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인 듯 진실 아닌 너, 팩션
진실인 듯 진실 아닌 너, 팩션
  • 나재연 기자
  • 승인 2018.06.11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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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과 왜곡 사이, 팩션의 줄타기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 TV 채널을 돌리며 방영 중인 드라마를 볼 때, 서점에서 소설책 진열대를 기웃거릴 때마다 찾아볼 수 있는 장르가 있다. 바로 실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한 ‘팩션’ 작품들이다. 다양한 역사와 인물을 배경으로 한 팩션은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팩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팩션은 왜 인기 있으며, 왜 문제라는 것일까?


  문화예술계를 휩쓴
  팩션의 세계

  팩션이란 fact와 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허구를 덧붙인 문화예술 장르를 말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에 상상력을 더해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팩션의 시초는 트루먼 카포트 작가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다. 이는 1966년 캔자스에서 실제 있었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인 콜드 블러드’는 당시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이 장르가 현재 팩션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팩션이란 개념은 2003년에 댄 브라운 작가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출간되며 대중화됐다. ‘다빈치 코드’는 그리스도교를 소재로 한 미스테리 추리 소설로, 10여 개 나라에서 출간된 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거대한 인기에 많은 사람이 현재까지 팩션이라는 장르를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팩션은 왜 인기 있는 것일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경향신문에서 “정보를 찾는 욕구에 부응하는 작품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로 인해 정보가 방대해진 사회에서 대중은 정보 소외의 불안에 놓여, 이를 충족하기 위해 오락으로 팩션을 선택했고 이에 따라 팩션이 인기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팩션은 인지도의 측면에서 대중에게 유리하게 다가가기도 한다. 이어진(22. 여) 씨는 “팩션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건과 인물에 기반을 두고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보는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다”며 “생산자도 더욱 쉽게 플롯을 만들 수 있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논란에 휩싸인
  팩션의 왜곡

  팩션 작품은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 인물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작가가 가미한 허구가 사실을 왜곡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다빈치 코드’는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리스도교와 예수를 모독하고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은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1987>을 관람한 도세영(55. 여) 씨는 “영화가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에 대해 다뤘는데,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허구가 현실감 있게 가미됐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한열 열사는 단순히 멋있는 선배로, 가상 인물인 ‘연희’는 그가 운동권인줄 모르고 호감을 갖는 신입생으로만 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역사 앞에서 내적 갈등을 느끼는 연희를 주체적으로 묘사했으면 그와 함께하는 이한열 열사 역시 보다 좋은 인물로 다가왔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개봉한 또 다른 팩션 영화인 <군함도>를 관람한 여희수(21. 여) 씨(이하 여 씨) 는 “영화 <군함도>가 부정적인 평을 받은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니 더욱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음에도 노동을 착취당하는 조선인보다는 분장을 한 건강한 배우로 느껴져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다”며 “역사와 다르게 착취를 행하는 일본이 신사적으로 묘사돼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작품에 과도하게 허구가 가미되면서 사실이 왜곡된 것이다.

  이에 따라 팩션이 대중에게 사실을 잘못 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신라대학교 이병철 교수가 2017년 시행한 설문조사 ‘역사콘텐츠를 통한 청소년들의 인식 조사-드라마와 영화를 토대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181명 중 100명이 영화와 드라마로 접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역사에 대해 배경 지식이 없는 경우, 팩션 작품 속 허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어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될 수 있다.



  긍정적 효과 부르는
  픽션의 허구성

  한편 팩션 작품을 접한 후 사건이나 인물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지난 2008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해 비판을 받았다. 문화재위원회 안휘준 위원장은 한겨레에서 “사실이 모호하면 픽션으로 쓸 수 있지만, 이 드라마는 명백한 사실인 사람의 성별까지 억지로 바꿨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람의 화원>이 방영된 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 신윤복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드라마가 방영된 해 가을에 간송미술관에서 신윤복의 <미인도>를 전시하자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를 보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이처럼 팩션 작품은 대중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이를 해당 사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여성 배우인 문근영이 신윤복 역을 맡아 신윤복이 남장여자로 등장했다. <캡처/SBS>


  여 씨는 “팩션 작품을 감상하는 대중은 작품이 다루는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세세하지는 않아도 기본적 배경 지식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작품을 감상한 후 작품 속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알 방법은 많기 때문에 팩션 작품을 접한 뒤 사실을 왜곡해 받아들이는 일은 드물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활용해 모두가 역사 전문가가 된다는 의미로 네티즌(netizen)과 역사가(historian)의 합성어인 네스토리안(nestoria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중은 팩션 작품을 통해 왜곡된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스스로 올바른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팩션은 사실을 왜곡하더라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팩션의 경계

  팩션은 대중의 흥미를 위해 허구가 가미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란에 시달린다. 팩션이 넘나들 수 있는 허구의 경계는 규정할 수 없어 그에 대한 판단은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팩션을 제작하는 생산자에게도 무책임하게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올바른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산자가 이러한 책임을 졌는지는 대중이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대중이 팩션을 감상할 때 이를 사실적으로 돌아보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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