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말
제주어,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말
  • 강영봉 제주어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23.04.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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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인간의 창의성과 세계관, 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제주어는 언어 체계가 뚜렷하고 독특해 어휘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라지는 언어에 처할 위기를 맞고 있다. “언어는 총체적인 문화의 DNA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유산인 제주어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주인의 정신이 담긴
  제주어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전래적인 언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예전부터 써온 말이므로 제주어 속에는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들어 있기 마련이라는 뜻과도 같다.

  제주도 들판은 4월 초부터 한동안 고사리 꺾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를 제주 사람들은 “봄 나믄 고사리 거끄는 사름으로 뭣 닮아”라 표현한다. 표준어로 바꾸면 ‘봄 나면 고사리 꺾는 사람으로 뭣 같아’가 된다. 고사리 꺾는 사람으로 장관을 이룬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는 ‘봄 나다’에 있다. 표준어에서는 [봄(이)+시작]을 ‘봄(이)+오다, 봄(이)+되다’ 구성으로 표현한다. <표준국어대사전> ‘봄’의 예문인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봄(이)+오다, 봄(이)+되다’ 보다는 ‘봄(이)+나다’를 즐겨 쓴다. 사용 빈도로 본다면 ‘봄(이) 나다 > 봄(이) 되다 > 봄(이) 오다’ 순이다. 제주 사람들이 [봄+시작]을 ‘봄(이)+나다’로 표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겨울’과 관련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겨울(이)+시작]을 제주 사람들은 ‘저실+들다’로 말한다.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들다’ 대신에 ‘틀다’가 쓰이는데 이는 ‘겨울’의 옛말이 ‘ㅇㅇㅇ’이기 때문이다. ‘ ’의 끝소리 ‘ᄒ’과 ‘들다’의 첫소리 ‘ᄃ’이 결합하여 ‘ᄐ’으로 변한 ‘틀다’를 써서 “저실 틀어 가민 솔입 걷으레도 가곡”처럼 말한다. ‘겨울 들어 가면 (땔감을 얻기 위해) 솔가리 걷으러도 가고’에서 본 바 [겨울(이)+시작]을 ‘저실(ᄒ)+들다’라 표현한다. ‘겨울’이 ‘드는[入]’ 것이라고 하면 ‘봄’은 그 반대로 ‘나는[出,生]’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봄(이)+시작]을 ‘봄(이) 되다, 봄(이) 오다’를 즐겨 쓰는 사람들에게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들어간 ‘봄(이) 나다’라는 표현은 낯설기 마련이다. 낯서니 이해하기가 어렵고, 결국은 “제주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어렵다”라 하는 것이다.

 

  바람과 물살이
  가른 언어

  ‘제주어가 어렵다’는 말은 540여 년 전부터 있었다. 15세기 전국의 지리지라 할 수 있는 <동국여지승람> 38권 ‘제주목 풍속’에 “제주 토박이가 쓰는 말은 어렵다(俚語艱澁, 이어간삽)”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이어간삽’이 총 50권의 <동국여지승람> 가운데 언어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에 15세기 당시에도 제주 사람들의 언어가 특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어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어에 관한 설명이 있는 동국여지승람
제주어에 관한 설명이 있는 동국여지승람<출처/연합뉴스>

  우선은 ‘제주바당’이라고 부르는 제주해협에 기인한다. 제주바당은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 바다로, 물살이 무척 거친 편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배비장전>에서 제주바당은, “추자도 지나니 집채 같은 큰 물결이 바위를 쾅쾅 부수어 내며 바람 따라 여기서도 우르릉 꽐꽐 저기서도 왈랑왈랑 창나무 꺾어져 용총줄 마룻대 동강 고물이 번 듯 이물로 숙어지고 이물이 번 듯 고물로 기울어져 덤벙뛰뚱 조리질하니 무인절도 난파선이 가이없”는 곳이다. 육지를 떠난 배는 추자도까지 무난하게 도착하나 추자도를 넘어 ‘제주바당’에 이르면 거친 바다가 제주로의 항해를 가로막는다. ‘바람 기다리는 섬’인 추자도에 정박하면서 북풍이 불기를,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배를 내어놓는 것이다.

