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문화 기저에 깔린 어둠, 암표 거래

암표 거래를 명확히 정의하고 실효성 있는 규제 수단 마련해야

2024-05-20     전서우별 기자

  우리나라 공연 문화에서 이뤄지는 암표 거래는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져 왔다. 암표 거래 근절을 위한 노력과 현행법 제정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여전히 실효성이 부족한 자구책에 머물며 명확한 해결책 제시는 미비하다. 암표 거래의 원인과 방지 대책의 한계를 살펴보고 바른 공연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암표 거래 방식

  암표는 이득을 챙길 목적으로 웃돈을 얹고 팔아 거래되는 불법적인 공연 및 경기 입장권 등의 표를 뜻한다. 암표라고 불리는 고가의 불법 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최근 프리미엄에서 따온 '플미'로 불리며 성행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온라인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359건, 2021년 785건, 2022년 4,224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인기 있는 공연이나 경기의 표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한정된 표 수량으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경우 정가보다 비싼 값을 주고서도 표를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생겨 암표를 거래한다

  공연 관람이 아닌 암표 거래를 목적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표를 대량구매 한다면 관람객들은 표를 예매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매크로는 자동 입력 프로그램으로 한 번만 키를 놀러도 동일한 작업을 반복할 수 있도록 제작돼 단시간에 여러 좌석을 단번에 예매할 수 있는 수법이다. 매크로가 성행하기 이전에는 표를 예매한 개인이 타인에게 표를 넘겨 양도'하는 방식으로 원가 또는 싼 가격에 표를 재판매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크로를 활용해 표를 사재기한 뒤 이에 웃돈을 없어 재판매하는 '리셀로 이득을 취하려는 암표상이 늘었다. 또한 매크로를 활용한 암표 거래를 오히려 리셀이나 신제테크 수단으로 여기며 암표 판매에 조직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암표상을 처벌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공연 업계에서는 암표 거래를 단속하고 있다. 암표 거래는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불법 행위로 규정된다.

출처/한국일보

 

  새로운 법적 규정마저
  실효성 없는 현실

  원가보다 비싸게 파는 암표는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법에서는 경범죄처벌법과 공연법이 공연 및 경기 입장권 등 표와 관련된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법률 중 암표가 무엇인지 그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바가 없어 법적인 제재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경범죄처벌법은 흥행장, 경기장, 역 등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 승차권 승선권을 되판 사람에게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의 형을 처벌하는 항목으로 '암표매매'를 명시한다. 그러나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암표 거래의 특성상 오프라인 장소만을 규정하는 해당 법률은 온라인 암표 거래를 처벌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공연법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연 입장권 관람권 할인권 교환권 등의 부정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해당 법에는 암표라는 단어를 명시하지 않았으며 부정 판매라고 규정하고 있어 해당 법률로 암표 거래 관계자를 처벌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온라인 암표 거래의 근절을 목적으로 지난해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공연법 개정안이 올해 3월 22일부터 시행 중이다. 공연법 개정안에는 지정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입장권 등을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항목 또한 추가됐다. 하지만 지난해에 열린 임영웅 전국투어 콘서트 '아임히어로' 서울 공연은 VIP 표의 정가가 16만 5천 원이었으나 암표로는 최대 555만 원까지 거래된 사실이 알려졌다. 해당 사례에 따르면 고액의 암표를 통해 얻는 이익이 벌금보다 더 크다. 개정된 규정 역시 처벌 수위가 약해 암표 근절에 대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단국대학교 법학과 남기연 교수(이하 남 교수)는 "현행법으로 암표 거래 문제를 완전히 단속하지 못해 정부에서 공연법 개정안을 신설했음에도 여전히 허점이 존재하며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암표

 

  암표 거래 근절 외침 속
  허울뿐인 대책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법 개정안 시행에 맞춰 지난 3월 통합 신고 누리집을 개설하고 암표 신고 규정 및 절차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공연 성수기에는 암표 신고 장려 기간을 운영해 암표 의심 사례에 대한 사실 확인 절차를 진행한 후 암표상을 처벌하고 신고자에게 소정의 사례를 제공한다. 더하여 상습적인 암표 판매 행위를 단속하고자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와 협조 체계도 강화했다.

  그럼에도 암표 거래가 꾸준히 성행하는 가운데 정부 차원에서 제시하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암표 문제를 해결하고자 가수들이 직접 암표 근절에 나서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남 교수는 "특정 공연과 경기의 암표 거래가 늘어나면 공연 흥행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어 공연 업계 관계자들도 함께 암표를 근절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암표 거래를 막고자 암행어사 제도를 운영했다. 암표 거래를 목격한 사람이 이를 신고하면 신고자에게 공연 표와 같은 포상을 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로 인해 정당한 방식으로 표를 구매한 사람이 암표 거래 의혹을 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신분증과 결제내역 등 본인이 암표 거래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했으나 소속사 측은 대리 예매를 문제 삼아 표 발급을 막았다. 이후 소비자에게 요구하는 소명 절차와 암표 적발 기준이 논란으로 떠오르자 소속사는 암행어사 제도를 폐지하고 과도한 소명 절차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과도한 소명 요구로 인해 암표를 근절하고자 하는 본래 목적은 잃고 정당한 과정으로 표를 구매한 사람이 암표 거래자로 오해받아 책임을 묻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남았다.

  가수 장범준은 암표 문제로 인해 기존에 판매된 표를 취소하고 대체불가토큰인 NFT 표를 발행했다. NFT 표는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돼 표의 소유권을 증명하며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표 대량 구매의 접근을 차단해 암표 거래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NFT 표는 기본적으로 개인정보를 포 참해야 하고 대규모 공연의 경우 일일이 개인정보 확인을 진행하기는 어려워 상용화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미국 미네소타주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출생 연도와 앨범 제목을 따와 표 재판매 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법' 이라고도 불리며 2025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는 '하우스 파일 1989' 법은 한 사람이 여러 장의 표를 구매해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행위를 금지한다. 더하여 표를 재판매하려는 판매자가 기본 가격에 추가되는 모든 수수료를 처음부터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판매도 1장의 표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이는 암표 거래 사기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고 암표상의 표 사재기 및 재판매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효과를 낳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불법 프로그램이나 암표 거래를 진행한 소비자만을 단속하려는 기술적·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암표 거래를 명확히 규정하는 법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올바른 공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암표 시장의 확대는 공연 생태계와 대중문화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공연 업계는 지속적으로 관련 법적 제재를 살피고 암표 거래 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를 구제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남 교수는 "암표와 달리 양도를 위해 정상가나 값싼 가격에 판매하는 경우는 표 재판매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적인 정부의 법적 규제 및 처벌의 수위만을 높이며 단속하는 법안으로 암표를 완전히 근절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에 남 교수는 "암표 거래를 단속하려고 하기보다는 공연 업계 측에서 검증된 플랫폼이나 창구 역할을 하는 공식적인 표 재판매 중계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암표 거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개개인이 암표 거래를 소비하지 않으려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남 교수는 "끊임없는 수요를 악용하며 암표상들이 웃 돈을 없어 판매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에 불법적인 암표 거래를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소비자 인식도 변화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암표상을 명확히 처벌하는 규제 수단이다. 공연 문화를 즐기는 마음과 가수 및 스포츠 선수를 좋아하는 팬심을 악용해 표를 재판매하고 부당한 이득을 보는 암표상과 암표 거래를 막아야 한다. 암표상을 명확히 처벌하기 위한 규제 방안을 만들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연 업계와 정부 및 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