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 김경묵 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8.06.11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에 나는 모 기관의 중견간부채용 과정에 최종 면접 심사자로 참석했다. 3명의 심사자가 후보자 모두를 면접·평가하고 난 후, 최종적으로 1명을 가리기 위해 의견을 교환했다. 심사자 사이에서 여성후보자 1명과 남성 후보자 1명이 괜찮다는 의견이 나왔고, 심사자 3명 중 2명이 여성 후보자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배석한 그 기관의 여성 책임자가 ‘여성은 안 된다’는 의견을 아주 강하게 피력했다. 자기와 신입 직원이 근무할 부서에는 어려운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직원이 출산 휴가를 갖거나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업무 차질이 심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여성으로서 거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극구 안 된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민간 기업에 근무하던 2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어느 날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창사 이래 처음으로 팀장에 보임된 여성이 인사 팀장을 향해 앙칼진 목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여성 신입직원을 자기 팀에 배정했다는 것이다. 여성 팀장은 왜 여성 직원을 받지 않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남자 직원을 받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마 그 여성 팀장은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시절에 여성은 일을 덜 한다는 속설을 믿었거나, 여성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부적합하다고 생각했거나, 그 신입 직원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업무에 소홀히 할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짐작된다. 일 욕심이 강하고 야망을 가진 그로서는 여성 신입직원으로 인해 팀의 실적이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으리라. 그 여성 팀장은 그 후 승승장구해 임원이 됐고, 그가 나온 학교에서 자랑스러운 동문으로서 여러 번 강연했다고 한다.

  금년 초에 국내 3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3%를 넘어섰다고 각 언론사들이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노르웨이(39.7%), 프랑스(37.5%), 스웨덴(33.7%), 이탈리아(32.2%), 핀란드(30.9%), 영국(26.3%) 등의 유럽 국가는 물론 25~28%에 이르는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우리나라 여성은 대학 진학률뿐만 아니라 20대의 취업률에 있어서 남성보다 앞서지만 30대 초반을 넘으면서 취업률이 남성에 비해 크게 뒤진다. 이는출산과 양육 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이 많고 승진에 있어 성차별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에 여성 근로자들의 경력단절과 여성에게 불리한 승진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여성 친화적 직장 만들기, 보육과 육아 시스템 개선하기, 유연근무제 도입하기 등에 대한 열기가 뜨겁고, 일부는 여성 임원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성평등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 임원 할당제는 노르웨이가 2003년에 처음으로 법제화해 2008년부터 시행한 정책이다. 노르웨이가 정책 입안 시 5%에 불과하던 여성 임원 비율을 40%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다. 기실, 5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임원 비율을 무려 8배나 올리려다 보니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왔다. 실력 없는 여성 직장인이 치마를 둘렀다는 이유만으로 임원이 된다는 남성들의 비아냥거림이 터져나왔고,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된 여성들의 질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시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비율이 목표치에 비해 크게 하회하자 법안 폐기의 목소리 또한 비등했다. 노르웨이 여성들은 일부의 부작용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이해해야 한다고 남성들을 설득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위대한 행보에 동참하라고 반대파를 설득했다. 그 결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여성 임원 비율 40%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독특한 남성중심의 문화를 거론하며, 우리나라에서 적극적 성평등 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명에 가까운 남성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와 같은 표현에 깔려있는 일부 여성들의 ‘이기심’과 ‘편협함’을 제거하는 노력도 꼭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