  제주바당의 거친 파도를 ‘조리질’이라 한 데서 제주바당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다. 배가 무척 일렁거리며 조리질하니 사람들은 제주바당을 건너는 일이 두렵고, 사람들이 제주도로 들어오지 못하니 그들이 쓰는 새로운 말 또한 들어올 수 없다. 새말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예전에 쓰던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주어에 옛말
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계림유사>의 “복왈필”에서 고려 사람들은 전복을 ‘빗’이라 함을 알 수 있는데, 제주어 △‘빗창(전복을 떼어내는 데 쓰는 쇠로 만든 도구)’ △‘암핏(전복의 암컷)’ △‘수핏(전복의 수컷)’의 빗이 그런 예이다. 전복이 새로운 말이라고 한다면 빗은 옛말이다. 전복이라는 새 말을 쓰는 사람은 빗이라는 옛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어려운 것이다.

  어려워진 또 다른 이유는 쿠로시오해류의 영향이다. 쿠로시오해류는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발생해서 서해로, 제주도와 남해안 사이와 일본 열도 남쪽으로 흐른다. 서해로 들어가는 물살은 대륙으로 물길이 막혀 물발이 느리고, 일본 열도 남쪽으로 흐르는 해류는 장애물이 없으니 재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제주도와 남해안 사이를 통과하는 해류는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하므로 물살이 셀 수밖에 없다. 거센 물살이 배의 항해를 가로막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제주어는 ‘바람과 물살이 가른 언어’라 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제주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어렵다’는 말로 귀착된다.

지난 3월 제주어연구소가 발행한 ‛제주어’ 제6호<출처/제주어연구소>

 

  지역에 따른
  언어의 다양성

  제주어는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제주도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동도현과 서도현 두 행정 체제였다. 고려 충렬왕 26년인 1300년부터 조선 태종 16년인 1416년까지 116년간 이어진 두 행정 체제가 제주도의 생활 영역을 동서로 나누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체동물인 ‘문어’를 동도현 사람들은 ‘문게’, 서도현 사람들은 ‘물꾸럭’ 또는 ‘무꾸럭’이라 해 차이를 보인다. 어느 어휘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고향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시대 제주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인 삼현 체제가 1416년부터 1914년 행정 개편까지 498년 동안 이어졌다. 잘 알려진 ‘돌하르방’도 어느 현에 속한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부르는 이름이 각각 ‘우석목, 벅수머리, 무석목’ 등으로 다르고, 그 크기도 ‘우석목(181cm) > 벅수머리(141cm) > 무석목(136cm)’ 순으로 현의 면적과 비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곤충인 ‘잠자리’는 제주도 전역에서 ‘물자리, 물잴, 밤부리, 밥주리, 밥주어리, 산태, 안진방석, 오중에, 왕놈, 웅잴, 잘, 한다바리’ 등 12개 어휘로 나타난다.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어휘로, 이는 지역에 따른 언어의 다양성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예의 하나다.

2008년 국립국어원의 제주 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보고서
2008년 국립국어원의 제주 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보고서<출처/동아일보>

 

  제주어 소멸은
  제주 정신의 쇠퇴

  제주어는 언어 환경이 달라지면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소멸의 안타까움은 2010년 유네스코가 제주어를 소멸 위기의 언어로 분류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제주어는 아주 소중한 언어이니 잘 보전해주기를 바란다는 소망인 동시에 경고인 셈이다.

  사실 언어는 알게 모르게 변화해 소멸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소멸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 전달의 한 도구라는 점, 눈에 보이지 않아 관심이 없다는 점,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으니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제주어’는 문화재와도 같은 것으로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 말’임을 인식해 관심을 갖고 자주 쓰는 일이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 이는 제주어만이 아니라, 국어는 물론이고 전국의 지역어에 모두 해당하는 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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