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기 어려운 행정용어, 누구를 위한 말인가
알아듣기 어려운 행정용어, 누구를 위한 말인가
  • 강소현 기자
  • 승인 2014.10.15 0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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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국가가 가까워지기 위해 용어부터 개선돼야

  우리나라 행정기관의 공문서에는 한자어, 외국어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어려운 한자어, 외국어가 포함된 행정용어는 일반인들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행정용어 사용 실태와 행정용어를 순화하려는 노력을 알아봤다.


  척사대회?
  한자어, 외국어 행정용어 넘쳐나

  ‘척사대회’의 뜻을 아는가? 척사란 ‘던질 척(擲)’ ‘윷 사(柶)’로 윷놀이를 의미하는 한자어이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한 마을이 ‘척사대회를 개최합니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걸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행사임에도 ‘윷놀이’라는 쉬운 용어 대신 ‘척사’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썼기 때문이다.

  정부 보도자료 또한 한글이 아닌 외국어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 Pay-go, Flagship, RFID, Bottom-up, Post-2014, spillback, Spin-off, High-Efficiency, Human-ware, Sales & lease back, VOS(Voice of Staff) 등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낱말을 그대로 영문 글자로 적은 사례도 많다.

  행정기관들이 쉬운 우리말을 놔두고 어려운 한자어와 외국어를 쓰는 이유는 소속기관의 문서 작성 관습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순우리말보다는 오랫동안 기관에서 쓰인 한자어가 더 익숙하다”고 말했다. 어려운 행정용어는 행정기관 공무원들끼리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들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소통 부재로 이어지는 어려운 행정용어
  용어 순화 위한 움직임 나타나

  국민들에게 가까워야 할 행정기관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함에 따라 국민과 국가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려운 한자어를 많이 사용해 정책을 설명함으로써 정책 적용 대상이 되는 일반인들은 정작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은 결국 국가와 국민사이에 소통 부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행정용어 순화를 추진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행정용어가 어려워 정부정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며 “정책을 이해하지 못한 국민들에게 정책을 다시 홍보함으로써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려운 행정용어 사용으로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같은 문제에 놓인 많은 나라에서 행정용어 순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에는 쉬운영어쓰기운동을 통해 공문서에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국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우리말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행정용어 순화를 진행하고 있다. 행정기관들은 2012년은 874개, 2013년에는 322개의 행정용어를 골라 순화하는 등 행정용어 순화정책을 시행해 왔다. 일본식 용어부터 어려운 한자어, 무분별한 외래어를 순화어로 선정해 바꿔왔으며 적절한 표현이 없는 외래어에 대해서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행정용어 순화도 추진되고 있다. ‘한글과 컴퓨터’는 ‘빠른 교정’ 프로그램을 통해 공문서 작성 시 부적절한 행정용어를 자동으로 교정하고 있다.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 개선 이뤄져야

  매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행정 순화어를 심의하고 있으며 행정 순화어를 사용할 것을 공공기관에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기관 내에서는 잘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행정기관에서 작성한 공문서에서는 여전히 순화 대상 용어의 86.5%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행정용어 순화가 이뤄지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로는 ‘국어책임관제’를 꼽을 수 있다. 국어책임관제란 각 기관에 ‘국어책임관’을 지정해 공문서에 쓰이는 행정용어를 국민들이 알기 쉽게 바꾸고 공공기관의 언어 환경을 개선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2005년부터 국어책임관제를 도입해 공공기관 내에서 행정 순화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이 국어책임관을 겸임하고 있어 이는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 또한 국어책임관은 국어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도 현저히 떨어져 허울뿐인 감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어정책원(이하 국어정책원)은 “국어책임관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어책임관제를 진행하는 지자체 중 우수기관을 선정하고 있다”며 “이전에 비해 국어책임관제에 대한 인식도가 높아졌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자어 및 외래어로 쓰인 행정용어를 대신한 순우리말 사용이 오히려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행정용어를 반드시 순우리말로 바꾸기보다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회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청북도는 ‘랜드마크’를 ‘마루지’로, ‘모니터’를 ‘정보검색’, ‘프로젝트’를 ‘일감’ 등으로 순화하여 사용할 것을 권고했으나 주민들은 이미 익숙해진 용어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냐며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국어정책원은 “50대까지는 외래어나 사회 용어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50대 이상의 노인들은 외래어나 사회 용어에 대해 어려움을 느낀다”며 “당장은 순화어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연령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행정용어를 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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