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학술문예상 수필 우수작
제46회 학술문예상 수필 우수작
  • 변수정(글로벌융합대학 1)
  • 승인 2022.11.21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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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너머

  무지개 너머, 내가 쓴 동화책의 제목이다. 어디에 출간되지도 않았고 내용은 작가 마음대로에 그림도 크레파스로 색지에 그려 전체적으로 엉성한, 전 세계에서 독자가 나뿐인 나만의 베스트셀러. 내 베스트셀러의 유일한 단점은 그 누구도 결말을 모른다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독자들은 당연히 기억 못 할 테니까 제외하더라도 작가인 나조차 이 책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내가 기억하는 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토끼, 강아지, 하늘다람쥐, 고양이가 즐겁게 놀고 있던 어느 날, 토끼가 비가 온 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고 묻는다. “얘들아, 무지개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무지개 너머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궁금해진 친구들은 결국 다 같이 무지개 너머, 무지개의 끝을 찾아 떠난다. 아마도 이 책을 쓸 당시에 나는 무지개의 끝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해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무지개 너머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무지개의 끝에서 무엇을 봤을까?

  내가 그 책의 결말을 잊어버린 이유는 아마도 내가 줄곧 나를 부정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의 순간들을 잃어버린 것 같다. 잊히지 않아서 나를 괴롭히던 기억들을 잊으려고 노력하니 다른 모든 순간들까지 점점 사라져서 시간의 선이 아니라 하나의 점으로만 남았다. 나는 행복한 기억들로 과거의 불행을 수정하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람의 인생이 운동장이라면, 그 운동장에 비가 오고 해가 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나는 내 운동장에 비가 오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한 번 비가 내리고 나면 그 질척거리는 땅이 마르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줄곧 나를 괴롭게 했다. 내 땅은 영영 마르지 않을 것만 같았고, 나의 땅에 생긴 웅덩이는 감춰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차갑고 시린 나의 웅덩이들은 사소하고 큰 우울과 자기혐오가 되어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하루가 지나는 것과 해가 뜨는 것을 두려워하며 웅덩이를 감추기에 급급했고 누군가 가려둔 내 웅덩이를 들춰 볼까 봐, 마르지 않은 내 땅에 뛰어 들어와 나를 흔들어 놓을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렇게 내 삶에 뛰어든 사람들이 나를 살게 했다.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걸어갈 힘을 주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 말은 정답이지만 오답이다. 더 세세한 풀이를 해야 하는 반쪽짜리 답이다.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를 버티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게는 사랑이었다. 플라톤의 ‘반쪽의 이야기’를 아는가? 플라톤은 향연에서 태초에 인간은 두 명의 몸이 합쳐져 하나의 형태를 지녔다고 말한다. 완벽한 형태의 인간을 두려워한 신이 인간을 두 명으로 쪼갰고 나눠진 그들은 서로의 반쪽을 찾아 영원을 헤매게 되었다고 한다. 반쪽을 찾고 나서야 인간은 비로소 완전한 하나가 되고 플라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랑은 아름답다. 사람과 사랑의 발음이 비슷하고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운명처럼 만나게 된 사람들이 내 인생에 침범하고 나를 범람하게 했으며 웅덩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도왔다. 물론 기억 속에 그 자리에 웅덩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남아있다. 비가 오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여전히 나의 땅에는 비가 오고 웅덩이가 생긴다. 그러나 그 웅덩이 또한 곧 사라질 거라는 걸 배웠다.

  그들이 가르쳐줬다. 나를 다정하게 만들고, 웃게 하고, 사랑을 알려주고, 사랑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이들. 그들이 나의 땅을 단단히 굳게 만들었다.

