서번트 증후군 학생들을 현명하게 돕기 위해서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들의 특출한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번트 증후군의 출현율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폐성 장애 출현율의 약 1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자폐성 장애의 출현율도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일반적으로 1,000명당 1명으로 보고되므로 서번트 증후군의 출현율은 10,000명당 1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서번트 증후군 중 약 절반 정도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고, 지적장애를 포함한 다른 장애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받아들이고 재능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
필자가 특수교육 현장에서 직접 접한 서번트 증후군의 사례는 달력이나 지하철 노선도를 줄줄 외우는 뛰어난 암기력을 보이는 학생들과 음악이나 특정한 영역에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이들 중 특이한 사례를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첫 번째 사례는 특수학교 중학부에 재학 중인 자폐성 장애 여학생으로 피아노 연주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학생이다. 이 학생은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학력 수준으로 모든 과목에서 또래들보다 지체돼 있었고 악보를 전혀 읽지 못했다. 그러나 웬만한 클래식 곡을 연주할 수 있었고 놀라운 것은 절대 음감이 있어 처음 듣는 곡도 피아노 건반을 몇 번 두드리고 나서 바로 연주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 학생은 전국 장애인 학생 음악대회에 출전해 여러 번 수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는 필자가 안산에 소재한 특수학교에 근무했을 때 만난 학생이다. 이 학생은 필자가 만난 서번트 증후군 중에서 가장 독특한 특성을 지닌 학생으로 한자를 쓰는 재능을 가진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으로 언어, 인지 능력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도 되지 않았고 자폐성 장애로 인해 대인관계를 비롯해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었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면 떼를 쓰는 문제행동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그 당시 천자문을 거의 외우고 수업시간에 옛날 유식한 어른들이나 쓸 법한 한자를 섞어가며 노트 필기를 했다. 그리고 필기구는 항상 사인펜만을 사용하는 집착행동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