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풀리는 학술] 정치에서 정치자금이 갖는 의미
[술술 풀리는 학술] 정치에서 정치자금이 갖는 의미
  • 엄기홍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6.04.1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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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드라마 <어셈블리(assembly, 2015)>
 
국회를 배경으로 한국정치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 <어셈블리>는 용접공으로 살아온 ‘진상필’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진상필’은 법안을 추진하기 위한 정치자금이 부족해 후원금을 모금받기도 하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누명을 쓰고 압수수색을 받기도 한다. 국회위원에게 필수불가결 요소이면서도 해가 되기도 하는 정치자금, 그 의미는 무엇이고 과연 한국에서의 바람직한 정치자금 조달 방법은 무엇일까?


 

 

  1998년 여름, 미국 유학이라는 꿈에 부푼 한 청년이 비행기에 올라탔다. 해외여행이란 단어조차 낯설었던 이 청년에게 비행기로 15시간 이상 떨어진 미국은 참 낯선 곳이기만 했다. 이 청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거대하다 생각하지만 당시 이 청년에게는 소명의식(召命意識)이 있었다.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처럼 이 청년의 소명의식은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까’였다. 청년은 한국전쟁에 관한 석사논문을 쓰면서 우리나라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이 참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미국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미국의 정책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의 공부가 필요하다 생각해 미국으로의 유학길을 결정했다. 

  1998년 첫 번째 학기, 비교정치 수업시간 이 청년은 미국정치의 핵심이 정치자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국정치에서 “The best Congressmoney can buy”, “Money talks” 등과 같은 문구는 마치 관용어처럼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정책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의 역학(dynamics)을 이해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정치자금이 이 청년의 박사학위논문주제가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한 동기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정치자금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순진함이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액 기부금 기부자에 대한 인적 사항이 공개되지 않는다. 출처/SBS뉴스

  정치자금 조달,
  필수불가결한 선거의 요소
  정치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획득해 그 뜻을 펼치는데 목적이 있다. 그 뜻이 이념이 될 수도 있고 정당의 매니페스토가 될 수도 있고 후보자의 의지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정견을 알리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가 있기에
선거를 치르기 위한 정치자금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국고보조금에 의한 완전 선거공영제이다. 즉 국가가 선거에 드는 비용을 모두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완전 선거공영제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큰 제도이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정당이나 후보자에 의해 많은 액수의 국고보조금이 지출될 것이다. 또한 국가와 정당이 카르텔을 형성한다면 거액의 국고보조금이 사용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국고보조금에 의한 완전 선거공영제는 자금의 출처가 국가에 있는 만큼 정당이나 후보자가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가능성이 줄어든다. 따라서 국고보조금에 의한 선거공영제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위한 최소한의 정도로서만 제한해야 한다.

  정치자금 조달의 다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회사 등 단체의 기부금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과거에 한국은 단체의 기부금을 허용했을 때도 있었고 지금도 단체기부금을 허용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한국에서도 목도된 바와 같이 미국 정치자금제도의 가장 큰 실수로 지적되는 바는 단체에 의한 정치자금을 허용한 것이다. 미국은 1974년 정치자금법개정을 통해 ‘Political Action Committees’란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합법적 통로가 만들어졌으며 “The best
Congress money can buy”, “Money talks” 등과 같은 문구가 관용어가 됐다. 만약 한국에서도 회사 등의 단체에 의한 기부를 허용한다면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정치자금 조달은 용이할지 몰라도 ‘돈으로 국회를 살 수 있는’ 합법적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치자금은 대의제 민주주의 운영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정치자금이 있어야 정당이나 후보자의 뜻을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다. 유권자에게 뜻이 전달돼야만 선택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지만 완전 선거공영제나 단체에 의한 정치자금 조달이 바람직한 해결책은 아닌 듯하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고 정경유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바람직하게 정치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가와 정당의 카르텔을 방지하고 정당과 기업의 카르텔을 방지하면서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자금 조달 방식을 만들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를 만들수 있을까?

  한국과 미국의 정치자금
  약간만 우회해서 이야기해보자. 아까 이야기했던 그 청년이 한국에 돌아와서 미국에서의 공부를 한국에 적용하고자 했을 때 부딪쳤던 가장 큰 문제는 한국만의 독특함이었다. 미국에서는 정치자금 기부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수단이었지만 한국에서 정치자금 기부는 숨겨야 할 행위였다. 미국에서는 신문 등에 의한 대통령 후보 지
지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만 한국에서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렇듯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미국에서 찾은 가장 바람직한 정치자금 조달의 방식이 한국에서도 적용될지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기에 희망을 안고 이야기해본다. 정치자금 조달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소액 기부이다. 1천 원이든 1만 원이든 소액의 기부금을 후원회에 전달하는 것이다. 어찌 보니 선거관리위원회 홍보문구 같기는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소액기부금(연간 300만 원 이하의 금액) 기부자에 대한 인적 사항이 공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소액 기부금은 자랑이다. 후보자는 소액을 기부한 자의 이름과 기부횟수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지지가 견고함을 자랑한다. 기부자 역시 자신의 기부금을 자랑하며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만족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소액 기부금은 비공개 대상이다. 국회의원 후원금의 상당 부분인 소액 기부금으로 구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후보자들은 소액 기부금 모금을 자랑하지 않는다. 기부자 역시 자신의 인적 사항이 공개되는 것을 주저한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미국의 정치문화와 다르기에 모든 것들을 비교·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자금과 한국의 정치자금을 연구해 왔을 때 정치자금 조달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소액 기부금에 의한 조달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정책 결정이 바람직하게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소액 기부금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정치의 본질이 순수하게 되기 위해서는 소액 기부금이 활성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부하지만 소액 기부금 활성화, 그리고 소액 기부금이 자랑이 되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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