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부터 아리랑까지... 끝나지 않는 동북공정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주체적 인식 필요해
작년 9월 중국에서 열린 한·중·일 고대 유물 전시회에서 중국이 한국의 고대사를 설명하는 연표에 발해와 고구려에 관한 내용을 빼 논란이 됐다. 중국 측 관계자는 “고구려 문제는 학술적으로 바라봐야 하며 정치 영역에서 다룰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다. 우리 정부가 잘못된 부분에 대한 수정과 사과를 요구하자, 중국은 연표 자체를 철거했고 일각에서는 동북공정의 꼼수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고구려가 중국 역사?
동북공정의 시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북공정의 정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으로 동북 변방의 역사와 중국 현재 상황에 관한 연구 사업이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인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의 역사를 연구하고자 2002년 2월부터 5년 동안 진행했다. 2003년 7월, 중국이 고구려를 비롯해 고조선과 발해 등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하는 연구 내용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중국 국경 안에 들었던 모든 민족은 중국의 민족이고 그들의 역사 또한 중국의 역사라며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한 것이다. 동북공정의 연구 내용에는 중국의 지방 정권인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지배했으며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아닌 말갈족에 의해 수립한 나라로 기록했다. 특히 고구려가 중국 고대 중앙 정부에 귀속돼 조공 및 책봉 관계로 이뤄진 중국의 지방 정권 중 하나라고 기술함으로써 국내 학계와 대중의 큰 반발을 일으킨 바 있다.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2004년 8월, 한국과 중국은 고구려사 관련 기술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하고 정치 쟁점이 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5개 구두 양해 사항’을 체결했다. 이후 우리정부는 중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역사 왜곡 시정을 요청했으며 이로 인해 고구려사 내용의 일부가 바뀌었다. 동북공정 연구가 종료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콘텐츠까지 확대한
도 넘은 문화공정
5년에 걸친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 사업은 끝났으나 문화공정을 통한 중국의 역사 왜곡은 현재 진행형이다. 강원대학교 윤리교육학과 나영주 교수(이하 나 교수)는 “중국이 주장하는 학술연구로써의 동북공정은 끝났으나 한반도 역사 왜곡과 침탈로써의 동북공정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6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 학계에서 나온 한국사 관련 논문을 조사한 결과 한국 왕조가 중국에 종속됨을 부각하는 연구가 증가했다.
최근에는 역사 왜곡을 넘어 우리나라 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화공정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나 교수는 “애국주의에서 비롯한 일부 중국인은 우리나라 문화를 자국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김치·한복·아리랑을 포함해 게임 및 콘텐츠 산업까지도 자신들의 문화임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모바일 게임 중 ‘샤이닝니키’는 한복을 중국의 의복으로 설명하고 ‘문명정복’은 이순신 장군을 중국인으로 등장시키는 등 콘텐츠를 통한 잘못된 역사를 전달해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중국 콘텐츠의 파급력이 늘어난 것을 고려한다면, 문화공정은 그릇된 역사 인식을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이에 중국 게임의 무분별한 역사 왜곡 및 문화공정을 막기 위한 게임법 개정안이 지난 5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한다면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역사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해 국내에 유통된 게임물 중 문화공정이나 역사 왜곡에 시정을명할 수 있으며 이행하지 않는 경우 형사 처벌할 수 있다.
동북공정의 논리와
중국의 목적
중국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하나의 중국’을 유해 국가 통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본토를 포함한 △타이완 △홍콩 △마카오가 하나라는 사상이다. 중국 내 소수 민족에도예외 없이 적용하는 이념으로, 자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와 위구르족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다. 하나의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 동북 지역의 역사를 중국 내 역사로 포함해 소수 민족에 대한 지배 정당성을 인정받고 소수 민족과 중국 인구의 약 91%를 차지하는 한족을 융합하고자 했다.
위와 같은 목적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동북공정을 지배하고 있는 논리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과 영토 지상주의로 나뉜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은 여러 민족이 공동으로 중국을 이룩했고 이들이 동화해 단일 민족인 중화 민족을 이룬다는 이론이다. 해당 이론은 중국 학계에서 자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관점이다.
영토 지상주의는 현재의 영토만을 기준으로 역사의 범주를 설정하는 역사관이다. 앞서 언급했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또한 영토 지상주의에 기반한 이론이다. 두 이론을 적용하면 고대의 우리 민족이 중화 민족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역시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중국의 또 다른 목적은 영토 문제, 즉 국경 분쟁과 관련 있다. 나 교수는 “동북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경 문제고 고구려 및 발해·고조선의 역사 왜곡을 단순한 역사 왜곡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며 “국경 및 영토에 대한 중국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가정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동북 지역과 한반도 사이의 *변경 영유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나 교수는 “동북공정은 동북 지역의 역사를 중국으로 편입해 한반도가 통일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 분쟁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백두산 위쪽의 간도 지역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이 영유권을 박탈당해 중국 영토가 된 곳이므로 한반도 통일 후에는 조선 숙종 때처럼 북한산정계비를 기준으로 간도 영유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해당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목적으로 계속해서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는 2003년 동북진흥전략을 발표함으로써 동북 지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강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나 교수는 “중국은 동북 지역의 중요성을 파악해 본격적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인 ‘훈춘’은 북한 및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중국이 동해에 진출하기 위해 공을 들일 것이다”고 말했다. 즉, 동북 지역 개발에 대한 안정권을 확보하려 동북공정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끝없는 동북공정,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역사 왜곡과 문화 공정에 대한 논란이 계속해서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에 대응한 국가적 차원의 직접적인 시정 요청을 하거나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켜 학문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인 대응을 해왔다.
앞으로는 전통문화 알리기에도 앞장서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영문 저널인 JNAH·JTMS 등 정기간행물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우리 역사를 주요 언어로 번역하고 각국의 주요 기관에 배부해 한국사를 올바르게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대응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사 왜곡과 문화공정을 받아들일 우리사회의 판단 역시 필요하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을 함양하고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변경: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