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입동(立冬) 유감(有感)
[교수칼럼] 입동(立冬) 유감(有感)
  • 이명찬(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4.11.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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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의 상처가 아직 4월 그대로인데 철은 벌써 겨울에 들어선단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미 가슴에 묻은 분들과 그러지도 못하고 팽목항 근처를 여태껏 서성이는 분들 모두에게, 이 겨울은 참으로 참혹할 것이다. 지켜보는 마음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혹 1960~70년대였다면 또 모르겠다. 바나나보트를 탄 것 같은 모험을 원했을지. 그러나 21세기도 한창인 오늘날에야, 배가 되었건 한 나라가 되었건 그것을 타고 있는 승객이자 시민인 우리들이 선장들에게 바라는 것 무어 그리 대단한 질주 아닐 것이다. 삶이라는 격류 건너 저편 강기슭에 그냥 곱게 내려주기만 해도 충분히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대의 파도 거친 줄 정도는 알기 때문에.

  우리 학교의 앞날 또한 마찬가지다. 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전에 없던 비약을 바라는 구성원은 흔치 않을 터. 고장 난 부분 든든히 수리하고, 선원들 승객들 저마다의 할 일 체계적으로 단단히 다져, 비바람 피해 내년 봄까지 안전한 항구로 들게 하는 일, 거기서 다음 항해를 준비하고 있는 선장에게 배의 지휘를 맡기는 일이 급선무. 그러자면 재단은 승선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일에 명운을 걸어야 옳았다. 승선자 모두 자기 것을 조금씩 양보하거나 자신들의 입지를 조정하는 일에 동참해야만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참여하는 조건과 분위기를 조성해 주기만 한다면 교수들은 서로의 등 다독여가며 각각의 단처(短處)를 보완할 방안을 만드는 일에 모두 발 벗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재단 이사회는 다수 구성원들의 바람에 반하는 현재의 체제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대학이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이 되기까지 교수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유감이라는 인식을 표나게 강조해 왔다. 누가 생산한 인식틀인지 모르겠으되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문제가 학교 행정을 책임졌던 대학본부의 무능에서가 아니라 교수사회의 수구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는 허무맹랑한 뜻이어서 참으로 충격적이다. 전임 총장 시절, 우리들은 정원 축소 외에 구조개혁과 관련한 구체적 방안을 마주해 본 사실이 별로 없다. 드러내놓고 논의하는 마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수구적 태도를 어디서 드러낸다는 말인가. 그러니 이제 이런 한심한 생각은 한시바삐 버리고 문제를 풀 실질적 방도를 찾을 필요가 있다.

  해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우리 덕성에는 지난 90년대 이후 겹쌓아온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의 녹록치 않은 전통이 있다.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의 어느 곳에서도 우리 대학의 ‘교수회의’만큼 역동적인 참여틀을 나는 만나본 기억이 없다. 물론 ‘교수회의’의 결정이 항상 선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비뚤배뚤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걸음을 두고 진보(進步 혹은 眞步)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의견들은 너무 첨예하게 부딪치며 비등하고 의사 진행과정은 지나치게 지리하여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므로, 이러한 협의체는 뛰어난 누군가가 소수의 참모들과 기민하게 결정해 밀고나가는 것만 못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매 갈피를 잘 돌아보라. 우리 삶의 물꼬를 튼 중요한 국면들은 모두 결국 그렇게 지둔해 보이던 민주적 절차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누가 자문했을까. 첫 ‘교수회의’의 모두에 총장 직무대리는 이 회의가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발언으로 싸느랗게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법적 지위를 따지기 전에, 전체 교수들이 모여 의견을 나눈 회의의 결과가 그렇게 간단히 무시돼도 정말 좋은 것일까? 바로 전임자가 교수회의를 그렇게 간단히 무시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총장이었기를 바라는 우리의 기대는 전혀 무망한 꿈이었을까?

  입동 날 시린 하늘 저 너머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두고 시인 김명인은 “붐비는 가을의 허전함, 그런 것들을 꿰고 / 새 한 마리 날아간다, 질문을 넘어서 <새>”라고 노래했다. 굴욕에 치떨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씩의 비루함을 견디는 힘은 저 너머에 영원 같은 게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이다. 바투 닥쳐온 덕성의 겨울을 그래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믿음의 원천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입동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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