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말하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말하다
  • 정현진 기자
  • 승인 2020.05.2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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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 위한 압류면제 조항 입법 난항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 중인 이집트 유물,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 조각의 공통점을 아는가? 모두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예술품이지만 원래 만들어졌던 곳이 아닌 먼 타국에 있다는 점이다. 반출 문화재를 원소유국이 다시 가져오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문화재의 소유권에 대한 견해 차이와 함께 국가 간 외교적 이해관계까지 얽혀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문화재 소유권에 대한
  문화재 원산국과 시장국의 입장 차이 커

  해외 반출 문화재의 반환은 단순한 물건의 이동이 아니다. 가치를 해석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바탕에 있다. 문화재를 인류 전체의 국제적 유산으로 볼 것인지, 문화재가 만들어진 해당 지역과 민족의 소유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스위스 출신 법학자 존 헨리 메리만이 약탈 유산에 대해 '문화 국제주의'와 '문화 민족주의'로 나눈 것이 대표적이다.

  문화 국제주의는 문화재가 특정 국가나 민족에 속하지 않고 인류 역사 속 결과물이므로 문화재의 위치가 아니라 보존과 감상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대부분 과거 제국주의 서구 열강이었던 *문화재 시장국이 보이는 견해다.

  문화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쪽에서는 이를 비판한다. 문화재는 해당 국가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므로 **문화재 원산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문화 국제주의의 논리는 고대 미술을 서구 역사의 일부로 하기 위한 식민 담론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약탈당했다 영구대여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
  미술사와 고고학은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 역사와 맥을 함께 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접하는 미술품과 유물의 가치 연구가 온전히 가치 중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에 들어서 역사 서술이 기득권의 권력을 바탕으로 해왔다는 점을 비판한 수정주의 연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문화재 시장국은 문화재 원산국의 많은 문화재를 약탈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도 약탈, 도난의 형태로 다수 반출됐는데 그중 하나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던 외규장각 도서다. 2011년 영구대여 형식으로 전권 반환돼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당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의 정체성에 속하며 이는 보편적 세계 문화재가 아니다"고 말했다. 문화재 시장국의 대표가 문화재는 세계인의 유산이라는 문화 국제주의적 입장에 전면 반박한 것이다.

  이처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사례도 있지만, 해외호 반출된 수많은 문화재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이나 개항 시기 서구 열강에 의해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다.

2011년 4월 14일,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 75권이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2011년 4월 14일,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 75권이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출처/경인일보>

 

  반출 경로가 합법적인 경우
  적극적 반환 요구 어려워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은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직지는 1377년 고려 흥덕사에서 백운경한이 쓴 책을 금속활자로 제작한 것으로, 행방이 묘연하다가 1886년 초대 주한 공사였던 프랑스의 콜랭 드 플랑시가 길거리에서 구입한 후 1911년 파리 경매장을 거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 동양 문헌실에 보관됐다. 이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도서와 함께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직지가 우리나라에 전시됐던 적은 없다. 프랑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고서적 반환 논의가 있었으나 프랑스 내 반대로 인해 돌려받지 못했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가 담긴 안견의 대표작 몽유도원도는 1955년부터 일본 덴리 대학 중앙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일본으로 넘어간 역사적 배경에 관한 기록이 없어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반환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안견의 진작으로 회화사ㆍ서예사적으로 가치가 큰 작품이다. 우리나라 가장 최근의 전시는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당시 덴리 대학은 앞으로의 대여 여부와 관련해 "더 이상의 대여는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2009년 9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박물관 100주년 기념전'에서 몽유도원도가 전시됐다.
2009년 9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박물관 100주년 기념전'에서 몽유도원도가 전시됐다. <출처/매일경제>

 

  대여조차 어려운 우리 문화재
  압류면제 조항 없어 대여 꺼려

  외규장각 도서와 같이 약탈이나 도난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원산국에 돌려줄 도덕적 근거가 명확하므로 반환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구매 등의 합법적인 방식으로 반출됐다면 우리나라가 반환을 요구할 명분이 부족하다. 이 경우 대여해 가져오는 것이 최선이지만 쉽지 않다.

  우리나라 현행법에 압류면제 조항이 명시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전시 후 압류하거나 몰수할 가능성으로 인해 대여를 꺼리기 때문이다. 또 선례가 생길 시 다른 해외 소재 문화재도 대여하거나 반환할 명분이 생겨 그 책임을 피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직지의 경우 빌려서라도 전시하자는 '선전시 후반환'을 주장하는 측과 소유권을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선반환 후전시'를 주장하는 측이 대립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한시적 압류면제법' 발의를 위해 두 번의 공청회를 거쳤으나 반대 여론에 의해 법안 발의가 무산됐다.

  서경대학교 공공인적자원학부 성봉근 교수(이하 성 교수)는 "소유권에 얽매이다가는 문화재가 영영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자주 전시해 후손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 소유권을 되찾는 투 트랙 방식이 해결책이다"고 말했다.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기억하고
  반환받기 위한 노력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 반환에  복잡하게 얽힌 법ㆍ정치ㆍ외교적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렵다.

  법적 측면에서는 압류면제 조항의 입법에 대해 각 입장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찬성과 반대 여론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주시는 직지의 국내 전시를 위해 압류면제법을 입법하기보다 인쇄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압류면제 조항을 직지에 한정해 기존 압류면제법 입법 반대 세력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2018년 5월, 청주시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영인본을 3D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2018년 5월, 청주시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영인본을 3D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출처/뉴시스>

  압류면제법에 대해 성 교수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전시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업계 관계자들의 충분한 소통을 통한 풍부한 입법조사와 연구로 압류면제를 위한 단일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현 문화재 반환의 원칙과 충돌하지 않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재량규정을 추가로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반출 문화재를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15일 문화유산회복재단이 주관한 '돌아온, 돌아와야 할 문화유산' 사진전이 열렸다. 문화유산회복재단 조의연 회장은 "국보급 문화유산의 환수와 관련해 중앙과 지방정부, 민간단체의 활동에 협력하는 국회 역할을 환기하기 위해 사진전을 개최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국내 의류 브랜드 탑텐에서는 문화재 환수 캠페인 '컴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직지심체요절과 몽유도원도, 이천향교 5층 석탑에 대한 아트 그래픽을 새긴 티셔츠를 출시해 반출 문화재 현황을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재 반출을 가시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성 교수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국가 사이의 우호적 관계를 위한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와 관련 단체, 개개인이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전했다.

 

*문화재 시장국: 높은 자본력과 국력으로 문화재 시장에서 구매력이 높은 위치에 있는 국가

**문화재 원산국: 해당 문화재가 만들어졌거나 가지고 있던 원소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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