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술 권하는 사회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6.03.28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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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폭력’이 된 우리나라의 음주문화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얼굴에 오물을 칠하며, 잔치를 차리도록 독촉해 먹고 마시기를 거리낌 없이 합니다. 조금이라도 뜻이 맞지 않으면 신입의 몸을 학대하는 등 온갖 추태를 벌이고 아랫사람을 매질하며 그 맷독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1541년 당시 과거 급제자들이 정식 관원이 되기 전 치른 ‘신고식’을 고발한 내용이다. 2016년인 지금,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50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현재 우리사회 음주문화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강압적인 음주문화에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

  지난 22일 대전의 한 대학교 신입생이 자신의 원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학생은 21일 같은 과 1, 2학년 80여 명이 참석한 대면식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먹고 친구와 함께 집으로 귀가 한 다음날 아침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뿐 아니라 대학 술자리에서의 과도한 음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대한보건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학가에서 발생한 음주 사망사고가 총 22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사고는 대체로 선배가 후배에게 술을 강요하거나 신입생이 자신의 주량을 모르고 분위기에 취해 과도한 음주를 할 경우 일어난다. 선배가 후배에게 술을 권유하더라도 우리나라 대학문화에서 이것이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후배는 선배의 권유를 거절하기 힘들다. 대학생 김혜민(여. 21) 씨(이하 김 씨)는 “사회적으로 선배가 후배를 상대로 혹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술을 강요하는 강압적이고 어려운 분위기가 존재한다”며 “대학가의술 문화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원하는 사람들끼리 즐겁게 마시는 분위기로 변해야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 직장체험을 하는 한 방송에서 회식이 열리자 신입사원들에게 과하게 술을 먹이거나 잔 하나를 놔도 윗사람이 먼저이고 아랫사람이 나중이라는 식의 비합리적인 직장문화를 보여주며 우리사회의 직장문화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사진 캡쳐/tvN <오늘부터 출근>
방송인 샘 해밍턴은 "호주에서는 한국과 같은 과도한 음주를 하기 어려운 문화"라며 한국은 다른나라에 비해 술을 먹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사진 출처/MBC <무릎팍 도사>

  대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다가오는 술자리는 대체로 과 행사, 동아리 모임이 대다수이다. 개강파티, 과 엠티와 같은 행사는 ‘새내기 필참’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참여하지 않을 경우 불참비를 걷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 참여한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래는 ‘마셔, 마셔. 먹고 죽어. 네 발로 기어’, ‘안주먹을 시간이 없어요’와 같은 술을 강요하는 노래들이다. 김 씨는“술을 마시면서부터 집에 귀가할 때까지 모두가 즐거운 술자리가 가장 바람직한 것 같다”며 “적당한 음주 후 집에 돌아가서 ‘오늘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직의 화합을 이유로
  강요되는 음주
  
삼성에서 <피하고 싶은 음주문화>를 조사한 결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문화는 술 강요(48%)였으며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술 자체가 싫다는 의견이 2위를 차지했다.사진 출처/삼성 페이스북 페이지

  
 강압적이고 과도한 음주문화는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조직의 단합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잦은 회식을 가지며 역시 이 자리엔 술이 빠지지 않는다.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1,8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평균 주 2회 회식을 갖는다. 조사 대상의 80%가 ‘평소 술 마신 다음날 숙취를 겪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34.3%에 달하는 사람들이 ‘음주 후 다음날 직장에 휴가를 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직장인들은 주 2회의 회식 후 출근에 부담을 느끼며 회식 자체를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직장인들은 회식을 꺼려할까. 현재 직장에서 과장급 직무를 맡고 있는 박 모 씨는 “나는 직급이높아 회식 자리에 눈치껏 빠질 수 있지만 낮은 직급의 직원들은 상사가 가자고 하면 무조건 가야하는 분위기”라며 “회식에 불참하거나 회식 자리에 서 상사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면 상사 눈 밖에 나게 되기 때문에 회사생활이 힘들어지기도 한다”고 우리나라 회식문화를 비판했다.
  
  모 투자증권에 근무했던 김시화(여. 26) 씨 역시 “꼭 술을 먹으면서 근무시간 외의 여가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며 “어디서든 술자리에서 술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자 권리이지만 직장과 대학같이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공간에서는 술을 권유받았을 때 답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개인 존중 분위기가 지배적
  새벽 늦게까지 혹은 24시간 내내 운영하는 우리나라의 술집과 달리 외국의 경우는 대체로 밤 11시 정도면 영업을 마친다. 그렇기 때문에 밤늦게 술에 취해 길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한 단체로 술을 즐기는 문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8년째 살고 있는 박예진(여. 27) 씨(이하 박 씨)는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 같이 대학에 개강 파티나 엠티처럼 단체로 술을 먹는 행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술 약속을 비롯한 식사 약속도 즉흥적인 경우가 거의 없고 개인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편이다”고 말했다. 또한 박 씨는 “독일은 가족중심적인 성향이 강해 수업이나 업무가 끝난 뒤 곧장 집으로 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와 외국의 문화차이를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 경우 대체로 ‘윗사람’ 혹은 ‘선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자유로우며 거절했다고 해서 대학생활이나 직장생활에 피해가 가는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부터 시작된 강압적이고 과도한 음주문화는 여전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대학가에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이전보다 분위기가 온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선배가 후배에게 모임에 참석하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비단 음주문화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유’가 ‘강요’가 돼 전해지는 상하관계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만이 즐거운 음주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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