  이 글을 통해 그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떠올리기만 해도 당신들의 이름은 가로등처럼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들 덕분에 올해 가장 잔인하고 지독하게 길었던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었다. 올해 봄,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고 정체성을 깨달았다. 나의 여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기숙사에서 살았던 나를 위해 2시간 넘는 거리를 매일 찾아왔던 나의 반쪽. 플라톤의 말은 사실일 거다. 사랑은 사람을 완전하게 만든다. 나의 반쪽이 나를 채워줬다. 많은 것이 너와 함께 하면서 바뀌었다. 평생을 구로구에서만 살았던 내게 도봉구는 거리의 가로수 한 그루, 지나가는 행인 한명마저 낯설었다. 몸은 뜨거운데 이상하게 마음이 시렸다. 그렇게 한여름이 한겨울 같았던 도봉구에서의 날들에 네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나의 핵심 기억이자 가장 상처받은 유년 시절 또한 너로부터 위로받았다. 채은이는 내게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유년 시절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 시간은 영원히 상처로 남는다고, 다만 부모가 아닌 다른 이와의 재양육, 친구라던가 연인과의 시간을 통해 그 시절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한 그날, 채은이는 나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나도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앞으로 받게 될 차별들로부터 너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숨기는 게 당연한 일이 된 너에게, 나에게 너는 당연하지 않고, 숨기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마도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너로 인해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여름, 나는 퀴어 퍼레이드에 갔다. 그렇게 많은 혐오가 내 피부에 와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혐오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왔고, 추웠고, 혐오 세력의 목소리는 컸고, 나는 즐거우면서 슬펐다. 너와 나를 제외한 세상은 이런 느낌이구나, 사랑 밖은 혐오로 가득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돌아와서도 며칠 내내 그들의 혐오 어린 시선을 떠올렸다. 부모님도 떠올랐다. 나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드는 친척들과 나를 표면적으로만 아는 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커밍아웃한 이들을 떠올렸다. 나의 친구들, 나와 함께 울어주고 내가 어떤 존재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준 이들. 아직도 서진이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네가 여자든 남자든 이성애자든 레즈든 뭐든! 이제 나한테는 그냥 네가 너무 소중해 그래서 우리는 네가 신경 쓰여.” 기꺼이 나를 위해 시간을 써주고 함께 고민해 준 나의 소중한 친구들.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이들. 어쩌면 혐오는 가장 나약한 행위일 것이다. 내가 받은 숭고한 사랑에 비하면, 혐오는 무엇도 바꾸지 못한다. 여전히 나는 여자가 좋다. 네가 좋다. 페미니스트로 살고 싶다. 하나의 수식어에 만 개의 혐오가 따라온다고 해도 내 수식어를 버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혐오와 사랑 어딘가에서 올해 여름은 끝이 났다.

  가을의 끝자락인 오늘 무지개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무지개는 아름다웠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어린 나는 무지개 너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썼던 그 책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토끼와 강아지, 고양이, 하늘다람쥐는 무지개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요. 강아지가 말했습니다. “이게 뭐야! 무지개의 끝에 아무것도 없잖아.” 토끼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토끼는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가리켰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무지개를 찾은 거야. 더 이상 하늘에서 무지개를 찾거나 물 고인 웅덩이에서 찾지 않아도 돼! 우리가 함께한 기억, 기억을 걷는 시간 속에서는 언제나
무지개가 있을 테니까!” 그래요, 친구들은 영원한 무지개를 찾았습니다. 비 온 뒤에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그들은 그들의 시간 속에서 영원한 무지개가 뜨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지개 너머에는 또 다른 무지개가 있었던 거예요.

  내 삶은 어릴 적부터 줄곧 무지개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나 걷고 싶지 않아 피하고 잊으려고 했던 모든 길들이 돌고 돌아 결국은 무지개로 향하는 길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무지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무지개를 찾으러 떠날 필요가 없다. 내 마음에서 비가 오고 웅덩이가 생기고 해가 뜨고 땅이 굳고 무지개가 뜨니까. 무지개 너머에는 솜사탕 구름도, 금은보화도, 공주님도 없다. 그곳에는 오직 지나온 길과 걸어갈 길만 있으며 나는 이제 내가 걸어온 길에 뜬 무지개가 보인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가끔 뒤를 돌아보며 걸어온 길.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새로운 내일의 나도 그저 걸어갈 뿐이다. 무지개 너머로.

 

  <제46회 학술문예상 수필 우수작 수상소감>

  아직 서툰 제가 쓴 글이 상을 받고 소감문까지 쓰게 된 상황이 믿기지 않습니다. 상을 받고 나서 상을 주신 이유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이 상은 학우들과 공동 수상이 아닐까 결론을 내렸어요. 어쩌면 오만한 이야기이겠지만 소수자의 이야기로 가득 찬 글이 뽑힌 것은 저와 마찬가지로 어떤 형태든지 사랑을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학우들에게 상을 통해 제 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내 글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제 글은 개인적인 고백과 시시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제 이름을 걸고, 심지어는 제 여자친구의 이름도 적은 이 글을 신문에 기재해도 될 지 걱정했지만 답답한 마음을 글에서나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제 글은 첫 번째 의미를 가진 것 같아요. 고백할 용기. 제 글을 읽으신 여러분께 벽장 밖은 시원한 여름밤 같다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더워서 숨이 막히고 물 냄새가 나는 여름 공기를 좋아합니다.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들마저 여름밤은 좋아하는 걸 보면 그 밤에 더위를 견디고 온종일 물속에 있는 기분을 참아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밍아웃도 그런 것 같아요.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대학은 여름밤에도 안전한 곳이며 벽장에서 나왔을 때 함께 걸어줄 이들이 많은 곳입니다. 한 번쯤은 여름밤의 시원한 공기를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중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노랫말처럼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일은 언제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일이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해요. 사랑도, 여러분이 좋아하는 모든 일도, 심장이 뛰는 모든 것이 그러해요. 남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해도 내 운명처럼 느껴진다면 그냥 합시다.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춰요 우리. 뒤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오고, 춤을 췄던 그 자리에 무지개가 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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